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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 Feb 23. 2022

인생은 원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비정성시> (悲情城市:A City of Sadness, 1989)

불안을 자아내는 라디오 소리와 함께 한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한다. 영화 <비정성시>는 20세기 격동의 대만을 일가족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일본의 대만 지배가 끝남과 동시에 행복할 겨를도 잠시, 대륙의 지배로 대만인과 대륙인의 갈등이 격화돼 비극의 현대사로 이어진다. 가장 사적인 개인의 이야기가 시대에 녹아 보편성을 띤다. 그들의 이야기지만 그 시절 모든 대만인의 이야기다.

허우 샤오시엔은 격동의 역사를 느릿하고 잔잔하게 묘사한다. 그의 영화엔 생략이 잦다.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은 배제하고 오롯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관조한다. 본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가는 문청의 결말도 관미의 편지를 통해 잠시 드러날 뿐이다. 카메라는 철저하게 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며 관찰자의 역할만 해내고 한 대의 카메라만이 수동적으로 인물을 따라간다. 캐릭터도 극영화에서 대개 그려지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그려지기보다 왠지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함을 지닌 인물로 구성된다. 허우 샤오시엔은 화면 밖 관객에게, 카메라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이후를 상상할 기회를 준다. 적확과 직설보다 담담한, 그리고 평면적인 전달을 택한다.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호소하듯 이야기하지 않고 차분하기 때문에 관객은 더 아릿한 마음으로 그때를 가늠해본다.

그렇기 때문에 농아인 문청의 존재가 더욱이 소중하다. 문청은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를 동반한 임 씨 가문의 넷째 아들이다. 목소리를 높이며 격앙된 상태로 나라의 불안에 대해 화내지도, 기쁨에 젖어 술잔을 들며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다만 옆 사람과 오래도록 필담을 나누고 간간히 사진을 찍을 뿐이다. 이런 말 없는 문청은 허우 샤오시엔의 철학을 그대로 대변하듯 조용히 주변을 관찰한다. 자신이 끌려가더라도 크게 항변하지 않고, 기뻐도 흥분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말을 덧대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한다. 무용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대에 저항할 수 없는 대만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가만히 울음을 삼킨다. 그저 사진을 통해 시대를 끊임없이 기록한다. 상실과 슬픔은 토해내고 분출된다고 해서 극대화되지 않는 법이니까.

결국 격동의 대만과 함께 행복하게 시작했던 임 씨 가문은 비극이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는 끝을 맞이한다. 네 아들 모두, 미쳤거나 생사를 알 수 없고 어딘가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삼삼오오 게임을 하고, 담배를 물며 이야기를 한다. 늙어버린 임아록과 임문량은 가만히 식사를 시작한다. 문청의 행방을 찾는 관미는 차분히 편지를 쓰기도 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모두 평범한 일상을 재시작한다. 이윽고 카메라는 깜빡거리는 조명을 비춘다. 1945년 아이가 태어나던 그때의 조명인지, 모든 것이 끝난 지금의 조명인지는 알 길이 없다. 삶이 끝날 것 같은 비극에도, 가슴이 뛸 듯이 기쁜 희극에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일상이다. 비정이 넘치는 시대지만, 그 안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Life Goes on. 이것이 허우 샤오시엔이 인생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다.


Written by 나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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