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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Nov 23. 2021

마추픽추 가는 길, 잉카 트레일 3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39

황금 가루라의 날갯짓을 보다


텐트의 젖혀진 문 자락 사이로 멀리 운해 건너편에 눈 덮인 산봉이 보였다. 하얀 눈이 동쪽에서 비친 아침 햇살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슬리핑 백에서 나와 텐트 밖에 섰다. 햇볕은 아직 설산 근처에 머물고 내가 서 있는 이쪽은 산도 구름도 어둠에 잠겨 있었다. 멀리 서쪽 하늘에 하늘로 솟구치는 황금색 구름이 마치 하늘로 오르는 인도의 새 가루라처럼 보였다.


설산의 연봉 위로 하얀 보름달이 떠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내 삶에서 처음 맞이하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신화 속의 새 가루라가 황금날개를 퍼덕이는 듯하다.
사흘 밤 나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한 작은 텐트
아침 식사를 위해 트레킹 팀원들이 테이블에 모였다.


야만의 산 살칸타이 연봉


아직 햇볕이 이쪽으로 닿기 전에 길을 떠났다. 앞의 실루엣으로 막아선 산 능선 뒤로 멀리 안데스의 설봉들이 일렬횡대를 하고 섰다. 얼마 가지 않아 유난히 뾰족하게 솟은 바위 산봉 하나가 앞산 능선 뒤로 또렷하게 드러났다. 6271미터의 살칸타이 봉이었다. 안데스에서 38번째 봉우리이자 페루에서 12번째 봉우리라 했다. 살칸타이는 케추아 어로 야생 또는 무적이라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일찍 이곳에 온 유럽 사람들이 야만의 산(savage mountai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길에서 붉은색 부리를 가진 까마귀를 자주 보았는데 이름을 찾아보니 유라시안 블랙버드였다. 그리고 보니 알타이 지역 암각화 조사 때 러시아 쪽에서 많이 보았던 붉은 부리 까마귀와 비슷했다.


구름바다 뒤로 도열해 선 안데스 설봉들
야만의 산, 살칸타이 봉



트레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라시안 블랙버드(Eurasian Blackbird). 비슷한 새를 알타이 지역 암각화 답사에서 자주 보았었다.
쿠스코 지역의 3월은 아직은 우기에 속한다. 이 시기의 잉카 트레일에서는 많은 폭포를 볼 수 있다. 힘든 산길의 피로를 씻어준다.
트레킹 중에 보는 건너편 안데스 연봉이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산속에서 만나는 잉카 옛 유적들


안갯속에서 갑자기 성채 같은 구조물이 눈앞을 막아섰다.  푸유파타마르카라는 유적이다.


마추픽추까지 가는 길로 알려져 있지만 이 길이 마추픽추에 연결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마추픽추를 종착지로 하는 트레일은 출발지점에 따라 여러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지금 내가 참여해서 걷는 이 3박 4일의 코스를 클래식 코스라고 한다. 이 길은 잉카 시대에 쿠스코 쪽에서 마추픽추라는 산중 도시로 연결되는 가장 많이 사용된 통로라 할 수 있다. 길을 가다 힘들만하면 돌로 쌓은 유적들이 나타나고는 한다. 이런 유적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군사적인 요새나  행정 관료들을 위한 숙소 같은 것도 있고 제법 큰 마을도 있다.


산속에서 이런 잉카 유적들을 만나면 잉카 사람들이 쿠스코 같은 대도시에만 의존해 살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지에서는 그 환경에 맞는 거주 시설을 마련하고 농경을 한다거나 목축을 하는 등의 경제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를  구성하고 살았것이다.


안갯속에 포터들이 푸유파타마르카 유적을 지나간다.


지금 안갯속에 모습을 드러낸 푸유파타마르카 유적은 해발 3650미터 정도의 능선 상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가 꽤 높은 것 같으나 쿠스코의 해발 높이도 3500미터 정도이니 그리 높은 곳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규모는 크지 않으나 다섯 군데의 우물이 있고 종교적 제단도 있어서 종교적 의미도 강한 유적으로 보인다. 종교적 제단은 야마를 희생물로 바친 곳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유목민 문화에서는 그들이 기르는 동물을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로 삼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의 야마 희생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길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울창한 수림 사이로 한 번도 평탄한 지점을 만나지 않고 줄곧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약 1000미터를 내려가서 해발 2650미터에 이르면 대규모의 계단식 경작지와 그에 붙어 있는 마을 유적이 나온다.


성채 또는 망루처럼 보이는 유적이 안갯속에서 신비감을 뿜어낸다.
푸유파타마르카 유적에는 이런 우물이 다섯 군데가 있다.
여기서부터 줄곧 수직고도 1000미터를 내려가야 한다.
갬프지 위나이 와이나 유적 근처의 잉카시대 경작지
마추픽추 유적으로 연결되는 우루밤바 강이 협곡을 이루고 급경사의 사면에 실낱같은 길이 보인다.

영원한 젊음, 위냐이 와이나


위냐이 와이나(Huiñay Huayna)라는 이 유적은 마치 거대한 야외극장처럼 보인다. 유적의 명칭은 이 근처에 자라는 난초의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설이 있는데 잉카족의 대표적인 언어인 케츄아어로 영원한 젊음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저녁을 먹은 후 캠프장에서 유적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로스안젤레스의 유명한 야외 오케스트라 연주장인 할리우드 볼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둥글게 돌아가는 골짜기를 따라 크게 원호를 그리며 조성된 계단식 경작지의 위와 아래에 건물 집단이 있었는데 저 아래쪽 적당한 공간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할 수 있다면 할리우드 볼 심포니 못지않은 음향 효과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3일째 캠프장 옆에 인접한 위나이 와이나 유적
위나이 와이나는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 싸여 있다.
비슷한 크기와 구조로 된 주택들이 벽체로만 남아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트레킹 팀원들


두 건물 집단의 사이에 19개의 샘이 있고 그 샘들은 종교적 의식을 거행할 때 몸을 씻는 데에도 이용된다고 한다. 현장에서 그 샘들을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러한 샘으로 인해 경작에 필요한 물도 공급되었을 것이다. 유적에서 골짜기를 건너 맞은편 산 중턱에 수량이 풍부한 폭포 한 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유적이 지어진 것은 잉카제국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15세기 중엽이라고 한다. 유적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건설된 것으로 전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안데스 산속에서 살아가던 잉카족들의 주요 거주지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거주지와 경작지들이 산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 마을들을 묶어 통치한 통치자의 도시가 마추픽추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생각은 산속에서 자주 만나는 상당한 넓이의 계단식 경작지나 작은 마을 유적들을 볼 때마다 하게 되었다.


멀리 우루밤바 강 위로 무지개가 걸렸다. 아마도 비 한줄기가 지나갔던 모양이다.


비 한줄기가 슬쩍 스쳐 지나간 자리에 무지개가 솟았다. 한 여행자가 유적의 테라스에 앉아 무지개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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