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병원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단조로웠다. 소등시간이 되면 어두워진 병실에서 잠을 자야 했고, 다시 불이 켜지면 일어나 밥과 약을 먹었다. 약을 먹은 후에는 간호사에게 입을 벌려 소리를 내고 아~ 하며 약을 삼킨 것까지 확인을 시켜 주어야 했다. 그리고 의사와 상담을 하거나 몇몇 환자들끼리 모여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자신도, 정신도 없었기에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일과였다. 그리고 그들을 며칠 내 보고 있자니 오히려 여기서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게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곳에서만큼은 소리를 질러도, 울어도, 욕을 해도 모두와 같은 모습이니까.
그렇게 한 엿새쯤 지났을까. 모든 걸 포기한 채 어떻게 돼도 상관없단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들!” 나는 그 단어를 듣자마자 정말이지 미쳐버린 사람처럼 눈물을 왈칵 쏟았다. 등 뒤에선 식은땀까지 흘렀다. 돌아보니 정신 나가 보이는 노인네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더워. 그치? 뜨거워. 응?” 미친 노인네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나의 손을 잡는 그 순간 어머니가 겹쳐 보였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 “누구세요?”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니 오히려 안심하라는 표정으로 “아들, 엄마야. 엄마가 이제 왔어”라며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최순임 씨! 이리 오세요” 저 멀리 보호사가 내게 무작정 달려든 그녀를 떼어내 데려갔다. 나는 힘이 풀린 다리로 병실에 오자마자 침대에 털썩 앉았다. 다시 참아왔던 눈물이 밀려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끅끅대며 울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고생만 하며 평생을 살았던 어머니. 죽음마저도 그렇게 비참해야 했을까.
병원에 온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오전에는 그림 수업에 갔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을 그림으로 표출하라기에 수의를 입고 온몸에 멍이 든 채 누워있던 어머니를 그렸다. 의사는 내 그림을 본 후 어머니가 많이 그립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아직도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 나의 대답에 의사는 한참이나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그릴뿐, 그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날 오후였다. 그놈의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위로하는 이야기 시간이었다. 자리에 앉는데 어제 본 노인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알아본 듯 말없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들. 엄마야 엄마” 다시 그 엄마 소리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나를 알아차렸을까.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 노인네가 좀 아파요. 집에 불이 나서 아들이 죽었대. 자기만 살고”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는 내게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 근데 그게 한참 전이야. 40년도 더 됐다 그랬어. 근데도 노인네가 아직도 정신을 저렇게 놓고 있어” 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그 노인을 다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마치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움이 밀려왔다.
내가 넋 놓고 있는 사이 이야기 시간은 시작되었고 저마다 갖고 있는 자신의 상처를 고백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그 노인의 맞은편에 앉아 뚫어져라 그녀만 쳐다보았다. 노인은 내가 보기에도 오락가락했다. 다른 이가 이야기할 때 빽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가, 조용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녀를 지켜보면 볼수록 숨쉬기가 힘들었다. 눈알이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간신히 나오는 헛구역질을 참아내고 있을 때 이상함을 감지한 옆자리의 남자는 간호사를 불렀다.
나는 그대로 병실로 돌아와 진정제를 맞았다. 나는 어머니를 잃고, 미쳐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 꿈을 꾸었다. 어머니는 끝도 보이지 않는 지하로 추락하면서 내게 “오지 마!”란 말을 반복해 소리쳤다. 그리고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혼자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그 최순임이라는 노인에 대해 이야기해 주던 남자가 말을 붙인다. “이정남입니다.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환각까지 보여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어요.” 짤막한 그의 소개에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내 소개를 간단히 했다. “김명제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뒤로 어떤 말을 붙여야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게 설명이 될지 고민하다가 말았다. 그러자 그는 마치 대단한 것을 깨달은 양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래서 그 최순임 씨를 보고 그렇게 힘들어했군요” 나는 마치 숨겨놓았던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황급히 다시 자리에 누웠다.
정남은 이런 나와 그 최순임이라는 노인이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우리 두 사람의 사연에 흥미를 느꼈는지 내게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최순임. 1958년생. 40여 년 전 집에 불이 났고, 집에서 아이들과 낮잠을 자던 그녀는 깜짝 놀라 자신의 옆에 있었던 딸만 간신히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딸을 집 밖으로 빼낸 후 다시 그녀가 잠든 아들을 데리러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땐, 이미 불이 커져 동네 사람 모두가 뜯어말렸단다. 그녀는 그렇게 집과 함께 아들이 타는 것을 모두 지켜보며 그 자리에서 혼절했고,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서서히 정신을 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 탓에 이 병원에 상당히 길게 입원해 있었다는 것과 그녀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땐 보이는 남성들에게 모두 ‘아들’이라 부른다는 것까지 정남은 아주 상세히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