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에 왜 이렇게 무너진 것인가. 의사의 말대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어찌 어머니의 죽음은 이렇게까지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인가. 나는 왜 아직도 어머니를 놓지 못하는 것인가.
어머니와의 추억을 따라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어머니는 나를 키우기 위해 남에게 굽신거리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며 얻은 것들로 나를 키웠다. 아버지가 나를 때리려고 할 때면 그녀는 온몸으로 막아서서 나를 지켜냈고, 그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에서 멍 자국이 지워진 날은 하루도 없었다. 나는 아마 어머니와 집을 떠나오던 그날, 어머니가 아버지를 칼로 찔렀다고 해도 절대 어머니를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는 살인자의 아들이 되었어도 기꺼이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나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머니는 시내에 있는 삼겹살집 주방에서 일을 했다. 그 무렵 나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해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거나,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 들러 그녀를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도 어머니를 기다리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인사하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식당 사장님과 어머니가 보였다. 사장님의 손은 어머니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고, 어머니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그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어머니는 황급히 옷을 추스르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횡설수설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 어머니 뒤로 사장님은 나를 보며 힐끗 웃더니 주방에서 고기 한 덩어리를 가져오며 “엄마랑 집에 가서 맛있게 먹어라.”라며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보더니 “오늘은 일찍 퇴근해”라며 인자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어머니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당황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니가 구워주신 고기를 양껏 먹었다. 그마저도 비계가 덕지덕지 붙은 삼겹살이었지만 충분히 행복했다. 그날 이후로도 가끔 어머니는 그렇게 일을 마치고 고기를 싸 들고 오셨다. 나는 고기를 먹는 날에는 환호성까지 지르며 어머니에게 온갖 애교를 부렸지만, 어머니는 입맛이 없다며 늘 손도 대지 않으셨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인생을 뜯어먹으며 자랐다. 그렇기에 나는 머리가 커갈수록, 어머니의 삶을 알수록 그녀가 안타까워 미칠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대학에 가고,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에 다니며 그녀를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막 그녀에게 보답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따뜻한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조금만 더워지면 곰팡내가 가득한 집을 벗어나 좋은 음식과 냄새로 가득한 그런 집, 어머니와 내 방 그리고 거실까지 있는 안락한 그런 집에 그녀와 함께 할 날만을 꿈꾸고 있었다.
나로 인해 남들보다 빠르게 저버린 그녀의 젊음을 배로 돌려주고 싶었다. 나는 그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버텨왔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세상에 없다. 내가 아는 죽음 중,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미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