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센스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임룰루


취집을 꿈꾸던 선배,

롤러코스터급 감정기복 선배,

담 섞인 가시 돋친 말로 내 여린 마음을 쿡쿡 찔러대던 과장님까지,

나의 첫 직장생활은 다양한 사람들이 반면교사가 되어주었다.


세상 이치로는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존재한다고 했던가.

유독 닮고 싶은 대리님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혼여성이 출산과 동시에 퇴사하던 시절,

사내 최초로 복직 선례를 만들었다는 대리님은 늘 이야기했다.

"룰루야, 나는 남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그들보다 두 배, , 더 노력해."


회계팀에서 세무업무를 담당하던 대리님은 나의 막연한 롤모델이 되었다.

회사에서 가장 인정받는 여자 선배였으니까.


2008년의 어느 날,

나는 두 번째 직장인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기억으론, 무슨 일을 해보고 싶냐는 팀장님의 물음이 있을 때마다

망설임 없이 '세무'라고 말씀드렸고,

세무담당 선배가 퇴사하면서 우리 회사 세무담당자가 된 지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어느 날, 인사팀 부장님이 물었다.

"차장님은 세무사세요?"

나는 "아니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쓸함을 애써 숨겼다.


나는 세무사도 아니고, 회계사도 아니다. 이센스가 없다.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집단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거나,

수준급의 국가고시를 패스했다거나,

해당직무에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해야 하는데,

재무 관련 분야에서는 이 모두를 충족하는 전문가가 시장에 넘치고 넘친다.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회사는 차석인 나 대신 외부에서 회계사를 채용했다.

전무님은 세상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셨다.

"우산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임원진 눈에 나는,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기는 커녕, 나조차 비를 홀딱 맞는 존재였을 것이다.

자격지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내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






지금 나는 팀장이 되었다.

물론 라이센스를 취득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팀장이 될 수 있었던 건 (회계사 팀장님이 퇴사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로열티다.

전문성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로열티는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직은 로열티를 높게 평가하고, 의외로 로열티 높은 직원은 많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퇴사할 때까지,

이 직무에 종사하는 한,

그리고 이 직무의 전문가라 불리는 타인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의기소침해지는 순간들은 분명코 찾아올 테고,

나는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


라이센스 없는 내가,

전문가라 칭할 수 없는 내가,

회사에서 어떻게 인정받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로열티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라이센스를 취득하거나,

시장의 전문성을 이용해 우리 팀의 성과를 인정받거나,

라이센스 있는 직원을 채용해 그들을 컨트롤하거나.




* 올바를 외래어표기는 '라이선스'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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