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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Jan 11. 2022

물 위에 뜬 섬, 우로스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44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온 떠 있는 섬 마을


푸노 시내의 한편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멀리 갈대밭 뒤로 노랗고 파란 지붕의 작은 집들이 보인다. 집들은 몇 집씩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배에서 보면 갈대로 인해 수면이 보이지 않아 마치 갈대밭 속의 마을 같다. 갈대밭 뒤의 지붕은 밝은 색채의 유화를 보는 듯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가 갈대로 편하게 부르는 풀은 티티카카 호숫가에 많이 자라는 토토라라는 부들의 종류이다. 부들 꽃이 피어 풀 끝에 매달리면 색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 같았다.


배 위에서 토토라 군락 뒤로 우로스 마을이 멀리 보인다. 마치 육지의 마을 같다.


물 위에 떠 있는 우로스 섬은 티티카카 호수에 의지해 삶을 이어온 우루족의 생활 터전이다. 우루족은 고유의 언어인 우루어를 사용하는 티티카카 호수에 의지해 사는 토착 소수민족이다. 그들은 이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아이마라족에 속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지금 우루어는 거의 사라지고 우루족들도 아이마라어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2004년에 우루어를 사용한 사람이 두 명 남아 있었다고 하니 지금쯤 그 두 명도 이미 세상에 없을지 모른다.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 남쪽 땅끝까지 어마어마한 넓이의 대륙이 브라질을 제외하고 스페인어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은 수많은 현지의 토착언어들이 사라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구 상의 수많은 언어들을 모두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각각의 언어들이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로스 사람들은 토토라로 섬을 만들고 그 위에 토토라 집을 짓고 또 토토라로 만든 배를 타고 토토라를 먹는다.


섬은 앞에 말한 대로 호수 연안의 토토라를 엮어 만든 것이다. 토토라의 뿌리를 줄로 묶어 가로 4미터 세로 10미터 두께 1~2미터 정도의 블록을 만들고 이들을 물 밑에 박아 놓은 유칼립투스 나무기둥에 묶어서 고정시키고 이를 계속 이어 붙이면 섬이 된다.


그러나 기둥에 묶은 줄을 풀면 섬은 떠다니는 배처럼 된다. 지금 섬들은 푸노가 마주 보이는 육지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토토라가 빽빽하게 숲을 이룬 곳에 60여 개 남아 있다. 본래 우로스 섬은 120개가 넘는 수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호수 한가운데 있었다고 하는데 몇 년 전 태풍으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했다. 이 섬은 처음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용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망루는 그와 관계된다고 한다.


갈대집 내부의 모습과 주인 부부


작은 섬은 길이 30미터 정도, 큰 섬은 100미터가 넘는다. 섬의 밑바닥은 토토라 풀이 썩어서 비가 많이 올 때는 2주, 보통 때는 두 달 정도마다 갈대를 위에 새로 깔아야 된다고 한다. 작은 섬에는 2~3가구, 큰 섬에는 10가구 이상 산다고 한다.


한 남자가 지붕에 덮기 위해 토토라를 엮고 있다.


 

관광상품으로 남겨진 우로족의 전통


토토라 갈대는 섬을 만들고 집을 지을 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상품으로 만들어져 주민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되기도 한다. 뿐 아니라 갈대 아래의 연한 부분은 식재료로도 사용되는데 우로족에게는 물고기와 함께 기본적인 식품이라고 하며 또 요드 성분이 풍부하여 갑상선염을 가라앉히는 등 약으로서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부들 꽃이 피면 꽃을 이용한 토토라 꽃차도 향이 좋다고 하니 이곳 주민의 생활에서 토토라 갈대는 그야말로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우로스 중심에 있는 커피숍


우로족은 대부분 관광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우로스의 한 복판에 있는 중심 섬은 관광의 중심이기도 하다. 객을 싣고 온 모든 배들이 이 중심 섬에 들린다. 이 섬에는 커피숍이나 기념품 상점 등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기념품들은 대부분 토토라 풀로 만든 것들인데 관광객들이 살만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침에 관광기념품을 가지고 나온 마을 여성


내가 TV의 여행 프로에서 우로스 섬을 보고 흥미를 가졌던 것처럼 지구의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우루족의 민속을 비롯한 고유문화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드를 따라 이곳저곳을 들어가 보아도 그런 호기심을  채워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고유문화를 설명하는 것이 고작 한 섬에 들려 토토라로 섬을 어떻게 만드는 가를 미니어처 소품을 이용하여 보여준다거나 집안에 한번 들어가도록 배려해주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면 무언가를 사도록 권유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만다.


우로스 섬은 지구 상에서 매우 희귀한 문화를 가진 독특한 섬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문화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체험하게 하는가는 보다 세심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듯했다. 섬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안갯 속에 토토라 사이로 오가는 토토라 보트를 보고 싶었다.

 

토토라 제품의 관광상품을 집앞에 진열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기는 장사에는 관심이 없다. 상품은 모두 장난감에 불과하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섬마을


섬의 주민들도 이제 과거의 생활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들이 섬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오랫동안 이 섬에 의지해 살아오면서 육지에 생활근거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지로 떠나는 인구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20년 전에 2000명이 넘었던 인구는 지금 수백 명에 지나지 않는다.


초등학교는 섬 안에도 있지만 중학부터는 육지로 나가야 된다. 학생들이 학교 등하교하는 것도 어른들이 모터보트를 이용해 태워주어야 한다. 생활의 공간은 자신의 집이 있는 겨우 몇십 미터의 토토라 섬이니 한창 뛰어놀 아이들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을 테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지만 혼자 놀거리가 별로 없다.
노를 젓는 보트를 저어 동생을 학교에서 데려오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와 함께 모터 보트로 등하교를 하는 아이도 있다.


이제 섬사람들도 전기를 써야 하고 스마트폰도 써야 하며 온수 샤워도 해야 한다. 섬의 주택을 밖에서 보면 철제 지붕 위에 올라앉은 태양광 패널이 눈에 들어온다. 전기의 사용은 집집마다 설치한 태양광 발전 장치에 의존한다.  또 물탱크를 설치해서 공동 온수 샤워장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TV도 보아야 한다. 비록 물 위에 뜬 짚풀 섬에 살지만 현대 문명에서 벗어나서 살 수는 없다.


화장실은 주거용 섬에서 분리된 작은 섬을 화장실 용으로 따로 만들어 사용한다. 화장실의 오물은 갈대의 뿌리가 흡수하여 정화시킨다고 한다. 이는 섬사람들의 생활에서 나온 폐수나 화장실의 오물이 호수를 오염시키는 것은 극히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토토라로 만든 유람선


또 수십 개의 섬에서 살아가지만 여러 섬의 주민 사이의 소통을 위해 FM 방송국이 있으며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있다. 이제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관광객도 적지 않게 찾아오니 그런대로 주민들의 생활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들을 겉으로 훑어보면서, 자칫 이들의 생활이 전통이란 포장지로 싸여 관광상품으로 살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뿌리칠 수 없다.

 

태양열 패널이 지붕 위 또는 따로 기둥을 세워 설치되어 있고 물탱크도 보인다. 망루도 있는데 지금은 망루보다는 전망대로 사용된다.

섬에서 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이 배들도 과거에는 모두 갈대로 만들었다. 우로족은 이 갈대배를 이용하여 육지와의 교통수단으로 삼기도 하고 어로 작업 등 생업 활동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갈대배는 오직 관광객을 태우는 용도로만 사용된다. 주민들이 실제 생활에 사용하는 배는 거의 모터보트에 의존한다.

토토라를 이용하여 만든 배는 이제는 관광용 뿐이다.
중년 부부가 외출복 차림으로 모터보트를 몰고 육지로 볼일을 보러 간다.


섬 안에서 보면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육지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있다. 자체적으로 소규모이긴 하지만 채소나 곡식도 심고 화단에 꽃도 활짝 피었다. 쥐도 있어서 고양이는 필수다. 물론 개도 키운다. 큰 섬에는 섬 중앙에 작은 못을 만들어 물고기도 키운다는데 호수 물에 인접해서 가두리 양식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외에 닭을 치는 집도 있고 어떤 집은 소를 치기도 한다니 놀랍기 짝이 없다. 그러나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육지에서 장을 봐 와야 한다. 오전 두어 시간을 배를 타고 이곳저곳 보고  했지만 내가 본 것이 섬 주민들이 전통적인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전통 탈모자 추요를 운동모자 위에 쓴 남성과 전통 의상을 입고 기념품을 팔러 나온 여성, 그리고 예쁜 털실 장식을 매단 갈래머리
섬에서는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각종 곡물과 채소등이재배된다. 아래 왼쪽은 주민들이 심는 곡물을 풀어 놓은 것이다. 옥수수, 콩 등이 보인다.
섬에는 육지에서 처럼 고양이와 개를 흔히 만난다. 고양이는 쥐잡이 용이다.
갈대 풀 사이로 양어용 가두리가 설치된 것이 보인다.
호수면에 토토라가 넓게  퍼져 있고 그 끝에 우로스 섬의 집들이 한 줄로 보인다. 그 배후의 산 경사면에 푸노 시가지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아래 동영상을 클릭해주세요. 우로스 섬의 사진들을 모은 슬라이드 쇼입니다.

우로스 섬의 풍경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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