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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룰루 Feb 21. 2023

라이센스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집을 꿈꾸던 선배,

롤러코스터급 감정기복 선배,

담 섞인 가시 돋친 말로 내 여린 마음을 쿡쿡 찔러대던 과장님까지, 

나의 첫 직장생활은 다양한 사람들이 반면교사가 되어주었다. 


세상 이치로는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존재한다고 했던가. 

유독 닮고 싶은 대리님이 있었다.

대부분의 기혼여성이 출산과 동시에 퇴사하던 시절, 

사내 최초로 복직 선례를 만들었다는 대리님은 늘 이야기했다.  

"룰루야, 나는 남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그들보다 두 배, 세 , 더 노력해." 


회계팀에서 세무업무를 담당하던 대리님은 나의 막연한 롤모델이 되었다.

사에서 가장 인정받는 여자 선배였으니까.


2008년의 어느 날,

는 두 번째 직장인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기억으론, 무슨 일을 해보고 싶냐는 팀장님의 물음이 있을 때마다 

설임 없이 '세무'라고 말씀드렸고, 

세무담당 선배가 퇴사하면서 우리 회사 세무담당자가 된 지 어느덧 십 이 넘었다.







어느 날, 인사팀 부장님이 물었다.

"차장님은 세무사세요?"  

나는 "아니요"라고 짧게 대답하고 쓸함을 애써 숨겼다.


는 세무사도 아니고, 회계사도 아니다. 이센스 다.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집단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거나,

수준급의 국가고시를 패스했다거나, 

해당직무에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보유해야 하는데, 

재무 관련 분야에서는 이 모두를 충족하는 전문가가 시장에 넘치고 넘친다.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회사는 차석인 나 대신 외부에서 회계사를 채용했다.

전무님세상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말씀하셨다.

"우산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임원진 눈에 나는,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기는 커녕,  나조차 비를 홀딱 맞는 존재였을 것이다.

자격지심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내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반갑지 않은 현실이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






지금 나는 팀장이 되었다. 

물론 라이스를 취득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팀장이 될 수 있었던 건 (회계사 팀장님이 퇴사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로열티다. 

전문성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로열티는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직은 로열티를 높게 평가하고, 의외로 로열티 높은 직원은 많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퇴사할 때까지,

이 직무에 종사하는 한,

그리고 이 직무의 전문가라 불리는 타인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의기소침해지는 순간들은 분명코 찾아올 테고,

나는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


라이센스 없는 내가,

전문가라 칭할 수 없는 내가,

회사에서 어떻게 인정받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로열티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라이센스를 취득하거나,

시장의 전문성을 이용해 우리 팀의 성과를 인정받거나,

라이센스 있는 직원을 채용해 그들을 컨트롤하거나.




 * 올바를 외래어표기는 '라이선스'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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