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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Nov 16. 2023

호박푸레기

엄마는 그 음식을 푸레기라고 불렀다.


엄마는 그 음식을 푸레기라고 불렀다.

푸레기가 정확히 맞는 표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늦은 가을이 되면 엄마는 가마솥 한가득 노란 색깔 푸레기를 쑤었다. 뜨거울 때는 뜨거운 대로, 한 김이 나가면 나간 대로, 차갑게 식었을 때는 또 그대로의 맛이 색다른 엄마 표 가을 별미를 나는 참 좋아한다.


40년을 함께한 내 친구들도 가을이면 습관처럼 우리 엄마의 푸레기를 찾는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맛을 요즘엔 호박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 친구들 역시 푸레기라고 부르는 건 아마도 스무 살 때 처음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


수 삼 년 전에 엄마가 푸레기를 쑤었다며 먹으러 오라 해서 기대하고 갔다가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기에 한 숟가락 뜨고는 맛이 변했다고 투정을 했던 적이 있었다.


맛이 변한 건가?

내가 변한 건가?

아니면 재료가 변한 건가?


뭐가 그리 중한 일이라고 엄마와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심각한 토의를 했다. 호박은 원래 쓰던 늙은 호박이 맞고 콩도 내가 좋아하는 강낭콩이 맞는데 뭐가 달라진 것일까? 답은 쌀가루였다. 지난날 내 기억 속에 있던 푸레기에는 밀가루 풀이 풀어져 있었는데 엄마는 좀 더 좋게 해 본다고 쌀가루 새알심을 만들어 넣은 것이 원인이었다.


푸레기는 가난했던 시절 그래도 맛나게 자식들을 먹이려는 엄마의 사랑음식이었다. 지금은 호박한통도 비싼 돈을 내야 살 수 있지만 예전에는 밭고랑이나 초가지붕을 타고 흔하게 굴러다니는 것이 늙은 호박이었다. 인심 좋은 동네 사람들에게 호박 한 덩이쯤 얻어 내는 건 그리 큰 부탁도 아니었고 어차피 누가 안 먹으면 소 죽 쑤는데도 들어가는 그런 식자재였다.

호박은 길쭉한 것보다는 골이 깊게 진 둥근 호박이 더 달고 맛이 있었다. 


두 번째 중요한 재료는 콩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특히나 나는 콩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금도 콩밥을 할 때면 쌀보다 콩을 더 많이 넣기도 한다. 반찬이 없어도 그냥 콩이면 좋아했던 나라서 푸레기 재료의 최애는 역시 콩!  그리고 세 번째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걸쭉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밀가루풀인데 펄펄 끓어오르는 호박 물에 이 밀가루풀이 들어가면 끓어오르는 용암이 푹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도 뷔페에 가면 호박죽은 수프 같은 형태로 쉽게 볼 수 있으나 그건 푸레기가 아니다. 그래서 엄마도, 그리고 나와 친구들도 호박죽이라고 절대 부르지 않는 이것이 호박 푸레기인 것이다.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손에 물집 몇 개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껍질을 벗기는 일이 장난이 아닌데 엄마는 요령껏 잘도 벗겨 냈다. 콩은 강낭콩이 들어가는 것이 훨씬 맛이 좋았다. 그래서 엄마는 강낭콩이 날 때 미리 말려 저장을 해 두었다가 푸레기를 만들기 전날 하루 온종일 말린 콩을 불렸다. 


가마솥에 호박을 가득 썰어 넣고 물을 붓고 불을 때서 어느 정도 호박이 익으면 그때부터는 부뚜막에 올라앉아 호박을 휘저어 섬유를 풀어내는 작업을 했다. 국자로 꾹꾹 눌러가며 호박을 풀어주면 노란색 물이 참 고왔다. 


요즘은 조리도구들이 다양해서 쉽게 재료를 으깨기도 하지만 그때는 오직 커다란 국자와 나무주걱만이 전부였다.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엄마는 이때를 제일 힘들어했다. 목에 수건을 하나 걸쳐 놓고 혹시나 땀이 솥에 빠질세라 젓고 닦고를 무한 반복했다. 호박이 다 풀어지면 콩이 들어갔고  여전히 장작불은 맹렬히 타올랐다.

엄마의 땀과 고단함이 절정에 다다를 때 밀가루 풀이 들어가면 비로소 장작불을 줄이고 천천히 젓기를 계속한다. 밀가루풀이 호박죽에 얼기설기 닿으면 콩알만 한 밀가루 풀들이 몽글몽글 익어 간다. 숯처럼 작은 불씨로 은근하게 푸레기에 열기를 가해 졸이면 설탕이 없이도 제법 단맛이 나는 푸레기가 완성된다.


계절은 해마다 돌아오고 친구들은 그때마다 푸레기를 찾는데 어쩌면 다시 그것을 먹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엄마가 늙으셨다. 파킨슨병과 치매로 스스로를 지탱하기도 어려운 엄마에게 해마다 오는 가을은 어쩌면 안타까운 일장춘몽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손과 다리에 안타까운 노력을 더해보지만 마음만 앞서갈 뿐. 아직 엄마 기억이 맑을 때 나의 둔한 손이라도 걷어붙이고 만드는 흉내라도 내봐야겠다. 물론 기억 속에 새겨진 그 맛을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엄마에게서 출발한 음식 한 가지가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주었듯이 시간이 지나고 엄마를 추억하는 좋은 얘깃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꼭 한번 도전해 봐야지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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