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최북단 항구도시 아리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대기한 시간까지 포함하여 열 시간 만에 내려선 도시 푼타 아레나스. 남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푼타 아레나스는 무척 쌀쌀했다. 이 추운 도시에서 이틀을 지내고 사흘째 아침, 언제 어떻게 호텔을 나섰는지 기억이 없다. 어깨에 카메라 한 대를 메고, 배낭 하나를 등에 지고 또 하나의 가방을 손에 들고, 나는 푼타 아레나스의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계획대로라면 네 시간 떨어진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기 위해 아침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런데 왜 이 춥고 썰렁한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다 깬 듯이 어렴풋이 정신이 들면서 병원 입원실로 보이는 방의 침대에 내가 눕혀 있고 손 발이 침대 난간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나마 어디선가 본 TV 뉴스 한 장면이 떠올랐다. 뉴스를 보았던 건 어느 작은 방 맨바닥에 긴 나무의자가 놓여 있었고, 문에는 큰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창을 통해 내다본 바깥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뉴스에서는 엄청난 테러 사건이 보도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인지 남미의 어느 도시인지 그런 위험 지역에서 게임 개발자들의 국제회의가 대형 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이른 아침 행사장으로 몰려 들어가는 회의 참가자들을 향해 갑자기 테러리스트 몇 명이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아침에 회의 참가자들이 실내체육관 같은 컨벤션센터 안으로 몰려 들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몇 명의 테러리스트들이 기관단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 한국인 희생자도 있었는데 내 삼십여 년 지인인 Y교수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어찌 된 셈인지 행사 주최자들 중에는 나의 이름도 있었다.
테러에 연루되다?
나는 침대에 묶여 있는 것이 전에 뉴스로 본 그 사건과 관계있을 것 같았다. 입원실 유리 벽 너머에서 의사와 간호사들 모두 무표정하게 앉아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끔 입원실에 들어올 때도 무표정하게 내 상태를 살피고는 주사약을 투여하고 나가버렸다. 내가 말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납치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 시간, 아니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입원실로 갑자기 큰 사위가 나타났다. 큰 딸도 뒤이어 들어왔다. 며칠 동안 딸과 사위에게 이 병원 의료진들 모두 테러리스트와 한통속인 것 같다는 말을
되풀이하자 사위가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내가 거의 매일 사진을 찍어올렸다는 내 페이스북 계정을 보여주면서. 다 듣고 나니 푼타 아레나스의 추운 거리에서 방황하고있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라진 열흘
그날이 4월 28일. 푼타 아레나스의 거리를 헤맨 날이 19일이니 그새 열흘이나 흘렀다. 기억에서 사라진열흘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본 뉴스는 사실이 아니었던 걸까?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이스터 섬으로 떠나기 위해 산티아고에 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행의 첫 관문인 멕시코시티에 도착했었던 그날에서 68일이 지나 있었다. 멕시코시티 공항에 내린 일이 까마득히 먼 옛날 일로 느껴졌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필자. 산티아고의 한국영사관 박준이 영사실무관이 내 상태를 살피며 촬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