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 Jun 28. 2024

뜨거운 이슬

45.                   



 

연이는 활공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 창가에 앉았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페인트 냄새가 커피 향 사이로 슬금슬금 삐져나왔다. 너른 유리창 밖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있다. 올라오던 길에 보았던 한반도를 닮은 지형 뚜렷하게 보였다. ‘신기한 일이네.’ 습관처럼 혼잣말을 소리 나게 하는 연이가 따뜻한 머그잔을 감싸 들었다.   산사람은 살아진다는 말이 실감 났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도 먹고 자고 웃는 스스로를 용서해도 되는지 연이가 되물었다. 그 것이 삶의 잔인함이려니. 연이가 낮게 한숨을 뱉었다.


선영을 태우고 날아간 노란 낙하산이 오르락내리락  보였다. 무섭지도 않은지 주저 없이 달려가 날아오르는 선영을 보며 아직 젊은 딸이 더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르신.”    

 

모니터 앞에서 눈꼬리를 치켜뜨던 여자가 입가에  미소 머금은 채 테이블 옆에 섰다. 카페에도 다른 손님이 없어서인지 한가해 보였다.     

 

“ 어르신 일부러 오셨는데 체험하지 못해서 서운하시죠?”


상냥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 언감생심, 늙은이가 그거 타러 왔겠어요. 하늘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왔지요.”

“ 아, 누가 돌아가셨나 봐요?”

“ 아들을 앞세운 죄 많은 사람입니다.”

“ 어이쿠 실례했어요 어르신. 맘이 아프실 텐데 괜한 소리를 해서. 용서하세요.”

“ 용서할 자격도 없는 어미라서….”   

  

여자가  안절부절못했다. 연이는 좋은 곳에 와서 괜스레 불편을 만든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다. 어쩌면 한동안 가는 곳마다 이 같은 상황을 만들지도 모르는 일인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머그잔을 움켜쥐었으나 하늘로 고정한 눈에는 다시 아픈 이 솟구쳤다.      


“ 어르신, 따님하고 무전으로 통화해 보시겠어요?”

“ 하늘을 날면서 통화할 수 있어요?”

“ 그럼요. 제가 연결해 드릴게요.”    

 

여자는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지지직대며 잡음이 들렸다.     


여기는 베이스 보스 오세요”

“ 베이스, 말씀하세요.”

“ 선영 씨와 어머니가 무전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남자가 선영 무전기 채널을 바꿨다.         


"선영이니? 엄마야."

"우리 엄마 출세하셨네 무전도 해보고"

"호호 그러게 말이다. 재미있니?"

" 네 엄마, 재미도 있고 신기하기도 해요."

" 뭐가 그리 신기할꼬?"

"그런 게 있어요 흐흐"

" 나중에 말해줘.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하늘을 날고 있으니 아빠와 선길이랑 가까이 있잖아. 우리는 잘 있다고 편안히 잘 지내시라고 말 좀 전해줘."


선영은 연이가 패러글라이딩을 선택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연이는 선영의 꿈을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 벌써 전했어요, 잘 지내신대요 아빠도 선길이도.'


콕 찌르면 툭 터질 것 같은 하늘. 거기에서는 선영이, 땅에서는 연이가  그리운 가족을 위해  허공 가득 뜨거운 이슬을 뿌리고 있었다. 

시리도록 맑은 가을 오후였다. 끝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7화 이선영 나와라 오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