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를 위한 경영학, 가격 이야기
'숫자'를 생각하면 한없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일 것만 같습니다.
어쩐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철저하게 데이터, 즉, 근거에 기반하여 정해졌을 것 같고요.
그런데 가격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그 '숫자'로 이루어진 가격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모릅니다.
앞의 글에 이어 이번에도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다양한 가격 전략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제품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전략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많아지면 판매가 증진되고,
더 높은 가격대 상품에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선택지를 무작정 늘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고객을 망설이게 하여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의 이해를 도울만한 금융상품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실험 A:
저축통장 (월 수수료 1달러): 41% 선택
저축통장 겸 신용카드 (월 수수료 2.5달러): 59% 선택
실험 B: 여기에 신용카드(단독) 옵션을 추가했습니다.
저축통장 (1달러): 17% 선택
신용카드 (2.5달러): 2% 선택
저축통장 겸 신용카드 (2.5달러): 81% 선택
가격을 올리지 않고 상품 구성만 바꿨을 뿐인데도
평균 수익이 19%나 증가했습니다.
이는 앞의 글에서 설명했던 ‘앵커효과’가 함께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 앵커효과: 품질에 대한 정보도, 품질을 가늠할만한 척도도 없으며
동종 제품들의 가격대도 모르는 경우, 구매자는 참고할 만한 기준점, 앵커(anchor)를 찾는다는 것)
상품의 제공 방식만 바뀌었을 뿐, 가격은 전혀 인상하지 않았음에도
고객당 평균 수익이 매월 1.89달러에서 2.25달러로 19%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신용카드 단일상품과, 저축통장-신용카도 결합 상품을 같은 가격에 제공했다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에는 추가비용 없이,
저축통장까지 누릴 수 있는 이득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 것은 아닐까요?
9,900원, 39,900원처럼 ‘9’로 끝나는 가격은 할인이나 특가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격문턱이란 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을 때 판매가 급격히 변화하는 선을 의미합니다.
이 선을 넘지 않도록 가격을 설정하면 소비자가 가격을 낮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요즘 소비자들은 스마트컨슈머가 많아 9가 반복되는 가격에 의심을 품을 수 있고,
(왜 할인을 하는 것인지? 품질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닌지? 등)
특히 예술품처럼 브랜드 가치가 중요한 상품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그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를 음수의 효용(손해보는 느낌)과 양수의 효용(득 보는 느낌)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는 손실회피 성향이라고도 부릅니다.
예를 들어, 비닐봉지를 무료로 제공하고 장바구니를 가져오면 50원을 돌려주는 것보다, 처음부터 비닐봉지에 50원을 부과하는 것이 장바구니 사용률을 훨씬 높입니다. 이유는, '벌었다'는 느낌보다 '잃었다'는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동차 구매에서 다음 두 가지 전략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지 비교한 사례가 있습니다.
30,000달러의 자동차를 28,000달러로 할인 판매하는 경우
30,000달러를 결제하고 2,000달러의 현금 캐시백을 받는 경우
이론적으로 가격은 같지만, 소비자는 후자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이는 구매 후 돌려받는 이득(캐시백)이 보너스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는 카페에서의 스탬프 적립입니다. 3% 할인을 제공하는 것보다, 도장을 모아 1잔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이 고객에게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재구매 유도와 충성 고객 확보에도 효과적입니다.
연간 600달러 보험료 대신, 월 50달러로 표시하면 소비자는 비용 부담을 더 적게 느낍니다.
결제 단위를 작게 나누면 소비자는 ‘한 번에 내는 큰돈’보다 ‘조금씩 나가는 돈’으로 인식해 거부감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피트니스 센터에서 1년 24만원 회원권을 한 번에 받는 대신, 월 2만원씩 청구하면 고객이 더 오랫동안 꾸준히 다닐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금액을 나누어 부담하게 함으로써 심리적 저항을 줄이는 것이죠.
또한, 긍정적인 감정(인센티브나 보너스 등)은 여러 번 나눠서 지급할수록 만족감이 커지고 오래 지속된다는 점도 가격표기 전략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심성회계(Mental Accounting)는 사람들이 지출을 항목별로 마음속에서 나누어 계좌처럼 관리한다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주차비는 너무 아깝다”고 느끼지만 “외식비는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입니다. 비용의 성격이 같더라도, 어떤 계좌에 속하는 지에 따라 소비자의 지불 의사는 달라집니다.
이 개념은 카너먼(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의 실험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연극 티켓을 구매했는데, 도착 후 티켓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중 54%만이 다시 티켓을 구매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연극장에 도착하는 길에 10달러 현금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중 88%가 티켓을 구매했습니다.
잃은 금액은 동일하지만, 첫 번째 그룹은 연극 티켓이라는 ‘마음의 계좌’에서 이미 10달러를 사용했기 때문에 다시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낀 반면, 두 번째 그룹은 연극과 관계없는 ‘현금 계좌’에서 잃은 것으로 간주해 연극 티켓 구매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소비자들은 전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각기 다른 마음의 계좌에 따라 소비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가격 전략을 세울 때 이 개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Neuro-pricing 연구에 따르면, 가격표를 볼 때 뇌의 고통 중추가 반응한다고 합니다.
콜로라도 대학교와 스탠퍼드 대학교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가 상품의 가격을 인지할 때 뇌의 통증을 관장하는 부분인 인슐라(insular cortex)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소비자는 비싸다고 느끼는 가격을 볼 때 실제로 고통을 느끼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죠.
이러한 반응을 줄이기 위해 레스토랑 메뉴판에서는 ‘₩’나 ‘$’ 같은 통화 기호를 제거하거나, 가격 끝자리를 ‘0’을 제거한 단순한 숫자(예: 5.0)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객의 무의식적인 가격 저항을 줄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또한, 가격을 빨간색으로 강조하는 것도 흔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세일’, ‘특가’, ‘마감임박’과 같은 문구와 함께 붉은 색상으로 표시된 가격은 소비자에게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긴급함을 주며 가격 대비 가치를 높게 인식하게 만듭니다.
단, 이런 방식은 고급 브랜드나 예술품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신경가격결정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계이지만, 뇌과학과 소비심리를 연결해 실험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격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유용한 분야입니다.
인간은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듯 항상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듯 늘 비합리적인 것도 아닙니다. 가격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우리 창작물의 가치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예술분야, 특히 공예 분야의 실전 가격 책정 전략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