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주는 유익
곧 우리 막둥이 하원시간인데 왼쪽 날개쭉지부터 팔이 너무 아파…..
이제 나가야 되는데 옷도 못 입겠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병원으로 바로 가..?
어찌어찌 하원하고 오후 일과를 보냈다.
아픈 팔을 얼싸안고 아이를 재우 고나니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슬- 떠오른다.
‘아… 왼쪽으로 팔베개하고 누워서.. 노트에 글을 썼구나…..’
아프기만 할 때는 통증에 사로잡혀 두렵기만 하더니.. 원인을 발견하고 나니까 두려움이 사라졌다.
아프다고 소리를 내는 사람, 혹은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랬겠구나 싶다. 괜찮아? 어디가 아파?라고 묻기보다 이미 벌어진 일(상처)에만 집착했을 거다.
천천히 상처를 들여다보고 놀란 마음을 안아주려 하기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만 에너지를 쏟고 있었을 것이다.
꽤 넓은 부위에 뜬금없이 통증을 느껴보니 알겠다. 생각보다 이 부위를 자주 사용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통증을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부위를 천천히 움직이게 되고 의사는 아니지만 촉진하면서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본다.
이내 악! 소리와 함께 ’쓰읍-아이고 여기가 이렇게 아프구나..‘ 하며 스스로 다독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왼쪽으로 눕지 말아야지, 찜질을 해줘야지’ 하며 관심을 갖고 아프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 낸다.
전에는 아프면 화부터 났다. 하루를 살아내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몸을 사용해야 하는 유용성이 떨어지니까.
육아와 집안일은 결국 내가 해야 되는 것인데 몸이 고장 나서 미뤄진 일들은 누가 하냐는 생각에… 날이 섰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없지만 지금은 돌보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몸을 바라봐줘야 하는 이유를 알아가는 중인 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니, 아프니까 서럽다.. 서럽지 않으려고 보살피는데 집중하게 된다.
통증은 아픈 곳을 바라보게 하고 관심 갖게 한다. 그 관심이 쉼을 주거나 병원에 가서 치료하게끔 한다.
그리고 몸도, 주변에서 외치는 소리도 놓치지 말고 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아파보니까 도움이 절실해지고, 절실해져 보니까 돕고 싶어 진다.
‘내가 또 아프네, 아픈 것도 지겹다’ 하며 스스로를 병자취급 하기보다..
아픔에 집중해지 못했던 것을 미안해하며 원인을 생각해 보고 발견했다면 그 행위를 멈춰보기도 하고, 못 찾겠다면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아보면서 적극적으로 상처를 만져주는 일을 해주자고 다짐해 보는 밤이다. 그것이 몸의 아픔이든 마음의 아픔이든.
통증에 고마운 밤이네. 그래도 내일 아침엔 뼈소리도 덜 나고 몸이 한결 개운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