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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Oct 11. 2024

그럼에도 生

어머니를 보냈습니다. 저 높고 먼 곳으로

며칠을 방바닥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 누워 있었다. 삼일이 지났는지, 일주일이 지났는지. 아니면 그 이상이 지났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을 두드리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이모였다. 이모는 내 몰골을 보자마자 가슴을 두드렸다. “명제야, 하이고. 너 언제까지 이럴래.”


이모가 벌컥 열어젖힌 창문에서 찬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한 바람에 방 안 가득한 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이모는 방 한가운데 널브러진 나를 일으켜 앉히곤, 빗자루로 온 집안을 쓸어냈다. 멍하니 앉아 이모의 뒷모습을 보며 그 흔한 청소기 하나 없는 집 꼬락서니가 새삼 어이없단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모는 어머니와 나의 허름한 단칸방을 마치 궁전을 쓸고 닦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 청소했다. 그리곤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웬 명함 하나를 건넸다. 한숨을 푹 쉬던 이모는 눈물이 가득 묻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명제야. 니도 이제 그만해라. 니가 살아야, 제대로 살아야 니 엄마가 편히 간다. 명제야. 니 엄마 지금 니 꼴 보면 이놈의 방구석 쓸고 닦고 싶고, 니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싶어서 마음 편히 떠나지도 못해. 내일 당장에 그리 가봐라.”


이모는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씩씩 대며 빨더니 창가에 탁탁 털어 널어놓고, 집을 나섰다. 나는 이모가 떠나자마자 다시 방바닥에 누워 멍하니 누워 이모가 건넨 한 학습지 회사의 명함을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 이모가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 다 죽어가던 내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것만 같다고. 그렇다면 아마 그것은 어머니일 것이라고.


다음 날, 며칠 만에 몸을 일으켜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간만에 집 밖을 나섰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몇 달 만에 회사에 나타난 나를 본 사람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웅성거렸다. 나는 괜히 인사라도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곧장 인사팀으로 향한 후 퇴직처리를 마쳤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서는 내게 누군가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고, 누군가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따위의 것은 신경도 쓰이지 않아다. 회사 앞 공원에 앉아, 멍하니 다니던 직장을 바라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이모가 건네준 명함 속 주소로 향했다. 작은 학습지 사무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이모의 소개로 왔다고 말문을 뗐다. 그러자 그들은 내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더니, 광고 전단지를 200장 건네주었다.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한 주택가에 도착한 나는, 반장이라는 사람의 설명에 따라 주택가에 전단지를 붙였다. 한 집, 한 집.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테이프를 떼고 종이를 붙이고. 그렇게 하루에 세, 네 시간씩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한 지 삼일쯤 흘렀을까. 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아파트로 작업 구역을 바꿨다. 하지만 요령 없이 일만 하던 나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현관 앞에서 당황한 채 한참을 헤맸다. 얼마쯤 지났을까. 건강즙을 배달하는 한 아주머니가 자연스레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문을 열었다. 다 포기하고 집에 들어가려던 나는 이때다 싶어, 재빠르게 그녀의 뒤를 따라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마치 도둑처럼 잽싸게 들이닥치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이내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고 내게 눈짓을 보냈다. 순간 나는 아찔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엘리베이터를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내게 눈앞에 놓인 엘리베이터는 공포 그 자체였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다. 손이 발발 떨려 쥐고 있던 전단지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이런 나를 이상하게 지켜보는 아주머니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곤 뒤로 물러섰다.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이나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온몸이 마비된 듯. 얼마나 그 자리에 서있었을까. 아주머니가 배달을 마친 후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그때까지도 나는 엘리베이터와 대치 중이었다. 그리고 견제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시간, 두 시간.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전단지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하나씩, 천천히 계단을 오르려는데 또다시 눈앞이 뿌옇다. 입술을 깨물었다. 정신을 부여잡고 계단을 오르며 전단지 붙이는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선을 주지 않으려 해도 엘리베이터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열고 닫히는 문을 멍하니 쳐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을까.’


아파트 한 동을 계단으로 오르내리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가까스로 몇 십장을 붙인 나는 밖으로 나와 땀을 닦아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어머니가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이유 모를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잡념을 떨친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옆에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그리고 택배 기사가 출입하는 틈에 자연스레 아파트 현관문을 통과했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하나 둘 오르며 마음속으로 기도하듯 조아렸다. ‘어머니, 이제 높은 곳으로 올라가세요. 두 번 다신 여기 낮은 곳으로 떨어지지 마세요. 이제 누구보다 높은 곳에 계세요. 나는, 이제 괜찮아요.’


-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꼬박 2년의 시간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단지를 붙이고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는 매 순간마다 어머니가 더 높은 곳으로 가길, 나 또한 부디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지 않길 염원하며.


하늘과 땅만큼이나 먼 곳에 있는 어머니와 내가 행복하길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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