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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Dec 02. 2021

마추픽추 가는 길, 잉카 트레일 4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40

안개에 가로막힌 마추픽추의 일출


트레킹 나흘째,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준비해 놓은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내고 네 시에 출발한 마지막 날의 산행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다. 위냐이 와이나 유적을 떠나 얼마 안 되어 마추픽추 국립공원의 출입문에서 담당 직원이 출근하기를 한참이나 기다려 드디어 마추픽추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다고 별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캄캄한 어둠 만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하늘이 밝는가 했는데 내 주변에는 하얀 안개뿐 하늘도 없고 땅도 없었다.


해 뜨는 마추픽추의 장관은 잉카 트레일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새벽 네 시 캠프장에서의 이른 출발은 태양의 문에 서서 아침 첫 햇살에 반짝이는 마추픽추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기대했던 마추픽추의 일출은 볼 수 없었다. 태양의 문 밖은 두터운 하얀 안개만 가득하게 드리워 있었고 마추픽추는 안갯속에 모습을 감춘 채 나타날 낌새가 없었다.


태양의 문.  이 문에 서면 정면에 마추픽추가  내다 보인다.
태양의 문에 서서 안갯속에서 마추픽추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등산객들

거기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마추픽추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보던 산속의 유적들은 마추픽추에 비교하니 조그만 시골 동네처럼 느껴졌다. 마추픽추 유적은 마추픽추 산의  능선 상에 위치하는데 능선은 마추픽추 앞을 막고 선 와이나 픽추 산봉을 넘어서 북쪽으로 내려가며 남쪽으로는 마추픽추 산봉으로 올라간다. 이 능선을 감돌아 U턴하는 우루밤바 강을 서쪽과 동쪽 계곡으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추픽추를 바로 앞에 두고 나는 일행과 헤어져 애초에 예약했던 마추픽추 산의 정상으로 발길을 옮겼다. 유적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추픽추 바로 맞은편 북쪽에 있는 맞은 편의 와이나 픽추 산봉으로 올라 마추픽추를 내려다본다. 그러나 현지 트레킹 예약을 하면서 구글 어스로 확인하면서 나는 남쪽 마추픽추 산의 정상에서 마추픽추 유적과 와이나 픽추의 바위봉 그리고 마추픽추를 감돌아 나가는 우루밤바 강을 굽어보고 싶었다.


마추픽추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우루밤바 강. 잠깐 구름이 벗겨진 계곡에 강이 흐르고 그 오른쪽 구름 속에 마추픽추 유적이 있다.


올라가는 길은 안개는 벗어졌으나 경사가 급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르는 중간중간 산 아래로 보이는 마추픽추 유적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길 가의 야생화들이 힘든 다리를 쉬게 해 주었다. 그렇게 쉬엄쉬엄 올라 드디어 해발 3061.28미터의 정상에 다달았다. 다만 눈 밑은 하얀 안개뿐이었고 마추픽추도 와이나 픽추도 우루밤바도 모두 구름 아래 숨어버렸다. 이제나 저제나 안개가 벗어질까 기다렸으나 안개는 이따금씩 우루밤바 강만 힐끗힐끗 보여줄 뿐 마추픽추는 끝내 드러내주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마추픽추


마추픽추를 한 바퀴 돌았으나 지금 나에게 남은 마추픽추 유적의 기억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쿠스코에서의 이틀간의 사진 폴더와 잉카 트레일의 마지막 날 폴더가 외장하드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다만 휴대폰에 남아 있는 몇 장의 사진과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한 장, 그리고 광각용 카메라로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이 따로 보관되어 있어 나의 마추픽추 인증숏으로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잉카 트레일의 끝에서 본 마추픽추. 왼쪽의 작은 집은 '양치기의 집'으로 알려진 초가를 덮은 작은 돌집이다.


양치기 집으로 알려진 작은 돌집 근처의 언덕 위에서 굽어본 마추픽추는 정말 아름다웠다. 무대 배경인 듯 뒤에 우뚝 서서 산상 도시를 내려다보는 와이나 픽추의 바위 절벽은 유적 전체를 위협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안온하게 보이게 했다.


사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어온 '7대 불가사의'같은 말은 잉카 트레일을 걸어온 끝에서 만나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진 석축이나 건물의 석벽들의 정교한 이 맞춤이나 운반과 축조의 문제 등이 보여주는 불가사의함은 앙코르와트 같은 지구의 반대편 유적에서도 이미 보아왔던 것들이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산상 도시로서의 신비감 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안개 걷힌 뒤의 마추픽추 전경


그러나 이 깊은 산속에는 규모만 작을 뿐 이와 유사한 마을이나 건물 집단의 잉카 유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분포되어 있음을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러한 마을에 인접하여 계단식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 면적은 산속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풍족한 식량을 생산하기에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안데스의 깊은 산과 계곡을 끼고 분포된 많은 유적지들은 마추픽추를 중심으로 한 커다란 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가 걸어온 잉카 트레일 외에도 많은 산악 도로들이 마추픽추를 중심으로 얽혀 있다는 것도 이 산상 도시가 안데스의 산지에 넓게 분포된 사회 구조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추픽추 유적이 안갯속에서 신비롭게 드러나고 있다.


콘도르, 비와 권력의 신


겨우 살아 남아 나에게 마추픽추의 기억을 살려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콘도르 신전이다.


마추픽추 중심광장을 지나는 길 가에 삼각형의 넙적한 돌이 깔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돌은 깔려 있다기보다는 땅 속에 묻혀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은데 뒤 쪽과 옆에 커다란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바위의 윗면에는 작은 돌들을 성벽처럼 쌓아 이들 바위가 신전 건축의 기초 또는 벽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넙적한 삼각형 돌의 앞쪽 뾰족한 합각부에는 합각부의 형태와 맞추어 물방울 모양의 원형 도형을 새겼으며 그 합각부를 또 다른 원형 돌로 막아 흥미로운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 신전을 콘도르 신전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 삼각형 돌의 모양 때문이다. 합각부에 새겨진 도형과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아 이 돌이 콘도르 머리 모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뒤에 좌우로 서 있는 큰 바위는 콘도르의 양쪽 날개로 보기도 한다.


콘도르 사원. 땅 위의 삼각형 돌이 콘도르의 머리이며 뒤에 V형으로 막아선  바위는 콘도르의 두 날개이다.


콘도르는 잉카인에게는 신성한 존재이다. 권력을 상징하며 또 다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콘도르는 하늘 높이 날아 올라 구름을 모아서 비를 내려준다고 하여 농업 생산에서도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콘도르 사원을 다시 돌아본 지금 그 공간이 콘도르를 나타냈다고 하는 것이 어쩐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산 아래 기차역이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간 일행들이 기다릴 것을 생각해서 마냥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내려와 마추픽추를 한 바퀴 돌고 버스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의 레스토랑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늦은 점심을 먹고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저녁 늦게야 쿠스코로 돌아왔다.


비록 마지막 날의 사진이 사라지긴 했으나 3박 4일의 잉카 트레일을 걸었던 기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마추픽추 유적의 동쪽 사면. 계단식 경작지와 허물어진 건물들의 돌담들이 보인다.
마추픽추의 동쪽 계곡 건너편의 산봉들. 이 뛰어난 경관은 마추픽추가 없더라고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 글에 실린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엮은 동영상

#잉카트레일 #마추픽추 # 태양의문 #콘도르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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