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어머니를 떠나보냅니다.
우울했다. 밤낮없이 어머니를 그리다 보니 가끔은 진짜 어머니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약에 취한 탓인지 몽롱해진 상태로 한참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가난에 짓눌려 발버둥 치고 있을 때 정남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정남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내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심히 한 마디를 툭 뱉는다. “최순임 씨, 아까 만들기 방에 가더라고요. 같이 갈래요?” 나는 소매춤으로 급히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남을 따라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최순임 씨를 보러 갔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그 어느 때보다 색종이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우리 두 사람은 멀찌감치 떨어져 말없이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십분 쯤 흘렀을까. 그녀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끄트머리가 조금 구겨진 색종이를 들어 올리더니, 예쁜 꽃을 만들어냈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가 어찌나 밝은지,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만들어 낸 표정처럼 보였다.
덩달아 웃고 있던 나에게 그녀의 시선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알아본 듯 그녀는 밝은 얼굴로 다가오더니, 내 한 손에 꾸깃한 색종이 꽃을 쥐어주었다. 그리곤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아가야, 꽃이다 꽃. 이거 아가 거야”라며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목에 무엇인가 턱 걸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심통이 나 그것을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긴 후 입을 닫았다. 더 이상 그녀의 옆에 있는 게 힘들어진 나는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쥐어준 종이꽃을 침대에 올려두고 한참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 나는 정남과 함께 또는 혼자 최순임 씨를 종종 지켜봤다. 그녀는 늘 내게 ‘아가’,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아마 제정신이 드는 날은 손에 꼽는 단계가 된 모양이다. 나는 최순임 씨에게 종이꽃을 받은 이후로 며칠 내내 정말 그녀의 아들이라도 된 것처럼 뒤를 졸졸 따라다녔기에, 며칠 새 그녀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의 딸이 맛있는 제철 과일들을 예쁘게 담아 병원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오더라도, 최순임 씨는 그런 딸에게 마저 ‘아들’이라고 불렀다.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각, 최순임 씨가 있는 병실에서 큰 소리가 나는 일도 잦아졌다. 발작을 하는 그녀는 4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내 아들이 저기 있어요. 살려주세요”라는 말 등을 외쳐댔다.
나는 최순임 씨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아들을 그리워하고 자신을 자책하는 40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그녀에게 지옥 같았을까. 그녀가 위안을 얻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평안해지려면 오랜 시간 마음에 묻고 그리워한 그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하지 않을까. 아들을 구해내지 못한 그 순간에서 벗어나, 그녀가 제 몫의 삶을 살아내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그녀는 40년 전 그날, 그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세상 편하게 남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문득 나와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도 내가 당신을 놓고 평안해지길 바라실까. 지금 내 꼴을 보면 어머니는 무어라 하실까. 아마 어머니는 어두운 지하로 추락하는 그 순간에도 하염없이 내 걱정만 하셨으리라.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어머니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젊음을 뜯어먹고 자랐다는 죄책감과 함께 나를 위해 인생 전부를 희생한 그런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모두 나 때문이었다. 나를 힘들게 한 것도, 미치게 한 것도 모두 나였다.
침대에 앉아 최순임 씨가 건넨 종이꽃을 만지작 거리다가 생각했다. 비로소 이제야 떠나간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고, 이제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가 된 것 같다고.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답은 하나였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낼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병원에 온 지 이주가 넘자 이모가 찾아왔다. 그녀는 밥을 잘 먹었냐는 질문과 함께 이제 괜찮냐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살폈다. 나는 그런 이모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말했다. 처음엔 나를 설득하며 퇴원을 만류했지만, 이제 어머니를 제대로 떠나보내고 싶다는 나의 부탁에 결국 그녀는 큰 결심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병원에 온 지 이주하고 삼일 만에 나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