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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Aug 26. 2023

1983년 8월 7일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실제상황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실제상황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민방위 훈련을 통해 경계경보는 알고 있었지만 공습경보를 처음 접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그날  사람들은 고교야구 봉황대기 결승전을 보기 위해 TV앞에 앉았다.      


“인천지역이 공습받고 있습니다. 실제상황입니다”라는 자막을 보며 피난을 준비했다는 그날 나는 공습경보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열두 명은 영원히 그날을 기억 밑바닥에 봉인한 채 어쩌면 화석 같은 보물로 간직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았지만 고3에게 방학은 무의미했다. 80년대 초, 선풍기조차 하나 없는 그때 그 여름 교실은 말 그대로 찜통이었다. 학교 공부를 전부로 알던 고3에게는 휴일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서 눈뜨면 학교로 모이던 그런 시절이었다. 학력고사를 100일여 앞에 둔 우리는 열다섯 과목을 공부해야 했고 67만 명 지원자의 20% 정도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입시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기였다.   

  

한 번도 말썽을 일으킨 적 없는 나는 엄마의 자랑이었고 동생들의 모범이었다. ‘하지 마’라고 정해진 것은 하지 않았고 ‘가지 마’라는 곳에는 가지 않던 숙맥이 바로 나였다. 열아홉 살 먹도록 그 흔한 빵집 한번 만화방 한 번을 못 가본 나. 그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탈을 감행한 그날,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 나와 열한 명의 내 친구가 있었다.     






O 읍의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은 S 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버스로 통학했다. 읍내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일종에 인증이었다. 샛별 보고 나가서 자정 무렵에야 돌아오는 일상이 권태의 연속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모범생으로 자란 친구들 역시 내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유유상종이었다.     

그날 거사를 치르기 하루 전 밤,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시외버스에 늘 타던 친구들이 올랐다.     



“아, 피곤해. 하루만 딱 하루만 쉬고 싶다.”

“누가 아니래. 학교 가면 뭐 하냐고. 어차피 공부는 안되고 잠은 쏟아지고.”

“그러게. 하루만 계곡 가서 놀면 원이 없겠다.”

“……”     



누가 한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눈앞에 걸쳐진 영롱한 무지개를 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CF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리는 정류장이 지났는데 내려야 할 친구가 내리지 않았다. 버스는 내가 내리는 다음 정류장이 종점인데 거기까지 가야 할 친구들이 우르르 나를 따라 내렸다.     








일탈을 위한 심야의 모의. 한밤중 높이 떠있는 달빛을 피해 우리는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 우리는 그의 후회는 망각한 채 그저 즐거워했다. 어디로 갈지 아직 모르지만 다음날 평소와 똑같이 집에서 나와 이 정류장에서 만나자는 굳은 도원결의가 순식간에 진행됐고 영악한 JK는 각자 집에서 들고 나올 물건들을 정해주었다. 여름이지만 추웠다.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챙겨야 할 카세트 라디오를 어떻게 아빠 방에서 들고 나와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는 이미 늦었다. SONY 신제품 카세트 라디오는 다른 집 제품보다 휴대할 만한 크기라서 생각 없이 손을 든 내가 원망스러웠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빠는 언제나 그것을 끼고 사는데. 도저히 빼낼 방법이 없을듯해서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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