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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Nov 24. 2023

처서와 백로쯤에 서성이다



가만히 나의 인생 달력을 넘겨본다.

내 나이를 일 년 절기로 따져보면 한참 전에 삼복을 지내고 처서마저 지나 백로쯤에 서있는 느낌이다. 오십 이전을 여름이라 하다면 지금 나는 가을 초입을 지나고 있는 중일까. 델 것 같은 여름에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너그러운 시간이 중재해 주어 유순해지는 시간. 잠시 호흡 고르기가 끝나면 일 년 내내 고생한 흔적을 수확하는 본격적인 가을이 온다. 삶의 풍성한 수확을 꿈꾸며 아쉽게 스쳐 간 계절과 또 다가올 계절을 생각한다.  


             

개나리를 좋아한다. 화려하게 혼자서도 빛나는 시간의 꽃, 나는 이것을 청춘이라 생각한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아도 담벼락에 부서지는 햇빛만으로 피어나는, 개나리의 강인함을 좋아한다. 찬란한 아름다움 뒤에 따라오는 초록의 건강한 기쁨, 봄을 표현하는데 조금도 부족하지 않기에 나의 봄은 항상 개나리와 함께 시작됐다.     

내 인생의 봄도 찬란했다.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을 배우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한 뼘씩 성장하는 나날들이 싱싱했다. 실패를 만나도 툭 털어내는 힘을 길러가며 가끔은 철없어도 행복했던 봄날에 내 삶의 정점이 된 그날도 역시 늦은 봄이었다.   

   

K. 그는 내 첫사랑이다.   

나한테 남자라는 종족이 딱 한 사람만 보였던 그때는 지금 돌이켜봐도 행복이었다. 처음 느끼는 색다른 설렘에 취해 뜨거운 여름이 올 거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환각의 시간. 도처에 봄이 가득했다.      

결혼, 두 아이를 얻었다. 엄마가 되어서야 나의 개나리가 만개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봄날과 첫사랑은 목련이 하룻밤에 툭 떨어지듯 그렇게 끝이 났다. 꽃이 지고 잎이 돋아나듯 가시로 내 어린 아기들을 감싸야하는 고슴도치엄마로 나는 새로 태어나야 했다.                



여름

혼자 막아내야 하는 빗줄기가 거셌다. 날개 안에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처럼 두 아이에게 우산 씌우고 내 등은 장마 비에 흠뻑 젖었다. 차다고 말할 여유조차 없었다. 장난처럼 다가 온 이혼 그리고 사업 실패까지 혹독한 여름의 시작이었다. 뙤약볕 가운데 그늘은 한 점도 보이지 않았고 힘겨운 여름이 계속되어도 엄마는 지칠 틈조차 얻지 못했다.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 났다. 숨이 멎을 것처럼 힘들었던 순간마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심폐소생술 같은 존재였다     

사교육 하나 없이 명문대에 진학한 후 극지과학자가 되었고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딸. 내 곁에서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며 때로 애인 같은 아들. 살아가며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과 행복했던 순간을 공유한 나의 두 아이 덕분에 지치지 않고 여름을 이겨냈다.                



가을

입추는 달력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새벽시간 나도 모르게 이불을 끌어당긴다. 거리에, 테라스에 국화가 보인다. 어느 계절의 꽃보다 향기가 진하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시인이 되고 싶은 이 계절의 센티멘털이 나는 좋다.      

인생계절의 반환점을 돌고 어느새 나도 가을에 서성인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들 덕분에 글자가 가지는 감성에 익숙한 나. 살면서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던 갖가지 감정들을 그때그때 노트북 한구석에 적어 놓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마주설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또래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고전을 읽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한 걸음씩 작가의 길을 향해 걷고 있다. 수확이 가을의 절정이듯 나의 인생을 갈무리하는 마음으로 독서하고 글을 쓰는 지금이 행복하다.     

농부를 아프게 하는 늦은 태풍이 한 해 농사를 망하게도 하지만 무릇 가을은 수확의 계절. 나의 미래에 어떤 먹구름이 닥칠지 아직 모르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기보다는 지난 것에 감사하고 앞날을 희망으로 기대하는 즐거움이 더 나답다고 생각한다.     

국화처럼 향기로운 계절을 산책하듯 돌고 내가 가을에 오래 서 있으면 좋겠다.               



겨울

창문 유리에 하얀 성애가 꽃으로 피는 밤이면 둥그런 화로를 방에 들이고 밤을 구워주시던 아버지. 고운 소리로 동화책을 읽어 주시던 엄마. 평화로운 행복이 꿈길로 우리를 이끌었던 겨울밤의 추억. 그 모두가 더 이상 현실이 될 수 없기에 더욱 그립다. 내 기억 속 부모님의 삶을 뒤 밟아가듯이 천천히 늙어 마침내 나도 인생의 겨울에 도착하겠지.      

어쩌면 겨울을 맞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첫눈은 맞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부쩍 생겼다. 딸이 아이를 잉태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교할 수없이 크게 오는 기쁨에 주책맞게 설레발치는 나를 본다. 아직 밤톨만 한 녀석에게 이런 느낌이 드는데 태어나서 ‘할머니’라고 부르면 어떨까. 그 기쁨을 형용할 단어가 존재하는조차 지금은 모르겠다.     


태어날 복돌이를 위해 배냇저고리 한 벌을 만들었다, 한 땀 한 땀 사랑과 소망을  바느질했다. ‘나는 겨울에 있지만 아이의 뽀얀 봄을 마주하면 그 겨울이 춥지 만은 않겠다.’라는 상상. 그 안에서 다시 피어나는 개나리를 보며 아직 오지 않은 나의 겨울을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나는 한로 지나 상강에 도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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