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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27. 2024

이선영 나와라 오버

44.          



     

처음 몇 걸음은 경보하는 수준으로 걷다가 뛰어.


난다.

하늘을 날고 있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가을이 얄궂게 간질인다. 자연이 건네는 환영인사에 선영이 화답하듯 미소한다.

선영은 믿기지 않게 가벼운 자신을 느꼈다.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은 텅 빈 선영이 구름과 나란히 떠있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발아래로 눈을 돌렸다. 자유로운 강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 반짝였다.

원초적 자유가 선영을 치유하는 느낌에 저절로 행복했다. 이대로 영원히 날고 싶다 생각하는데.     


“이선영 나와라 오버.”    

  

무전기를 타고 낯익은 목소리가 빙글빙글 웃으며 선영을 불렀다.  

   

“꿈 일거야. 그렇지 꿈이지? 선길아.”     


빨간 낙하산에 검정 선글라스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내 동생 선길이 낙하산을 조정하고, 아!

그 앞에는 ‘아버지’가 함께 날고 있었다. 아버지의 환한 미소. 선영은 아버지의 미소를 기억한다. 자연인 생활을 하겠다며 산에 들어가서 엄마랑 둘이 살던 몇 년간 아버지는 저렇게 밝은 미소를 보였다. 젊어서 볼 수 없던 손가락 하트도 심심찮게 보여주며 자식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더니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채 오 년이 못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꿈에도 안 오시던 아버지.

  

“ 아빠, 잘 지내시는 거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 우리 딸 좋아 보인다. 선영아 네가 여러모로 애쓰는 거 아빠가 알아. 고맙다. 엄마도 잘 챙겨줘서 고맙고. 그런데 엄마 너무 힘들게 하지는 마. 젊어서 아빠가 많이 힘들게 했잖아. 이제 즐겁게 살다가 시간 되면 기쁘게 아빠랑 아들 있는 곳으로 오면 좋겠어. 엄마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도록 네가 이해하렴. 남자 친구랑 썸도 타라하고. 하하하.”

“ 아빠는 하늘생활이 좋은가 봐요. 농담도 술술 하시네요.”

“ 하늘 좋지, 너무 좋아. 이번에 선길이 와주어서 더 좋고. 아들 너도 좋지?”

“ 그럼요 아빠랑 이렇게 비행도 하잖아요. 누나도 얼른 올래?”

“ 예끼 누나는 엄마랑 좀 더 오래 살다와야지. 그리고 선영아, 너도 할 만큼 했어 딸도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하단다. 이제 애들한테서 좀 벗어나서 네 삶을 기쁘게 살면 좋겠구나.”     

" 누나 내 몫까지 즐겁게 살다가 천천히 와. 나중에 내가 마중 갈게 서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바람방향이 바뀌었는지 몸이 흔들렸다. 잠깐 눈을 감았다.


" 어때요? 멋지죠. 이 맛에 패러를 계속한답니다." 조교 목소리가 무전기로 들렸다. 강과 나무와 바람과 햇살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아빠, 선길아. 고맙습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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