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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Nov 24. 2023

아이야       

이태원 백쉰아홉 별들을 추모하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가족 단톡방에서 조카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 출첵….’     


누구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또는 너무 바쁜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열 명 남짓한 이삼십 대 아이들을 한 톡방에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한 녀석, 한 녀석 꾸물꾸물 대답이 올라오고 우리 아이들에게 참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아이들은 착해.”     

 

그것은 나의 오답이었다.

이태원에 가지 않은 내 자식이 내 조카가 정답이라면 거기서 돌아오지 못한 억울한 영혼은 오답이란 말이 된다. 이제껏 그런 일이 있었던가?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지만 한꺼번에 백쉰아홉이나 되는 젊은 영혼이 하늘의 별로 스러져간 그 밤. 인파가 몰릴 것을 예측했고 대책을 촉구했으나 무시되었던 그 밤에 정부가 말 한대로 그저 그 자리에 간 아이들의 개인 문제니까 왜냐고 묻지 말아야 하는 건지. 그날 나는 한 조각 의심조차 하지 않아 멍청하게 안도할 수 있었다.      

원인규명이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사회는 점점 소란해져가고 있는 상황.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며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 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이것이 당신이 말한 공정이고 정의입니까….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무릎 꿇고 절규하는 아들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이 사진과 기사 한 글자 한 글자를 통해 나에게 아픈 외침으로 전달되어 왔다.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아픔을 공감할 터인데 국가는 막강의 권력을 동원하여 ‘애도 기간에만 정한 대로 애도하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름을 묻는 것도 패륜이고 ‘2차 가해’라며 참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부모의 오열을 외면했다. 이웃의 개가 죽어도 슬픔을 서로 나누는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인데….     


사진으로도 느껴지는 그 애통함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도 자식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장난하던 녀석이 손으로 유리를 깨는 바람에 혈관과 신경이 끊어져 큰 출혈이 있었다. 성산포 시골에서 시내 응급실이 있는 병원까지 가는 데만 한 시간. 그 길을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응급수술하고 기능에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결과를 들은 시간이 새벽 두 시경이었다. 수술실 옆 차가운 벽에 혼자 기대어 소리 없이 흘렸던 눈물이 얼마나 됐을까. 사고 나서부터 안도하기까지 걸린 열 시간 남짓을 이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가끔은 아이 손을 수건에 싸매고 뛰어가던 그날 모습이  꿈에 보이기도 한다. 그럴진대 이 무릎 굻은 아버지는  어찌 살라고. 국가를 통치한다는 자들이 이토록 냉혹한 지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나 역시 묻고 싶었다.     

 

 “진실을 밝혀 주십시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열려서 혹자는 이태원의 참사가 묻힐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수년 동안 땀 흘려 준비한 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는 일에 무슨 잘못이 있을까. 16강 진출을 앞둔 마지막 경기 역전골을 성공시키는 장면에서 텔레비전 안에 선수도 응원단도 그리고 나도 울었다. 인터넷 기사마다 축구로 도배가 되었다. 축제였다. 정말 오랜만에 기쁨이라는 것을 느꼈다. 축구공 하나에도 열광하며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대~한민국.’ 이렇게 사랑하는 내 조국인데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세월 호에 실려 바람이 된 아이들아, 이태원 밤하늘에 별이 된 청년들아! 그대들의 죽음은 이토록 아픈 상처인데 왜 책임지겠다는 사람 하나가 없는 것인지 답답한 세상을 향해 소리쳐도 듣는 귀가 없다.  그대들 이름 부르다 목쉬고 눈물 마른 어미들은 죄인 되어 어찌 살라고  세상이 이토록 차갑고 어지러운지….     


아이야! 

또 그날이 돌아오니 미어지는 마음으로 너희 이름 부를 유가족 볼 면목도 없지만, 진심으로 전하는 한 마디 “아이야, 미안하다.” 이 말에라도 위로받고 아픈 세상 작별하여 바람 따라 하늘 꽃길 잘 찾아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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