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보았을 때 나는 참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심하게 그들 곁을 지나쳤다. 며칠 뒤 다시 한 떼의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만났다. 그제야 그들의 눈이 참새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또 몸을 덮고 있는 깃털들도 참새보다는 더 밝고 부드러웠다. 사실 참새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귀엽다기보다는 좀 사납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정면으로 참새를 보면 검은색과 짙은 갈색의 깃털이 크게 반짝이는 두 눈을 중심으로 어울려 있는데 이는 마치 나를 공격하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부들과 뱁새. 뱁새는 배를 채우고, 부들은 씨를 퍼뜨리고.
그런데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앞 뒤 양옆 어느 쪽에서 보아도 귀엽기 짝이 없다. 강변에서 만난 새 중에서 가장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새를 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 붉은머리오목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새는 텃새다. 이 사랑스러운 새를 일 년 내내 볼 수 있으니 강을 걷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달뿌리 풀 사이를 나는 뱁새
그런데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이 긴 이름은 누가 붙였는가? 오목눈이라는 새가 있기는 하지만 크기가 비슷하고 눈이 오목하다 뿐이지 전혀 다른 종류의 새이다. 산보를 하다가 눈 앞의 나뭇가지에 앉은 이 새를 보고 옆의 친구에게 ‘저 앞에 붉은머리오목눈이 좀 봐’ 하고 말하면 이미 새는 다른 가지로 날아간 이후일 것이다. 이름이란 부르기 쉬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것이 좋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새의 이름도 대부분 두 세자에 지나지 않는다. 조류도감에 나오는 길고 긴 이름들은 아마도 학자들이 분류를 위해 복잡하게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내가 모르는 분야이니 알 수 없다.
이른 봄, 박태기 나무에 매달려 벌레를 찾는 뱁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뱁새라고 부른다.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긴 이름보다는 뱁새가 훨씬 더 우리 정서에 와 닿는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은 가장 흔하게 듣는 우리 속담이다.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분수에 맞게 산다는 건 높이 날아보자는 희망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강가 습지의 달뿌리 풀 숲에서 휴식을 취하는 뱁새
그래서 이 속담은 요즘 청년들에게 그렇게 마음 편히 들리지 않는가 보다. BTS의 뱁새라는 노래의 가사가 요즘 청년의 마음을 잘 표현한다. 하긴 실제 뱁새는 황새와는 관계없이 살아간다. 뱁새의 먹이는 황새와 다르니 뱁새가 황새와 겨룰 일이 없다. 이 속담은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함이거나 잘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말해 온 것일 뿐이다.
가끔은 나무 위에 앉아 멀리 세상을 내다보기도 한다.
또 뱁새눈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눈이 작고 가늘게 찢어진 눈을 비유한 것이란다.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 말이다. 뱁새눈을 하고 바라본다는 말도 있다. 옆으로 흘겨보는 것을 안 좋게 표현한 말이다. 뱁새가 눈이 작긴 하지만 어디 가늘게 찢어졌는가? 뱁새를 빗대려면 뱁새를 제대로 알고 해야 할 것이다.
강 위를 낮게 날아 이동을 한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다 합쳐도 10센티미터 남짓한 조그만 몸집의 뱁새는 몇십 마리 씩 떼를 지어 다닌다. 나는 강변에서 주로 달뿌리 풀 사이에서 뱁새를 만난다. 억새와 비슷한 모양을 한 달뿌리풀은 매우 조밀하게 자라기 때문에 줄기와 줄기 사이가 매우 비좁다. 그 틈을 요리조리 날아다니는 뱁새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새로 난 부들 싹도 먹잇감이 되는가?
강변 습지에 많은 부들이 하얀 털에 싸인 씨앗을 사방으로 날려 보내는 가을 철이면 털북숭이처럼 변한 부들에 달라붙어 열심히 씨를 파 먹는 뱁새들을 볼 수 있다. 부들 씨를 먹은 뱁새는 강의 위나 아래로 날아가서 먹은 씨를 몸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거나 뱁새의 몸속에 실어 보내거나 부들이 자손을 퍼뜨리는 것은 마찬가지니 부들이 뱁새가 제 씨앗을 먹는 것을 싫어할 리는 없을 것이다.
뱁새의 짝짓기 : 짝짓기 직전, 몸을 바짝 붙이고 사랑을 속삭인다(왼쪽). 암컷은 긴장하였는지 깃털을 곤두 세웠다(가운데). 짝짓기의 마지막(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