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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Nov 09. 2021

마추픽추 가는 길, 잉카 트레일 1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37

잉카 옛길을 걷다 


잉카 트레일을 걷는 것은 이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이었다. 해발 3000미터에서 4000미터를 오르내리는 트레킹 코스를 걷는 것은 솔직히 이번 여행의 핵심 주제의 하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나의 체력을 생각하면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그래도 간헐적으로 시큰거리는 무릎과 그리 자신할 수 없는 허리의 상태를 생각하면 하루라도 먼저 출발하는 것이 잉카 트레일 걷기를 성공적으로 끝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계획을 하나하나 세워가던 2018년 9월, 나는 잉카 트레일을 계획 속에 구체적으로 집어넣기 위해 웹사이트를 통해 트레킹 예약을 했다.


잉카 트레일은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42km의 산길을 3박 4일간 걷는 것이다. 이 산길을 걷는 것은 여느 산을 오르는 것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그것은 산이 높기도 하지만 트레킹에 참가하는 데 여러 가지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오르는 데는 개인적으로 반드시 전문 여행사의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고 그리고 가장 신뢰가 가는 여행사를 골라야 한다. 그래서 고른 것이 붉은 군대로 알려진 야마패스(Llama Path)이다. 3개월 전에 신청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신청한 것이 2018년 9월 28일이다.


트레일 출발지점에서  내려다본 우루밤바 강. 휴대폰 사진 메타 데이터에 해발 2712미터로 기록되어 있다.


잉카 트레일 트레킹을 이렇게 일찍 신청해야 하는 것은 페루 정부에서 트레커의 수를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레커를 신청받는 관광회사도 몇 곳으로 한정되어 있다. 트레커는 하루에 500명으로 제한하는데 이중 진짜 트레커는 200명뿐이다. 나머지 300명은 가이드와 포터들로 채워진다. 어떻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듯한데 출발을 하고 나서야 왜 그런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트래커들의 짐을 운반해주고 또 텐트를 비롯한 캠프에 필요한 장비의 운반과 설치, 트레커에게 차를 끓여주거나 텐트를 치고 걷는 일이나 그 외의 여러  서비스를 담당한다. 요리사도 한 명 별도로 따라가는데 매일 세끼를 호텔 레스토랑에 비길 만큼 좋은 식사를 마련해준다. 그들이 없이는 트레킹이 불가능함을 첫날 점심때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피스카쿠초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남자들. 이 건물은 스페인 풍이지만 벽으로 사용된 커다란 돌은 잉카 유적에서 옮겨온 것이다.

또한 매년 2월은 트레킹 코스의 청소를 위해 입산을 금지한다. 내가 트레킹을 하려는 날짜는 3월 21일이니 신청을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계획대로 할 수가 없다. 트레킹의 출발지점은 쿠스코에서 서북쪽으로 82킬로미터 떨어진 피스카쿠초 마을이다. 이곳에서 입산증을 발급받고 우루밤바 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 올라서면 그때부터 트레킹이 시작된다.



쿠스코에서 버스와 기차를 이용하는 관광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하루에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마추픽추 가는 길을 3박 4일이나 걸어서 가는 이 잉카 트레일로 정한 것은 트레일 중간중간 많은 잉카의 유적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추픽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마추픽추 하나만 보고 불가사의 어쩌고 하는 이야기에 끌려들어 가서는 아마도 많은 잘못된 지식을 가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함께 하는 트레킹 회원은 미국에서 온 젊은 여성 셋, 캐나다의 중년 부부, 콜롬비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온 부부 그리고 나까지 모두 열명이다.  거기에 가이드 둘, 포터가 열, 요리사 하나가 포함된다. 총 인원 스물셋이니 적지 않은 규모라 하겠다.


트레킹 출발 준비에 바쁜 포터들.

첫째 날, 꽃길 속에 보는 잉카


출발지점에서 강을 따라 가면 선인장 꽃을 비롯해서 아름다운 꽃들이 길 양쪽으로 피어 있는 빨간 샐비어 꽃들 사이로 벌새들이 날아다닌다. 길이 강가를 벗어나 능선 위로 오르면 우루밤바로 흘러드는 쿠시차카 강이 저 밑으로 흐르고 강 가에 여기저기 잉카의 옛터에 돌담들이 서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길이 또 있을까 싶은 그런 길이었다.


아열대나 열대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야산 기슭에 지천으로 보이는 꽃이나 식물들이 한국에서 식물원에서나 힘들게 볼 수 있었음을 깨닫고는 내가 정말 먼 이국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떤 꽃들은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진다.   


길 가에는 이곳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오고 또 지금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무덤들과 소를 끌고 오는 농부들도 자주 만난다.

한 트래커가 이제 오르기 시작할 산길을 바라보고 있다.
길 가의 묘지에 예쁜 꽃이 놓여 있다.
트레킹을 하는 내내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이 함께 한다.


더 많은 꽃을 보려면 아래 동영상을 클릭해보자.

길 가의 야생화 모음 동영상
등산객들에게 비키라고 소리치는 소몰이 농군


기하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파타약타 유적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의 산 능선 밑으로 쿠시차카 강이 S자를 그리며 흘러 내려가고 그 강 건너에 널찍한 푸른 들판의 충적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푸른 들판 저 뒤 산 밑으로 수많은 건물지가 보였다. 건물들은 돌벽만 남아 번성했던 잉카의 옛 역사를 흔적만 남은 채로 우리 앞에 드러내고 있었다.


파타약타 유적이었다. 파타약타는 유적의 뒷산 이름이다. 유적이 자리 잡은 곳은 지나는 길에 슬쩍 본 것만으로도 비옥한 땅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많은 인구가 상주하고 있었지만 상당한 농업생산력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2000년 전부터였다고 하니 잉카 문명은 그 이전의 문화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 고대 도시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산허리를 감싸는 구름이 잉카 옛 길에 신비로운 기운을 만들고 있다.
파타약타 맞은편 언덕에서 멀리 우루밤바 강 건너로 이름 모를 잉카 유적이 보인다.


파타약타 유적은 잉카제국의 마지막 시기에 황제의 자리에 있던 만코 잉카 유판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는 스페인 침략자들에 저항하여 싸움을 벌이면서 잉카의 주요 도로 주변에 있는 마을들을 불태웠다고 한다.  


전체 유적은 매우 완벽한 기하학적 짜임새를 보여준다. 산 바로 밑으로 일정한 형태와 크기의 건물들이 산자락을 따라 원호를 그리며 배치되었고 그 밑으로 계단식 경작지들이 마치 유적의 기단부처럼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평지의 끝에는 강이 흐르는데 강과 연결되는 경사지는 커다란 원호를 잘라낸 듯한 형태의 몇 개의 경작지를 원호 모양으로 배치했다. 그 전체를 설계한 사람은 아마도 뛰어난 수학자이거나 예술가였을 것이다.


잉카 이전 기원전 500년 경부터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잉카 시대에는 마을 위의 윌카라카이 유적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이 거주한 마을이었다고도 한다.


파타약타 유적이 눈 아래 보인다. 유적 앞으로 쿠시차카 강이 유적을 빙 돌아 맞은편 산 밑의 우루밤바 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전체 유적의 평면은 완벽한 기하학적 구도를 보여준다.
조금 더 가까이 본 파타약타 유적 일정한 규모와 형태로 완벽한 구성체를 만들어낸 건물지들. 아래쪽 계단식 경작지가 마치 마을의 기단부처럼 보인다.


파타약타 유적의 강변에 위치한 풀피투유크(Pulpituyuq),  마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처럼 보이는데 종교적 제사 유적이라는 설도 있다.
파타약타 유적의 강과 인접한 부분


파타약타 유적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계곡 건너로 또 하나의 건물군이 보인다. 파타약타 유적과는 산 위와 아래에서 서로 대화하듯 마주 보고 있다. 윌카라카이 유적이다. 산 아래의 파타약타 유적과 사이하고 있는 좁은 계곡은 신성성을 부여받은 계곡이라 하며 '윌카'라는 말은 자손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조상 숭배와 관련되는 종교 유적이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잉카 시대에는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능선 위에 위치한 윌카라카이(Huillca Raccay) 유적. 아래에 신성성을 부여받은 빌카노타 계곡이 있다. 오른쪽 아래 제사터로 보이는 산봉이 있고 그 밑은 파타약타 유적이다
윌카라카이 유적은 능선 끝 둘레에 높은 석축을 쌓아 대지를 만들고 건축을 했음을 볼 수 있다.
삼각형 모양의 산 꼭대기에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바위 앞에는 좁은 평지가 있다. 왼쪽 능선 상에 정상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보인다. 제사터로 생각된다.
윌카라카이 유적의 일부
능선 끝 경사지에 축대를 높이 쌓아 대지를 만들고 그 안에 건물들을 지은 것을 볼 수 있다.




옛 잉카 사람들이 마추픽추를 향하여 걷던 길을, 잉카의 군사들이 침략군에 저항하며 요새와 요새를 이어 주던 길, 그 길을 관광객의 짐을 지고 가는 포터들이 옛 군인들처럼 걷는다.


산 아래 쿠시차카 강이 흐르는데 산 위에는 돌의 강이 산비탈을 흐른다.
절벽 밑에 조그마한 돌 구조물이 보인다. 잉카인의 기도처인가?  구조물의 배경으로 서있는 기둥모양 암석 절벽이 추상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산 중턱에는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등산객들을 상대하는 잉카의 후예들이 삶을 이어간다. 산속에서 만나는  원주민들의 얼굴은 도시의 찌든 삶을 살다가 찾아온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평온하게 다가온다.



잉카트레일을 가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살아가는 산마을 사람들



생전 처음 받아 본 호사스러운 대접


첫 번째 캠프장은 해발 3400미터의 와이야밤바라는 곳이다. 캠프장의 설비는 수도와 화장실을 비롯해서 잘 갖추어져 있다. 출발지점에서 이곳 와이야밤바까지는 일정표에 여섯 시간으로 짜여 있다. 실제 걸린 시간도 여섯 시간 조금 더 걸린 정도였다. 길은 완만하고 점심시간과 중간 휴식시간도 충분했고 유적을 돌아보는 것도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능했다. 멀리 눈 싸인 산봉우리가 구름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보면서 걷는 것은 매우 내 나이로 보아 언제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족할만한 트레킹 코스였다.


캠프장에 도착하니 이미 숙박용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뿐 아니라 회원 전체가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식당용 텐트도 설치되어 음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식당 텐트 앞에는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손 씻을 물이 한 사람 당 하나씩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포터가 수건을 준비해서 들고 있었다. 평생 이렇게 호사스러운 캠프를 처음 경험해 보았다. 아마도 마지막 경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 함께 머리에 들어왔다.


식당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은 이곳이 호텔 레스토랑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훌륭했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숙박용 텐트 앞에는 발을 씻도록 따뜻한 물그릇이 놓여 있었다. 이  나이에 이런 곳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니 이만하면 복 받은 것 아니겠는가? 아니 '이만하면'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날 해발 3408미터의 캠프장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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