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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Feb 15. 2022

창조신 인티의 첫 작품, 태양의 섬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47

태양신에의 접근을 불허하는 태양의 섬


서쪽으로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있는 코파카바나의 호안은 왼쪽으로 활처럼 휘어 얌푸파타 반도로 이어진다. 얌푸파타 반도는 서쪽으로 뾰족한 연필촉 모양으로 호수와 만난다. 이 끝에서 약 1킬로미터쯤 호수를 건너면 태양의 섬의 남쪽 끝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이지만 코파카바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코파카바나 만을 가로질러 한 시간 이상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태양의 섬을 찾는 방문객들은 섬의 북쪽 찰라팜파라는 곳에서 내린다.


태양의 섬 남쪽 유마니 지역에서 바라본 코파카바나의 얌푸파타 반도와 체예카 섬. 섬 오른쪽 좁은 목이  섬과 육지가 가장 가까운 곳이다. 가운데 아래쪽에 태양의 신전이 보인다.

 

태양의 섬에 있는 중요한 유적들은 거의  섬 북쪽에 분포되어 있고 박물관도 이쪽에 있다. 그래서 섬을 찾은 사람들은 북쪽에서 내려 잉카 유적들을 답사하고 박물관을 본 후 섬의 능선을 따라 남쪽 유마니라는 곳으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게 된다. 대부분의 숙소들과 음식점 카페 등은 유마니 지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코파카바나의 선착장에서 표를 예매하려니 섬 북쪽으로 가는 배가 없었다. 그러면 남쪽 유마니에서 내려 북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북쪽은 아예 출입 금지라고 했다.


배가 섬에 닿으면서 눈앞을 막고 있는 새로 지은 관광객용 호스텔들이 태양의 섬이 내게 주었던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언어불통으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같은 숙소에 먼저 와 있던 프랑스의 관광객에 의하면 섬 북쪽과 남쪽의 주민 간에 갈등이 심해서 북쪽 사람들이 유마니에서 북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막았다고 했다.


주민 간의 갈등으로 외부 방문객이 발조차 들여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현지의 행정 당국이 주민 사이의 조정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마니의 선착장 전경. 왼쪽에 잉카 시대의 석축이 있고 중앙에 잉카의 계단으로 부르는 계단이 보인다. 수면이 해발 3800미터이고 능선은 4000미터 안팎이다.

이런 사태는 벌써 2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이해할 수 없는 현지의 사정 때문에 잉카 문명의 탄생지라고 하는 태양의 섬에서 진짜 중요한 유적은 포기해야 할 판이다.


어쩔 수 없이 태양의 섬은 유마니 지역을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유마니 선착장에 내려서 본 섬의 풍경은 매우 평범했다. 섬은 호안에서 바로 급한 경사를 이루며 능선 위를 향해 치솟아 오른 가파른 산으로 되어 있다.


태양신 인티의 고향


섬 아래쪽에 호수와 맞닿은 곳에는 잉카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축이 있었다. 섬 위쪽으로 올라가는 직선으로 뻗은 계단이 마치 하늘 끝에라도 닿아 있는 듯 아득하게 보였다. 소위 잉카의 계단으로 부르는 곳이다. 잉카의 계단 옆에는 잉카의 샘이라는 이름이 붙은 샘이 있다. 잉카의 계단을 향하여 좌측에는 섬의 사면이 끝나는 곳에 잉카 시대의 것이라고 하는 석축도 있어 이 섬이 잉카 이래 신성한 지역으로 정해지고 그에 따르는 신전을 비롯한 여러 시설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잉카의 샘이라 부르는 샘. 잉카의 계단 양쪽 축대에 있다. 샘물을 마시면 젊어진다고 한다.


섬의 북쪽에 비하면 남쪽 끝에 해당하는 유마니 지역에는 유적이 별로 없어 그냥 하루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숙소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카메라 가방과 세면도구 만을 챙겨 오긴 했으나 해발 4000미터에서 카메라 가방의 무게는 잉카의 계단을 오르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잉카 트레일 둘째 날 4200미터의 죽은 여인의 고개를 넘던 생각이 났다. 지금 오르는 마을길의 고도가 4000미터 정도이니 힘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길을 모르니 그냥 능선을 향하여 뚫린 대로 걸음을 옮겼다. 오르다 보니 나지막한 담장 안으로 넓은 풀밭에 아담한 성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잉카의 성지 외딴섬이라고 성모 마리아가 그냥 둘리 없었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 옆에 있는 교회는 흙벽돌의 벽이 따뜻한 느낌을 준다. 돌로 쌓아 올린 두 개의 종탑에 잉카의 분위기가 묻어 있다.


태양의 섬은 이름 그대로 태양신인 인티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태양신 인티는 잉카인들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비라코차와 같은 신이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인티는 태양신인 동시에 창조신인 셈이다.


그는 태양의 섬을 만들었는데 그래서 이 섬은 이 세상의 첫 번째 땅이다. 그리고 최초의 잉카 왕 만코 카팍과 그의 형제들을 창조했고 만코 카팍 형제들은 쿠스코에 수도를 만들었다. 그들은 잉카 왕조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전설을 믿는다면 여기 태양의 섬은 사람들의 역사에서 첫 왕국인 셈이다.


점심을 먹는 마당의 식탁 앞에서 벌새가 꿀을 빤다.


천근인지 만근인지 모를 무거운 몸을 겨우 겨우 끌고 능선 위에 올라선 순간 능선 양쪽으로 아득히 보이는 티티카카의 풍광은 언제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예약한 숙소의 2층 방에서는 동쪽으로 달의 섬이 내다보였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방에 누워 한 동안을 쉬고 나서야 점심을 안 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능선 좌우에는 조그만 식당들이 많이 있고 그중 한 곳을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음식은 마당의 식탁으로 가져다주었는데 식탁에 앉아 보는 풍경도 배고픔을 잊을 정도였다.  빨간 니포피아 꽃 사이로 꿀을 빨며 요리조리 옮겨 다니는 초록색 벌새들은 쪽빛과 완벽한 삼원색을 이루며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시켰다.


섬 서쪽의 마을 풍경


산책 길에 본 지구의 주름살


잉카 유적이 많지 않은 유마니 지역에서 보는 섬의 모습은 푸노 앞의 타킬레 섬과 비슷하기도 했다. 다만 이 섬에서 내가 섬 주민들의 생활의 특별함을 찾아보는 것도 아니니 점심 후 능선 남쪽 일부를 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싶었다.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유마니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 능선 근처에는 가보고자 하는 유적 같은 것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통행이 금지된 북쪽과 반대쪽으로 능선 양쪽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배를 내린 동쪽과 반대쪽은 깊은 만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 있고 그곳에도 많은 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관광객들이 머무는 호스텔들이 있는 것 같았다.


꽤 오래된 주택의 흔적으로 보이는데 돌문 위의 장식이 고대 유적과 방불하다.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 한쪽에 허물어진 흙집이 보였는데 흙벽 위로 석조로 된 장식이 끼워져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가본 무너진 집은 벽체만 겨우 남은 집으로 아마도 농민의 집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이 집도 오랜 고대 유적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 허물어진 집은 아래쪽 물가 마을까지 내려가는 중턱에 있었는데 다시 능선 위로 올라가는 것은 숨이 턱에 차는 것뿐 아니라 한 발짝을 옮기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꽃 몇 송이가 눈에 들어오면 핑계 낌에 한 참씩을 쉬면서 사진을 찍고는 했다.


건너편 능선을 바라보니 풀조차 제대로 없는 능선의 주름이 여러 가지 색의 바위의 단층을 무지개떡을 겹쳐 세워놓은 것 같았다. 엄청난 세월을 보여주는 지구의 주름살로 보였다. 이곳이 이 세상이 처음 시작된 땅이라는 인티 전설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선에 걸쳐진 지층의 거대한 주름이 섬의 나이를 알려주는 듯하다.


산의 경사지는 급한 곳이나 완만한 곳이나 거의 계단식 경작지로 개간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섬에 사람이 들어와 산 이래 계속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밭들은 경사지는 축대로 경계를 만들었고 완만한 곳은 돌담으로 경계를 만들었다. 이런 계단식 경작지와 호수가 이루어낸 풍경은 한참씩 앉아 보고 있어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섬의 경작지는 돌담으로 경계를 지어 제주도를 연상하게 한다.
섬에서 자주 만나는 알파카(왼쪽)와 면양


능선 위에서 찾아본 잉카의 흔적들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능선 정상부를 따라 길게 이어진 돌벽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성벽처럼 보였는데 성벽으로 보기에는 높이가 낮고 좀 허술하기도 했다. 성벽을 따라 멀리 바라보니 성벽이 끝나는 곳쯤에 서낭당처럼 보이는 돌무지가 보였다.


섬 중부에 푸카라의 성벽이라는 방어시설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남쪽의 유마니에 있는 능선 상의 돌 벽도 푸카라의 성벽과 같은 것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푸카라 성벽의 사진을 검색해보니 그것은 뚜렷한 잉카의 성벽처럼 보이는 것으로 이것과는 많이 달랐다. 결국 이 돌벽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다.

유마니에 있는 능선 상의 돌 벽


돌벽 끝에 있는 돌무더기는 소원을 비는 돌탑으로 알려져 있었다. 모양이나 기능상 우리나라의 성황당 돌무더기와 별 차이가 없다.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은 돌이 보이면 탑을 쌓아올고 소원을 비는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세계 전 지역에 보편적으로 분포된 거석문화도 이런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돌탑 위에 세워진 짚풀로 만든 십자가를 처음 보았을 때 이것이 사람의 형상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소원을 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짚풀 십자가를 세운 것은 가톨릭이 들어온 이후 토착신앙과 가톨릭이 한 덩어리로 된 형태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돌로 쌓은 성벽이 끝나는 곳에 있는 돌탑과 짚풀을 이용한 십자가. 오른쪽에 보이는 동그란 섬은 체예카 섬이고 그 뒤로 보이는 반도가 얌푸파타 반도이다.


돌탑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멀리 섬의 동쪽 호안에 돌벽만 남은 잉카 시대의 무너진 건물 유적이 보였다. 태양의 신전으로 알려진 것이다. 흥미가 당기긴 했으나 지금의 내 상태로 거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40mm 망원렌즈로 사진만 몇 장 찍고 아쉬운 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섬의 이름이 태양의 섬인 것은 바로 저 아래 있는 태양의 사원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사원을 지은 것은 잉카 제국의 영토확장과 함께 전성기를 이루었던 토파 잉카 유판키(1471~93 재위)가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유마니 지역의 유일한 잉카 건물은 이 섬의 잉카 유적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신전은 다음날 아침 코파카바나로 나가는 배가 신전 밑 선착장을 들려 가는 통에 조금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신전 건물은 내가 멀리서나마 이 섬에서 본 유일한 잉카의 건물이다.  


이번 여행에서 태양의 섬에서 본 유일한 잉카의 건물 유적인 태양의 신전


호수에 떠 있는 달의 여신


능선 위에 서서 섬의 동쪽을 보면 동남쪽으로  코파카바나의 얌푸파타 반도와 동그란 찐빵처럼 보이는 체예카 섬 그리고 동쪽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길게 누워 있는 달의 섬이 보인다. 달의 섬 건너편으로 멀리 만년설이 쌓인 설산 연봉이 보인다는데 공기가 맑지 않아 설산을 볼 수는 없었다.


달의 섬은 달의 여신 키야가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달의 섬이 뱀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지만 태양의 섬에서 내 눈에 들어온 달의 섬은 여신 키야가 물 위에 길게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발에 해당되는 섬의 왼쪽 끝은 붉은 속살이 드러난 듯 붉은색 암반이 수직으로 잘라져 호수 속으로 잠겼다. 태양의 섬과 달의 섬은 각각 해와 달의 고향으로 이 세상에서 처음 만들어진 땅이며 티티카카 호수는 자궁 속에서 그들을 키워낸 양수와 같은 존재이다.


날이 좋은 날은 아침해가 뜨면 달의 섬 건너로 만년설이 덮인 산봉우리가 보인다고 한다.
섬은 뱀의 형상을 하였다는데 내 눈에는 여신이 누워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달의 섬에는 태양의 처녀가 사는 궁전 또는 이나쿠유로 알려진 사원 유적이 있고 한다. 섬에 사는 소위 태양의 처녀들은 선택된 여성들로 섬에 살면서 다양한 거래의 방법이나 직물을 만드는 방법들을 배웠다고 한다. 이 여성들은 잉카(황제?)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수도 있었고 또 태양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보니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미리 짜 놓은 계획표 때문에 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잉카 시대에도 황제 만이 달의 섬에 갈 수 있었다고 하니 나 같은 떠돌이가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 아니겠는가?


달의 섬 북쪽 끄트머리의 붉은 절벽





사진으로 보는 태양의섬 이모저모


섬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촬영한 사진을 몇 장 소개한다.

한낮의 직사광선을 온몸에 맞으며 등짐을 무겁게 걸머진 나이 든 여성들이 능선의 골목길을 오른다.
엄마와 함께 유치원 가는 꼬맹이들
티티카카 호수를 배경으로 풀을 띁는 나귀. 뒤에 달의 섬이 보인다.



중년 여성의 양치기들이 오후 한 때를 한가롭게 보내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는 골목길과 마을의 주택들. 관광객의 민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집이 많다.
따뜻한 햇볕을 쪼이고 있는 할머니가 안동의 시골 마을 골목을 연상케 한다.  
나귀는 자동차가 없는 이 섬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태양의 섬을 벗어나면서 스쳐간 바위섬. 저 작은 바위 뿐인 섬에도 저렇게 큰 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한다.
태양의 섬에서 보는 티티카카호의 석양

#태양의 섬 #달의 섬 #티티카카 #인티 #Isla del Sol #Isla del Luna #Titicaca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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