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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룰루 Feb 12. 2023

이번 승진은 어려울 것 같다.

괜찮을 줄 알았다.

입사 15년 차, 팀장 1년 차, 그리고 부장 승진심사를 앞둔 차장 4년 차 여성이다.

과거에 비해 직장생활 평균연령이 많이 낮아졌고, 여성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지만, 고령화된 조직에서 여전히 나는 빨리 승진한 어린 팀장이고, 본부 내 유일한 여성 팀장이다. 그렇다 보니 본부 내에서는 '직책자 공지, 자료취합, 예약'과 같은 소소한 일들도 내 몫이 되었다.


얼마 전, 회사의 오너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고 사모펀드에 회사를 매각했다.  임원들이 교체되고,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나는 타사의 이직 제안에도 응하지 않고, 회사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서 내가 성장했고, 성장의 길목마다 함께 해 준 동료들이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회사가 좋았다.


회사는 매년 성장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더 크게 성장했고, 입사 후  십 년이 되기 전에,  회사의 매출 규모는 5배 증가했다.  5천 원이던 주가가 30만 원까지 상승해 버린,  성장하는 회사의 일원으로 나 역시 기쁘고 값진 시간들을 보낸 게 사실이었다. 회사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았으니까.


12월의 어느 날, 부장 승진발표를 한 달여 앞두고 이사님이 부르셨다. "미리 말해 주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 승진은 안될 것 같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큰 충격이었지만, 나는 애써 담담한 척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괜찮지 않았다. 동료의 부름이, 후배들의 질문이, 내 귀에 닿기 전에 공중으로 흩어졌다.

'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밤새 고민 끝에, 이사님께  사내 메신저를 통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사님,
어제 말씀해 주셨던 승진 관련하여 궁금한 게 있어서요.
사실, 무례한 질문인가 싶어 굉장히 조심스러운데,
제게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 고민 끝에 여쭤보려고요;;;;

 
사실 저는,
올해 우수팀장이 되기도 했고,
실적도 나쁘지 않아서,
승진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제가 승진에서 누락된다면,
1. 본부에서 누가  부장으로 승진하는지요?
2. 승진에서 누락된다면, 당연히 올해 평가도 좋을 수 없겠지요?
3. 제가 부장으로 승진하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노력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말씀해 주시면, 새 해에는 좀 더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저는 내년에 승진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다면 혹, 이번 승진여부가  인원축소 차원에서, 회사가 자진퇴사를 의도하는 건지요?

아침부터 유쾌하지 않은 내용을 문의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답변 주시면, 저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이사님 ^^




 밤새 고심 끝에 써 내려간 장문의 메시지에 짧은 답변이 도착했다.

"글쎄 ~ 나도 나의 힘이 미약하다는 생각이 드네. 승진 전체에 대해서 논의한 거는 없고 누가 승진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했던가. 채용사이트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덜컥 앞날이 두려워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이곳에 남아야 할까, 아니면 떠나야 할까.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가니, 고민의 답을 찾는 한 해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회사의 성장이 아니라 진정 나 자신이 성숙해지길. 그리고 그 여정을 기록으로 남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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