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길동무 물새와 산새 6
겨울철 쌩- 하고 부는 강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나는 극도의 상쾌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왕복 7킬로미터의 출근길을 걷는다. 또 그 추운 날씨를 무릅써 가며 강으로 길을 나서는 것은 철새를 보는 재미 때문이기도 하다. 철새들의 대부분은 가을에 왔다가 봄에 떠나는 겨울 철새들이다. 겨울 철새의 왕이라고 불러 손색없을 것을 들자면 당연 큰고니이다. 청둥오리 같은 별로 크지 않은 새들을 보다가 큰고니를 보면 우선 그 큰 몸집에서 오는 시원한 맛이 있다.
내가 선사시대 암각화 조사를 위해 여름철의 몽골 서부 알타이 산 지역을 자주 다닐 때 산 계곡에 있는 작은 호수에 떠 있는 큰고니들을 자주 만났다. 그때 한 반도의 겨울철에 오는 큰고니들이 여름철에는 이곳에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겨울 강변을 걸으면서 큰고니를 볼 때면 몽골의 알타이 산기슭이 생각나고는 한다.
안동은 아마도 큰고니들의 이동 경로에서는 좀 벗어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사는 곳은 반변천과 낙동강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비교적 많은 철새들이 모여드는데 큰고니의 수는 매우 적다. 많이 볼 수 있을 때는 10여 마리 정도이고 적을 때는 대여섯 마리 정도이다. 대여섯 마리는 한 가족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많아야 두 세 가족 정도의 큰고니들이 이곳에 와서 겨울을 지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안동에서도 낙동강 하류의 풍산 쪽이나 상류 안동댐 같은 곳에 더 많은 수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주남저수지나 천수만 같은 철새들의 집단 서식지에서처럼 많은 수를 볼 수는 없다.
내가 새를 잘 알지 못하지만 큰고니처럼 우아한 새가 또 있을까 싶다. 매서운 추위가 며칠 계속되고 강물이 얼어붙으면 얼음 위에 줄지어 서서 군무를 즐기는 큰고니를 볼 수 있다. 아마도 바람을 맞으면서 날개를 움직이는 것이 춤추는 것처럼 보일 텐데 내가 발레를 한다면 또 하나의 백조의 호수를 만들지 않았을까?
고니나 큰고니를 백조라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일본말 가운데 이제는 그것을 본래의 말로 부르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말들이 많아졌다. 백조도 그중의 하나라 하겠는데 이를테면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고니의 호수’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그래도 음악이 아닌 새 이름으로 부를 때는 백조보다 고니 또는 큰고니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백조는 고니와 큰고니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고 고니와 큰고니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