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임줌마 Jun 26. 2024

쿨함의 극치!

#어차피 다시 뒤집혀요

추석 : 

1. 우리 큰딸의 태명입니다.

2. 딱히 내색을 한다거나 딱히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우리 큰딸 추석이는 어린 시절부터 그냥 그냥 무던하게 (먹는 양은 무던하지 않던) 자라온 아이다. 레고나 퍼즐을 좋아하는 아이어서 한쪽에 앉아 완성될 때까지 조용하게 집중을 한다. 마치 어린 시절 우리 할아버지가 복덕방에서 장기를 두시는 뒷모습 같았다. 퍼즐이나 레고가 한 피스라도 없으면 누구나 아쉬움 혹은 짜증이 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추석이는 피스가 없어서 레고를 완성할 수 없었지만 잠시 레고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쓱~ 일어난다. 


"추석아 이거 하나 없어서 완성이 안되네.. 어쩌지?"


"....." 

정적도 잠시


"엄마! 간식 주세요"

쿨하게 뒤돌아 선다.


꼬꼬마 시절부터 쿨함을 장착하고 살던 추석이는 중학생 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쿨함의 극치를 달린다.

씻고 나오면 학교 생활복 바지, 속옷, 그리고 양말... 모두가 뒤집힌 채 빨래통에 들어간다. 어지간하면 빨래 돌리기 전에 내가 뒤집지만 아무리 내 새끼어도 축축한 양말은 만지고 싶지 않다. 양말 똑바로 벗어라 노래를 불러도 "네" 대답뿐 달라지는 건 없다. 때가 빠지든 말든 그래서 얼룩진 양말을 신든 말든 뒤집힌 그대로 빨래를 해서 줘도 세상 쿨하게 그 뒤집힌 채로 신는다.


추석이 유치원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모임이 있다. 그 엄마들과 만나면 요즘 중학생 딸내미들의 자기 관리에 대해 봇물 터지듯이 이야기가 나온다. 다이어트한다고 삼시새끼를 방울토마토만 먹는 아이, 냉동실에 숟가락과 페이스 롤러를 넣고 아침에 제일 먼저 부기 빼는 아이, 바쁜 아침 세팅 말고 가는 아이... 그 어떤 이야기도 공감되는 게 하나도 없다. 뒤집힌 양말을 신으며 '어차피 다시 뒤집혀요'라고 말하며 신고가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퇴근 후 집에 갔을 때 거실의 상황이다. 

뒤집어진 양말, 널브러져 있는 상장...... 그리고 그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설이(우리 집 반려견)

한 짝밖에 없는 뒤집힌 양말과 신상 상장은 무슨 조합인가. 엄마가 격하게 칭찬하는 타입이 아니니 어차피 칭찬 기대가 없어서 바닥에 말없이 두고 학원 간 건가? 거실 바닥을 유심히 안 봤으면 분리수거 종이 쪽으로 나갔을 뻔했다.


학원 다녀온 아이에게 바로 물었다.

"추석아! 상을 받았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바닥에 저렇게 놓고 설이가 오줌이라도 싸면 어쩌려고 했어?"


"설이가 오줌 쌌어요?"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않냐 이거지"


"안 쌌으면 됐어요. 오늘 저녁은 뭐예요?"



널브러진 상장 + 뒤집힌 양말


벌어지지 않은 일 고민해서 뭐 해! 딸과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을 미리 방지하자! 엄마의 대화.




덧붙이기] 

"추석아~ 너 말대로라면 어차피 내려올 산 왜 올라가고, 화장실 갈 건데 왜 먹어?"

"엄마 그건 너무했어요 먹을 거 가지고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세상 단호하다! 이 아이에게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 존재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밥을 먹는 게 어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