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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Nov 21. 2023

K. 눈으로 시를 노래한다


         

나이 들어도 멋있게 살자며 시를 적고 수필을 쓰는 친구들이 있다.  

만난 지 일 년 남짓 흘렀지만 때로 형제, 자매 같은 사이랄까. 우리가 모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설레는 기분이 든다. 살아온 길이 많이 다른 우리. 아직은 서로를 잘 안다 고 할 수 없지만  가끔 한 번씩 만나고 온라인에서 친해지며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종종 맞춤법이 틀려도, 어디쯤에는 오타가 있어도 서로를 응원하며 익어가는 중이다.

          

우리가 모이는 곳은 산업단지에 있는 ‘함바식당’ 2층.  오래 비워둔 곳이라 먼지로 뒤덮인 그곳을 쓸고 닦고 집에 있는 책도 가져다 놓으니 그럴싸한 북 카페가 되었다. ‘글벗’이라는 문패도 달았다. 여기는 우리가 아직 청춘인 척해도 뭐랄 사람이 없어서 안락한 아지트이다. 공간을 흔쾌히 제공한 이가 이 글의 주인공 K이다. 그녀는 근처에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의 직원들이 매일 한 두 끼니를 해결하는 식당의 요리사였다. 평생 주방에서 손에 물 마를 날 없이 살아온 그녀지만 마음만은 소녀인 K.   


그녀의 음식을 처음 맛보며 손맛의 근원이 맑은 미소일 거라고 혼자 생각했다. 바쁜 주방 일이 힘들 텐데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눈인사를 건네는 K. 덕분에 먹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내세울 학력도 이력도 없다며 그냥 밥 하는 아줌마일 뿐이라고 수줍게 소개하던 첫 만남이 생각난다. 그렇게 스스로 특별하지 않다던 그녀에게 유독 관심이 생겼을 때는 K의 시를 읽은 후였다.


K의 시에는 색깔이 많았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사계절이 무지개다’라는 시구는 그녀의 색깔 사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다. 어느새 나는 K의 시에서 오늘은 무슨 시를 썼을까가 아닌 어떤 색을 썼을까?를 찾고 있었다.         

어느 날 차려놓은 음식을 보면서 그녀가 하는 말을 들었다.    


“ 오늘 음식은 맛있어 보이지 않네.”          


맛은 먹어봐야 아는 것이라던 나의 생각은 K의 한 마디에 무너졌다. 음식을 눈으로 맛본다는 그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볼 때는 잘 차려진 음식들이 근사해 보이는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명색이 시인이니 합동 시집 한 권 만들어보자는 들썩임이 현실이 됐다. 우리를 응원해 주던 산업단지에 대표들 몇 명이 후원자가 돼주어 기적처럼 작은 시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육십이 훨씬 넘어 생애 첫 시집을 품에 안은 K는 ‘떨린다’는 말로 기쁨을 표현했다. 작은 출판 기념회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가족도 부르고 지인들도 부르다 보니 작지 않은 행사가 되어버렸다. 뭔가 보여줄 거리가 필요했던 우리는 시 낭송을 결정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다들 어설퍼도 얼추 흉내를 내는데 K가 문제였다. 도통 배경음악을 맞추지 못하는 그녀의 낭송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아니, 조금 더 음악을 듣고 박자를 맞추어서 시작하시라고요.”    

      

모두 처음인 것은 매한가지인데 유독 K만 헤매는 모습. 여러 번 시도해도 좋아질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기획을 맡은 나로서는 조금 더 훌륭한 행사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사실은 나 청각장애 3급이야.”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아니 우리 모두 같았다. 일 년여 시간 동안 우리 중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언제나 예쁜 미소로 눈 맞춤하는 그녀. 때로 목소리가 크고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 적 열병으로 청력을 잃었다고 했다. 입술 모양을 읽으며 소리를 구분하는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음악은 애초부터 풀 수 없는 문제였던 것.  K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어려웠다.


나의 궁금증이 풀렸다. 맛을 눈으로 본다는 K의 말이 비로소 이해됐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다른 감각이 잘 발달한다는 심리학자의 이론. 그녀는 아픈 달팽이관 대신 반짝이는 눈으로 소리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녀의 시에 보였던 색깔은 어쩌면 바람 소리였고 빗소리였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를 읽었다.  


        

‘보듬어 가야 할 사랑을 위해

이슬 맺힌  아침

햇살 저무는 저녁노을

스치는 바람에도

엄마의 노래는 기도입니다’   


       

아! 그녀의 에는 K가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자장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듣고도 소통하지 못하는 나보다 눈으로 듣는 그녀의 노래가 더 아름다운 이유였다.   


그날 K는 나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시낭송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소리 내지 않은 그녀의 낭송을 절절한 가슴으로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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