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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May 30. 2024

육아는 템빨입니다.

고양이 작가님 찬조출연 감사합니다^^




템빨이라는 단어에 꽂힐지 몰랐습니다.

내 육아 철학은 예절과 독서 사랑 뭐 이런 것이었습니다. MZ 육아에는 아이템 우선이라고 합니다. 들어본 적 없는 희귀템들을 장착한 젊은 부모들을 보면 맨땅에 헤딩하던 초보 육아러였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때는 이라 하면 꼰대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좋을 때다'라는 자조 섞인 한숨이 발사됩니다.

황혼육아를 준비하는 독자님, 들어 본 적 없던 희귀템 가득한 육아 속으로 같이 가봅시다.


처음엔 일회용 기저귀를 어쩌다 외출 때 하나씩 사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쉬운 길을 알면서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자는 없는 것처럼 일회용 기저귀는 초보엄마에게 혁명이었습니다. 국산 일회용 기저귀가 처음 나왔을 때가 막 초보엄마가 됐을 때였습니다. 편리성과 환경문제의 논쟁이 뜨거웠던 때, 천기저귀를 쓰지 않으면 환경 대역죄인이 된 느낌이어서 눈치 보며 기저귀감 한필을 끊어 자르고 끝단을 휘갑치고 꽃 한 송이 수놓는 것을 수고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화장한 날에 하얀 기저귀를 빨아 높다란 바지랑대 세운 빨랫줄에 널고 아직 해가 중천일 때 거두어 손다림질해서 접어 쌓으면 양식을 쟁여둔 기분이라고.


딱 거기까지만 했습니다. 일회용 기저귀에 맛 들인 후 환경은 남의 일로 미뤄두는 배짱이 생겼습니다. 젊어 돈 아껴서 부자 돼야 하는데 기저귀에 쓸데없이 돈 쓴다는 시어머니 핀잔쯤은 한밤중 천기저귀를 갈아대는 수고와 쉽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황혼육아를 시작하며 기저귀 네 박스를 받았습니다. '저걸 언제 다쓰나, 작아지면 어쩌나.' 기우였습니다. 환경과학자인 딸, 환경부담금 많이 내는 사위한테 모든 책임을 떠 넘기고 정작 나는 아이 엉덩이만 생각하는 할머니가 됐습니다.

소재공학 박사님들 응원합니다. 환경에 무해한 기저귀 만들어주세요!


육아에 필요한 3대 이모님이 있답니다.

1. 분유를 자동 제조하는 이모님

2. 젖병 소독 건조하는 이모님

3. 이유식 만드는 이모님


듣도 보도 못한 이모님과 통성명하기 전에 '쓸데없이 그게 뭐에 필요한데' 라며 이모님 존재를 폄하했던 나의 오만을 첫 번 이모님을 만나면서 회개했습니다. 당신들 위력을 몰라서 실수했으니 제발 용서하소서.  


1번 이모님 위력에 대해서는 '이모님 브레짜 이모님' (https://brunch.co.kr/@yijaien/362) 편에서 자세히 소개한 적 있어서 패스.


모유수유를 하고 싶어도 물리적, 화학적, 생리적, 해부학적 조건이 안 맞으면 할 수 없는 일이겠죠. 나도 마음속에 주홍글씨 하나 새기고 분유수유를 했습니다. 여기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시어머니의 주옥같은 한 말씀.

'사람이 소젖을 먹으면 쓰냐'

식품공학 박사님들 당신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소젖 먹고 사람답게 커난 내 아이들로 당신들의 위대함을 증명합니다.


문제는 젖병을 소독할 때였습니다. 식욕 왕성한 아이들의 젖병은 언제나 부족했고 연탄아궁이에 커다란 냄비 걸고 부글부글 삶다 보면 왜 그리 부족한 잠이 쏟아졌는지. 요즘처럼 화재경보기가 발달했더라면 119 대원이 고생깨나 했을 텐데 다행히 그때는 창문 열고 냄새 환기하는 정도로 마무리했습니다. MZ의 젖병소독은 한 그릇 안에서 삶고 건조가 가능합니다. 나는 클래식한 방법으로 젖병을 삶고 UV소독 건조기로 옮기는 퓨전스타일을 선택했습니다. 2번 이모님에 대해 먼저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요?   


3번 이모님은 육아선물에 들어있어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사용 전입니다.

1번 이모님의 위력을 알고는 3번 이모님께 같은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답니다. 이유식 시기가 되면 더 많은 존경심을 표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분 이모님이 양육자를 위한 템이라면 아이와 함께하는 템도 있습니다. 복돌이 하루 루틴이 만들어지면서 육아템의 실력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복돌이 최애템 모빌은 오전반입니다. 오전 시간 대부분을 책임지는 모빌은 오르골 음악과 함께 유려한 회전으로 아이를 평화롭게 합니다. 덕분에 집안일 뚝딱 해치우는 동안 보모역할하는 모빌은 나에게도 보물입니다.

오후시간에는 움직임이 많아집니다. 바운서와 보행기 해먹 등으로 액티비티와 휴식을 적절히 배합하며 도움을 받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양육자를 위한 아이템이 아닌가 싶습니다.


MZ에게 육아템이 필수라고 하는 말을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육아는 템빨입니다. 황혼육아에 특화된 더 많은 아이템이 등장해 주길, 부실한 내 몸에 도움 줄 고마운 이모 삼촌이 많이 개발되면 홍보대사 할까요?


육아에 예의, 독서, 사랑은 디폴트였습니다. 육아는 템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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