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카카 호수가 태양신 인티의 고향이고 인티는 잉카족이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섬기는 창조신이라는 것은 앞의 태양의 섬 편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이 인티신은 비라코차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 지역에 거주하는 잉카의 후손 아이마라족의 전설은 비라코차가 먼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초원 뒤로 보이는 아카파나 피라미드 유적
그 전설에 의하면 현재의 티티카카 호수가 처음에는 바다였으며 티와나쿠는 바닷가의 항구도시였다. 티와나쿠가 건설된 것은 1만 5천 년 전인데 대홍수가 나서 티와나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바다의 수위가 내려가서 내륙 쪽의 일부 바다가 지금처럼 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라코차는 대홍수로 인해 태양도 사라지고 온 세상이 캄캄해진 암흑의 시대에 티티카카에 나타났다. 그리고 티와나쿠에 신전을 세워 세상을 다시 구한 후 언제인가 먼 후일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마치 기독교의 메시아 같기도 하고 우리가 믿는 미륵불 같기도 하다.
유적 주변에 흩어진 석재들
지금 우리가 보는 티와나쿠는 이제 호수가 된 티티카카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땅 속에서 드러난 잉카 이전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인티신의 고향이며 잉카족의 고향으로 알려진 태양의 섬과 함께 잉카 문화를 낳은 잉카의 어머니 격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리비아 문화의 모태로서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도 하다.
칼라사사야 사원 성벽의 장관
티와나쿠 유적이 관심을 받는 것은 이 유적이 안고 있는 문화가 후에 잉카제국의 영역에 버금갈 정도로 넓은 지역에 퍼져 있고 그래서 잉카 제국 이전에 티와나쿠라는 큰 나라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티와나쿠의 영역은 페루 남부와 칠레 북부의 해안지역, 그리고 티티카카 호수의 남쪽으로 연결된 볼리비아의 서부에 걸친 광대한 지역이다. 물론 나라의 중심지는 현재의 티와나쿠이다.
이 나라가 그처럼 광대한 지역에 걸쳐 있다는 것은 티와나쿠에서 출토되는 토기 또는 여러 가지 유물들과 같은 양식이 그 지역들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유물의 분포가 티와나쿠의 정치 군사적 통제를 받는 지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티와나쿠의 영향력이 넓게 퍼져 있었음은 사실로 보인다.
유적 주변에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현재 티와나쿠에서 발견된 유물 중 오래된 것은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사이의 것이라고 한다. 곧, 이 유적이 있는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2천 년 정도 이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유적 안에 있는 건물이나 석상 등의 주요 유적과 유물들은 대체로 기원후 200년에서 6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대가 좀 늦은 것으로 보이는 유적들은 기원후 1000년경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고 하며 유적의 최전성기는 기원후 800년 경이라는 설도 있다.
마치 유적의 일부처럼 보이는 옛 호스텔 건물
전성기의 거주 인구는 10000명에서 20000명 정도였다고 하며 유적 주변까지 넓혀서 보면 30000에서 60000명이 살았다고도 한다. 유적의 분포 지역은 현재 아카파나 피라미드나 칼라사사야 신전 유적을 포함한 밀접 분포지역과 그 주변의 넓은 초원지역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대체로 12-15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 유적은 잉카 이전의 티티카카 호수를 중심으로 한 넓은 지역을 지배한 명실상부한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유적에 인접한 넓은 초원에도 보이지 않게 유적들이 산재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흙집은 사람들이 떠난 농가이다.
풀밭 위의 저녁 풍경
예약해둔 호텔은 유적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고 호텔 창문에서도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어 표 파는 창구는 이미 닫혔고 일반 관람객은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착한 날은 유적의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유적지 건너 능선 위를 날으는 새들
철조망이 둘러쳐진 유적 내부도 매우 넓었지만 외부에서 조망하는 유적의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다. 특히 해가 넘어가는 초원에서 바라보는 티와나쿠 유적과 그 너머로 보이는 시가지의 건물들, 그리고 풀밭 습지를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마치 일부러 짠 듯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새에게 씨를 먹이는 엉겅퀴
유적의 옆으로 난 길 가에는 지금은 주민들이 모두 떠나고 무너진 빈 집들이 많이 보였다. 집들은 모두 흙벽돌로 지은 것들인데 무너진 흙벽들이 고대 유적처럼 서 있었다. 아마도 새로 큰 호텔들이 들어서면서 폐기된 작은 여관인 듯했다.
유적의 주변으로는 밀밭을 위시해서 농경지가 넓게 분포한다. 유적의 북쪽과 남쪽은 산지로 되어 있고 동쪽과 서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북쪽 산 밑으로는 치야 강이 티티카카로 흘러 들어가고 동쪽은 치야 강의 지류가 넓은 초원을 가로지른다.
유적에 인접한 밀밭이 이곳이 곡창지대임을 말해준다.
티와나쿠 유적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이곳이 천혜의 곡창지대이고 또 목축에도 매우 유리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러한 풍요로운 대지가 제공해주는 생산물이 티와나쿠라는 커다란 나라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양치기 여인
현재 관리되고 있는 유적지 내에는 아카파나 피라미드, 칼라사사야 사원, 칼라사사야 사원 안의 두 석상과 태양의 문, 반지하 사원, 푸투니 유적, 달의 문 그리고 푸마 푼쿠 유적 등이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유적들이 더 있으나 그 모두를 일일이 열거,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이들 유적들의 개요를 앞으로 두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기로 한다.
멀리 저녁 햇살에 드러난 마을이 평화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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