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나에게 마지막 남은 어머니였다.
옷을 갈아입은 후 그간 나를 살펴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보호사에게 차례대로 인사했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정남에게도. 항상 붙어 다니던 정남을 뒤로하고 이렇게 병원을 혼자 떠나자니 마치 내가 그를 병원에 버려두고 나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 어떤 말이라도 붙일까 하다가 말기로 했다. 어정쩡한 미소로 정남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며 나는 간절히 바랐다. 그가 빨리 이곳을 벗어날 만큼 건강해져 다시 딸의 곁으로 돌아가길, 다시 안락한 침대에 몸도 마음도 편히 뉘일 수 있기를.
정남에게까지 인사를 마치고 난 뒤 나는 마지막으로 문 밖을 나서기 전 최순임 씨를 눈으로 찾아 헤맸다. 그리고 저 멀리 반대쪽 복도에 서있는 그녀가 보였다. 나는 잠시 이모를 그 자리에 세워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최순임 씨의 손을 붙잡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인사를 건넸다. “엄마, 아들 이제 갈게요.”
영문도 모르는 그녀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이내 무슨 말을 건네고 싶은 것처럼 입을 씰룩거렸다. 나도 그녀도 순식간에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리고 그녀는 두 팔을 길게 뻗어 나를 아주 따뜻이 안고, 또 안아주었다. 최순임 씨는 한참이나 내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이내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따뜻한 손길은 그녀가 처음으로 그녀의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내뻗은 손길이었다.
모두와 인사를 마친 후 나는 다시 이모의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으며 입을 뗐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게요. 괜찮아요.” 이모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인사를 건네고 어머니와 살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집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두려워졌다. 문을 열면 어머니가 방바닥에 피범벅이 된 채로 쓰러져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나를 반기는 어머니가 콩나물국을 끓이며 서있을 것 같기도 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결국 걸어서 20분 거리의 집을 두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그마저도 바로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집 앞 슈퍼에서 소주를 몇 병 샀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왔던 동네 어르신들은 내 초라한 행색을 보며 혀를 끌끌 차거나, “너라도 정신 차려야 하지 않겠냐”며 온갖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괜찮을 것이라 나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어느새 문 앞에 선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뒤따라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손에 들린 소주병을 열어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삼켜 버렸다. 그리고 문 앞에 앉아 짙어지는 하늘을 보다가 마침내 술기운에 정신이 몽롱해지자 문을 열 용기가 생겼다.
집 문을 열자 쿰쿰한 먼지 냄새와, 어머니가 만들어 놓았던 음식들이 상해서 나는 썩은 내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방 한가운데 앉아 소주병을 따고 그대로 들이켰다. 그리고 언제 꺼졌는지 모를 휴대폰을 다시 켰다. 회사에서 꽤 많은 연락이 와있었다. ‘힘든 마음은 알겠지만, 이대로라면 퇴직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까지 읽고 나니 정말 끝까지 온 기분이었다. 힘든 마음, 힘든 마음을 안다라... 나는 그 어처구니없는 문장에 잠시 발끈했다가 픽 웃음이 났다.
방바닥에 누워 최순임 씨와 사고가 있던 날부터 꼬박 40년을 헤매고 있는 어머니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녀의 딸을 떠올렸다. 나의 어머니도 그럴까. 그녀가 떠난 이곳에서 내가 혼자라도 살아내길 바랄까. 술기운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머니를 위해 살고 싶다가도 엄두가 나지 않아 죽고 싶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불도 켜지 않고 방바닥에 누워 죽을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을 욕했다. 그리고 밥상 옆 놓인 밥통을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 먹고 싶었다. 얼큰한 콩나물국과 따뜻한 쌀밥. 나는 결국 이미 썩어버린 밥과 어머니가 끓여 놓았던 콩나물국을 먹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게워내고. 다시 먹고, 게워내길 반복했다.
그것은 나에게 마지막 남은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