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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Feb 21. 2022

알티플라노 건너로 보는 레알의 만년설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48

호수 위의 해군본부


오늘이 여행 39일째 3월 30일이다.


태양의 섬에서 나와 지난번 묵었던 호스텔에 맡겼던 가방을 찾고 티와나쿠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여기서 티와나쿠는 택시로 가기에는 꽤 먼 길이었지만 직접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 대개의 경우 라파스를 거쳐 다시 티와나쿠로 가고는 하지만 나는 바로 택시를 이용해서 가기로 했다.


여행 중 장거리 택시를 타는 것은 많은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내가 내리고 싶을 때 세울 수가 있어서 중간중간 만나는 여행지의 풍정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멀리 갈 경우 택시는 반드시 호텔 측에 부탁을 했다. 그것은 택시기사를 신용할 수 있는 내 나름의 방법이었다. 1000cc 내외로 보이는 일제 토요타제 소형 승용차를 몰고 나타난 운전기사는 아직 30이 안돼 보이는 젊은이였다.


산 파블로 데 티키나에서 본 코파카바나 쪽의 산 페드로 데 티키나. 두 마을 사이의 물이 티키나 호협이다.


코파카바나를 벗어나 산고개를 넘어 길이 끊어졌다. 길은 호수 건너편에서 다시 이어졌다. 이곳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가장 좁은 목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좁은 호협은 티티카카 호수를 둘로 나누고 있는데 왼쪽은 바다처럼 넓은 호수면이 탁 트여 있고  오른쪽은 여러 섬들이 눈에 들어오는 작은 호수로 마치 티티카카에 매달린 물주머니처럼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이 작은 호수를 위나마르카(Winamarca)라고 부른다. 호협의 코파카바나 쪽에 있는 마을은 산 페드로 데 티키나이고 건너편은 산 파블로 데 티키나이다.


두 마을은 800미터가량 떨어져 있는데 이 좁은 목을 통해서 티티카카의 물이 위나마르카로 흘러들어 두 호수가 하나의 호수가 된다. 호협의 이름은 티키나 호협(Strait of Tiquina)이라고 부른다. 호협을 건너려면 바지선 모양의 페리에 자동차를 싣고 건너야 한다.


페리가 자동차를 싣고 호수를 건넌다. 뒤의 건물이 해군 티티카카 지부의 본부 건물이다.
길바닥에 과자류를 펴놓은 할머니 노점상

코파카바나 쪽의 산 페드로 데 티키나에는 볼리비아 해군 제4지구의 본부가 있다. 볼리비아는 아마도 바다가 없이 해군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싶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볼리비아는 지금의 칠레에 속한 이키케 항과 아리카 항 등 태평양 연안에 좋은 항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79년에서 1883년까지 벌어진 소위 태평양 전쟁으로 이 두 항구와 현재의 칠레 북부의 영토를 잃고 내륙국가가 되었다.  지금 볼리비아의 해군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의 해군이 티티카카 호수에서만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 강이나 파라과이 강 등 볼리비아를 통과하는 큰 강들은 해군의 주요 활동지이기도 하다.


페리를 타러 가는 전통 복장의 여성


남미의 내륙 저지대는 대부분 졍글로 되어 있어 육로를 이용한 물자 수송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화물수송의 대부분은 아마존의 본류와 지류들로 이루어진 하천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또 이 하천들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국의 화물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상에서의 군사력이 필요하며 이에 해군이 필수적인 것이다. 현재의 볼리비아 해군은 1966년에 창설되었다고 하는데 티티카카의 해군 지구에는 해병대도 있다고 한다.    


볼리비아 해군 제4지구 앞 광장에 해군 병사가 구명대를 입고 서 있다.
티키나 해협의 바위섬에  마르 파라 볼리비아 즉 볼리비아의 바다라는 문귀가 보인다. 오른쪽은 호협에서 보는 배처럼 보이는 섬의 모습


레알 산맥의 위엄


티키나 호협을 건너 산고개를 넘으면 왼쪽으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고봉의 행렬과 나란히 달린다.  이 산맥은 티티카카 호수의 동북쪽에서 동남쪽의 라파스 시가 있는 지역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마치 볼리비아의 히말라야 같은 지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크게 보면 안데스 산맥의 일부이지만 안데스와 레알은 티티카카가 있는 알티플라노 고원을 양쪽에서 끼고 바람을 막아주는 방패막 역할을 한다. 차창에서 보는 고원의 풍경은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 떼들, 커다란 트랙터가 밭을 갈고 있는 모습, 산맥에 의지해서 초원 위에 자리 잡은 작은 농촌들이 아름다운 수채화를 만들고 있었다. 만년설이 덮인 연봉을 보면서 나는 이러한 지형이 잉카 훨씬 이전부터 고대 문명을 발달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레알 산맥을 배경으로 펼쳐진 알티플라노 고원지대
레알 산맥에 우뚝 솟은 6088미터의 고봉 와이나 포토시(huayna potosi)의 위용


티와나쿠로 가는 길의 절반 정도는 라파스 가는 길과 겹친다. 티와나쿠는 티티카카 호수의 동쪽에 분리된 듯 달려 있는 물주머니의 동쪽 끝에서 약 1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이곳으로 가려면 그 물주머니를 반 바퀴나 빙 돌아가야 했다. 차는 레알 산맥을 끼고 라파스 행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비포장 샛길로 접어들었다.


말이 안 통해 물어보지는 못했으나 아마도 지름길을 선택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비포장 시골길을 좋아한다. 느릿느릿 가는 시골길에서만 아름다운 농촌을 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와 철새들도 훨씬 근접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뜸부기 또는 저어새 가족에 속하는 글로시 이비스(glossy ibis)
독수리라기엔 몸체가 너무 작게 보이는 맹금류 한 마리가 들쥐를 물고 막 하늘로 오르고 있다.


빨간 벽의 성당과 코카콜라 벽화의 조화


길가 풍경에 홀려 점심을 챙기지 못했다. 운전기사도 배가 고플 텐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길을 비포장으로 접어든 후 우리는 식당이 있을만한 마을을 찾지 못했다. 마을은커녕 변변한 집도 한채 없었다. 그러다가 오후 세시가 다 되어서야 그럴듯한 큰 마을 하나를 만났다. 티티카카의 동쪽 고원지대의 도로가 대부분 이 마을을 지나는 듯했다. 푸카라니 마을이다.


중앙광장은 어린이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고 건너편에는 빨간 벽체의 성당이 눈에 띄었다. 성당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나 꽉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우리는 성당 맞은편의 후줄근한 식당에서 뭔지 모를 음식을 한 접시 먹었다. 그 식당의 입구 벽에는 빨간색의 코카콜라 광고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어 성당과 묘한 긴장감을 만들고 있었다.


푸카라니 마을 광장의 성당. 빨간 벽체가 인상적이다
성당 맞은편 식당 입구의 빨간색 코카콜라 광고 벽화


푸카라니를 지나자 푸른 밀밭이 이어졌다. 적갈색 황토벽돌의 초가집들이 밀밭 뒤에 서서 길가는 작은 승용차에게 손을 흔드는 듯했다.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물이 많이 불어난 시내를 만났다. 물은 꽤 빠른 속도로 흘러갔는데 깊이도 꽤나 되는 듯싶었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시내의 아래쪽과 위쪽을 살펴보고는 다시 돌아왔다. 건널만한 곳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영어로 건널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나 씩 웃고는 말이 없었다. 그는 냇가에서 주먹만 한 자갈돌 몇 개를 주워 들고는 냇물 여기저기로 던져 보았다. 그리고 나보고 타라는 손짓을 했다.


이 작은 차로 앞에 보이는 불어난 시냇물을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었다.


차는 보닛까지 넘실대는 냇물을 헤치고 별로 힘들지 않은 듯 시내를 건넜다. 자갈이 떨어지는 소리와 파장을 보고 건널 수 있다는 확신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라파스에서 티와나쿠로 연결되는 포장도로를 만났다. 아스팔트가 끝나는 곳에 펼쳐진 들판 뒤로 티티카카의 반짝이는 물결이 하얀 띠가 되어 저쪽 세상과 이쪽 세상의 경계선을 만들고 있었다. 운전기사 청년은 티와나쿠의 호텔 앞에 나를 내려놓고 차는 다시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 저쪽 세상으로 돌아갔다.


길 가에서 자주 만나는 농촌 풍경들
라파스와 티와나쿠를 연결하는 도로. 멀리 티티카카의 수면이 오후 햇살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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