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gweon Yim Jan 19. 2022

안데스의 고향, 타킬레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45

물 위의 떠 있는 대지 신의 고향


푸노 시의 동쪽으로 펼쳐진 티티카카 호수는 푸노 시를 등지고 북쪽의 카파치아 반도와 남쪽의 추쿠이토 반도로 막힌 커다란 만을 이루고 있다. 이 만을 푸노 만이라고 한다. 만의 절반 정도는 우로스 섬이 있는 토토라 갈대밭이고 갈대밭을 벗어나면 조용한 수면이 아득히 펼쳐진다.


우로스에서 타킬레 섬을 향해 출발한 배가 토토라 군락지를 벗어나자 푸노 만의 양쪽의 두 반도 사이로 만의 출구인 카파치아 해협이 보였다.


배가 나아가는 양쪽에 길게 누워 있는 산이 육지에서 뻗어 나온 반도이고 그 사이가 카파치아 해협이다. 해협의 가운데로 수평선 위에 타킬레 섬이 떠있다.

카파치아 해협을 벗어나자 시야가 탁 트리고 수평선이 펼쳐졌다. 티티카카가 남미 최대의 호수라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바로 앞에 기다란 섬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마치 잔잔한 바다에서 수면 위로 올라와 헤엄을 치는 커다란 고래 같았다. 그것이 타킬레 섬이었다. 섬은 우로스에서 약 40킬로미터, 푸노에서 4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우로스 섬에서 세 시간이나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선착장에 내려 주변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해발 고도 3800미터에서의 항해에서 온 피로가  나도 모르는 새 사라지고 말았다.


티티카카에 떠 있는 고래 모양의 타킬레 섬

타킬레가 아닌 인티카 섬


이 섬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세 번째로 크고 페루 쪽에서는 두 번째로 크다. 면적은 5.7 평방킬로미터로 넓지 않은 편이고 길이가 5.5킬로미터, 폭이 1.6킬로미터 정도 되는 좁고 긴 섬이다. 그러나 작은 섬이지만 섬이 갖는 문화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그것은 이 섬이 안데스의 대지 신 파차마마의 고향이면서 안데스 산정에 산다는 신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이 섬을 인티카라고 부르는데 인티라는 말은 안데스 일대의 잉카인들의 그들의 조상신이며 태양신을 뜻하는 말이다. 이로 보아 인티카라는 이름은 아마도 신의 땅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선착장에서 마을로 올라오는 길에서 본 티티카카 호수의 풍경. 섬의 곳곳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육지에서 반입된 것들이다.
멀리 보이는 섬은 티티카카에서 가장 큰 아만타니 섬이다.

섬의 공식적인 명칭인 타킬레는 잉카제국이 스페인에 멸망된 이후 아레키파에 와서 살던 스페인 귀족의 이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 섬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섬은 비교적 스페인 식민지 이전의 전통문화가 잘 남아 있어 원주민들의 문화적 긍지가 크다고 하는데 섬의 이름은 스페인 통치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통적 냄새가 물씬한 섬의 여성들은  외국 관광객들의 호기심의  대상이다.

36년의 식민 통치를 겪은 한국에도 아직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지명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  내가 300년의 식민지배를 겪은 페루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게 한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외딴 섬 덕에 남겨진 전통


원주민들은 수확과 다산을 관장하는 파차마마를 믿으면서 농업과 어업을 하고 지금도 고유 언어인 케추아어를 사용한다. 그들이 전통을 지켜가면서 섬에서 부족함이 없이 대대로 삶을 이어온 것은 이 섬이 티티카카의 호수 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육지와 단절된 역사를 지켜온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섬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입은 옷 만으로도 이곳이 전통이 얼마나 잘 남아 있는지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 어디나 전통문화가 어느 정도라도 남아 있는 곳은 그 지역에서 가장 교통이 불편하고 그래서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고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곳이다.


내가 사는 안동이 그러하고 중국의 후이저우 지역이 그렇다. 그런 지역이 보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보존되어 온 전통문화 덕분에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고 돈이 들어오고 개발이 행해진다.


중앙 광장 한쪽의 음료 가게. 각종 주스와 커피 그리고 샌드위치 종류가 있어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보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전통문화는 변질되고 만다. 정체성이 바뀌어버린 전통 아닌 전통문화는 더 이상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지역은 다시 황폐화가 되어 버리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중앙 광장에서 본 타킬레 섬은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은 현대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듯 보였다. 이만큼이라도 옛 잉카 또는 잉카 이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주민들의 마을은 대체로 호수면에서 약 150미터 정도 올라온 해발 3950미터 정도에 위치한다.

또한 섬사람들은 아직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잉카 시대부터 지켜온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라는 도덕률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를 운영한다고 한다. 이로 보아 이 섬은 잉카부터 내려온 사회체제나 도덕적 질서가 지금까지 잘 남아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겠다.


 노란 꽃들에 둘러싸인 마을 공동묘지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집들이 있는 해발고도는 호수면에서 약 150미터 올라온 3950미터 정도이며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4050 미터라고 한다.


산 위에 잉카 유적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팀을 안내하고 있는 가이드는 산 위로 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이 섬에 대해 사전 조사를 좀 더 했더라면 섬에서 2박을 했을 것이다.


중앙 광장으로 오르는 길목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행인을 반겨준다.


방문객을 환영하는 돌대문과 돌사람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는 섬의 서쪽은 경사가 급하고 넓은 티티카카의 수평선이 시원하게 펼쳐진 동쪽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배가 도착하는 서쪽 호안에서 마을로 올라가면서 보이는 계단식 경작지는 돌로 쌓은 석축으로 인해 멀리서 보면 마치 축구장의 관중석 같이 보인다.

 

섬은 돌이 많은 편이어서 밭의 경계선이나 길의 양쪽 그리고 마을의 담들도 모두 돌로 쌓은 것들이다. 마치 제주도의 어디인가를 걷는 듯 착각이 일 정도이다.


마을 입구에서 손님을 맞아주는 아치형 돌문


섬에 들어가면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돌로 만든 아치형 문이다. 아치형 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문 위에 앉아 있는 돌사람이다. 둥근 테의 모자를 쓰고 있는 이 상은 둥근 아치 위에도 있고 또 문의 양쪽 기둥 위에도 있다. 마치 돌하르방이 돌문 위에 앉아 있는 듯하다.



돌사람은 마을에 오는 외부인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짐작이 가는데 단지는 무슨 뜻인지 짐작이 안 간다.  단지는 재물을 모으거나 하는 의미에서 집에 복이 들어오게 하는 뜻을 가진 경우가 중국이나 한국에 있는데 이것도 혹시 그런 뜻이 아닐까 혼자 생각을 해본다.


섬 중앙광장에 있는 문은 규모가 큰 때문인지 바깥쪽에 안쪽 아치를 따라 계단식으로 만들었는데 아치 상부를 직선으로 하고 그 위에 작은 반원 모양으로 돌을 쌓고 양쪽에 큰 단지를 올려놓았다.


문 위에 단지를 올려 놓은 문


개인 집의 대문으로 만든 비교적 소형의 아치문은 아치의 상부  반원 부분에 좁고 긴 쐐기형 돌을 박아 넣었는데 아치 형태를 튼튼하게 하면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치를 단단이 고정시키기 위해 긴 쐐기를 박아 장식한 개인 집의 아치형 돌문


빨강과 검정의 조화, 타킬레의 여성들


섬에서 만난 타킬레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복으로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페루의 전통 의상은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오기 이전의 잉카 복식 그대로 내려온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지배자들은 페루인에게 전통적 잉카 의상을 입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농민들의 의상 만을 허용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페루의 전통 의상은 잉카의 특징 일부와 스페인 복식이 뒤섞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외관상 마치 수녀복처럼 보이는 검은색 치마와 검은색 숄을 쓴 여성들


섬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체로 빨간색의 상의를 많이 입고 있었는데 치마는 검은색이나 보라색 또는 남색 등이 많이 보였다. 결혼 한 나이 든 여성들은 주로 검은색 옷을 입는다고 하며 결혼 안 한 젊은 여성은 비교적 칼라풀한 옷을 입는다고 한다. 또 아이건 어른이건 머리에 크고 검은 숄을 덮어쓰고 다니는데 아마도 강렬한 직사광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도 모두 판석을 깔았다. 길을 걷는 두 여성의 모습은 이곳을 수녀원으로 착각하게 한다.


푸노는 물론 페루의 이곳저곳에서 본 전통 복식의 여성들은 모두 다양한 원색조의 담요 같은 숄을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다. 그것은 아기를 업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물건을 넣는 백팩같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타킬레의 여성들은 채색된 것이 아닌 검은색의 넓은 숄을 머리부터 등 뒤로 길게 내려쓰고 다녔다. 검은 옷에 검은 숄을 머리에 쓴 여성들이 마을길을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수녀원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섬을 걸으면서 이 검은 숄 역시 육지에서처럼 아기를 업거나 물건을 넣고 다니는 데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검은색 숄을 등에 멘 부인들. 숄을 이용하여 아기도 업고 또 물건을 넣고 다니는 백팩 대용이기도 하다.


타킬레 섬의 직조 문화는 2005년 인류 무형문화유산의 목록에 등재되었을 만큼 세계에서 독창적인 전통문화로 인정받고 있다. 이 직물들은 알파카나 양털의 털실로 짠 것인데 베틀은 한국의 베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는 남녀가 모두 베틀 작업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섬사람들은 직조를 모르는 사람은 장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여자들은 결혼하기 전에 남편의 옷을 짜면서 가족의 소원을 빈다고 한다.


밝은 마젠타와 초록 치마를 입은 어린 소녀,

광장 한쪽의 기념품점에서 본 직물 제품들은 원색적인 기하학적 무늬들로 구성된  것으로 가방이나 넓적한 허리띠 등 다양한 소품들이 많았는데 내 눈에는 그리 신선하게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제품들은 외국의 관광객들이 섬에 몰려들면서 과거의 고유성을 잃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섬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옷에서 볼 수 있듯이 타킬레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색은 붉은색이었다.


 타킬레를 대표하는 붉은색 셔츠와 치마로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

그러나 외국인들에게 이 붉은색은 그리 호감을 주는 색이 아니었다. 그래서 해외 관광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색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자주색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관광 수입을 위해서 전통은 외부인의 기호에 맞춰 타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뜨개질하는 남자들


타킬레에서 흥미롭게 보이는 것 중 하나는 뜨개질하는 남자들의 모습이다. 이곳의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 섬에서 뜨개질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양털을 염색하고 실을 뽑는 일을 하며 남자들과 함께 베틀질을 하기도 하지만 뜨개질을 하지는 않는다.


섬의 어디서나 뜨개질하는 남자들을 볼 수 있다.

이 섬에서는 젊은 청년이 마음에 드는 여자와 결혼을 하고자 하면, 여자의 아버지에게 뜨개질로 추요(cullo)라고 부르는 모자를 떠서 선물해야 한다. 이 모자는 물이 새지 않아야 한다. 모자를 받은 미래의 장인은 모자에 물을 채워 물이 새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이곳 남자들은 자기가 짠 모자에 물을 담아서 한 방울도 새지 않은 채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가를 자랑으로 삼는다. 그것은 남자로서의 능력자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이 새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짜려면 바늘이 가늘어야 하는데 주로 가는 철사를 이용하지만 최근에는 자전거 바큇살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남자들의 허리 벨트는 부인이 결혼 전에 짜서 준 것이다.

모자를 선물 받은 약혼자의 아버지는 일정기간 이 모자를 써야 하는데 만일 그의 부인이 죽거나 또는 사회적 지위가 변하는 일이 생기면 그 모자는 벗고 새로운 모자를 스스로 짜서 쓴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로 이 섬에서 모자는 쓴 사람의 신변에 어떤 일이 있는지 또는 사회적 위치가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모자는 쓰고 있는 사람이 기혼자인지 미혼자인지를 알려주는 표식이기도 하다. 모자의 색이 붉은색으로만 짠 것이면 기혼자이고 흰색과 붉은색을 섞어서 짠 것이면 미혼자임을 말해준다.


모자의 형태는 산타 할아버지의 모자와 매우 흡사하다. 우로스 섬에서 보았던 귀를 덮는 모양의 모자와는 매우 다르며 이 섬이 육지의 문화와 다른 독특한 전통을 고수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붉은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 모자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뜻한다.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이 남녀는 아마도 결혼을 약속한 애인 사이일 것이다.

벨트 짜는 여자들


남자들은 모두 허리에 춤피(chumpi)라고 부르는 넓적한 벨트를 하고 있는데 벨트는 그들의 아내가 만들어 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허리띠를 짤 때 여성들의 머리털을 섞어 짜는 것이다. 이것은 500년 전 병든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섞어 미투리를 만들었던 원이 엄마를 생각하게 한다.


 타킬레의 여성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사랑하는 남자의 허리띠를 만드는 것은 꼭 그 남자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한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혼한 남자의 허리띠. 두 개를 겹쳐 두르고 있는데 겉에 있는 것이 결혼 전에 부인으로부터 받은 머리카락을 섞어 짠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남자가 여자의 아버지에게 추요를 선물하여 결혼을 승낙받으면 여자는 남자에게 머리카락을 섞은 허리띠를 선물하고 정식으로 결혼하기까지 2년간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동거기간 동안 여자는 결혼 후 남편이 두를 또 하나의 허리띠를 만드는데 이 허리띠를 찰 때에도 처음 받은 머리카락 허리띠를 위에 올려 함께  차야 한다고 한다. 결혼할 여자가 없는 젊은 남자의 허리띠에는 그의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섞여 있다고 한다.


길가는 여성의 허리춤에 방추차가 보인다.

2년의 동거생활이 끝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 헤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마음에 들면 정식 부부가 된다. 풍습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관습법 같은 성격을 가지는 것이지만 현대사회의 결혼 제도로서는 무척 특이한 것이라 할 수있다.  


남자들이 섬 안 어디서나 뜨개질을 하고 있듯이 여자들은 방추차를 돌리면서 털실을 뽑는다.  선사시대 또는 고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타킬레의 나이 든 여성들은 어디서나 앉으면 방추자를 돌려 양털에서 실을 뽑는다.

섬에는 잉카 시대의 유적을 비롯해서 잉카 이전의 유적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한 군데도 찾아가지 못했다. 그런데 섬을 떠나기 위해 또 다른 선착장으로 이동을 하면서 길 가에서 매우 친숙한 돌의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판석 모양으로 잘라진 넙적한 돌들을 네모나게 둘러 세운 것인데 일부의 벽석은 없어진 듯했다.


두툼한 판석으로 사방을 막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유구는 잉카 이전의 유적이 아닐까 추정된다.

이는 마치 소형 석곽을 연상하게 하는데 벽체를 구성하고 있는 판석의 아래에 벽의 기초석으로 보이는 돌까지 갖추고 있어서 인공적인 것은 틀림없었다.


단지 이것이 고대 유적인지 아닌지는 현지 문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단정할 수는 없다. 글을 쓰면서 타킬레에 관한 이런저런 검색을 시도해 보았으나 이와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편백나무가 있는 농가 풍경
타킬레에서 자주 만나는 새들


#티티카카 #타킬레 #푸노 #페루 #남자뜨게질

매거진의 이전글 물 위에 뜬 섬, 우로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