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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gweon Yim Mar 20. 2022

잉카의 어머니 티와나쿠 3 -티와나쿠를 지키는 석상들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51

엉뚱한 이름의 석상들


이름은 이름이 붙은 대상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기도 하고 어떤 물건의 특성이나 쓰임새를 알 수 있기도 하다.


앞에서 살펴본 반지하 사원의 바르바도 석상(Barbado Monolith)의 '바르바도'는 '수염이 난'이라는 뜻이니 이 석상의 인물이 수염이 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반지하 사원에 있었던 베네트 석상이나 지금 살펴보고자 하는 칼라사사야 사원의 폰세 석상(Ponce Monolith)은 발굴자의 이름이 붙은 것이고 수도사 석상(Fraile Monolith)의 이름은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수도사가 석상에 세례를 주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폰세 석상과 수도사 석상 ( 오른쪽 작은 것)


발굴한 사람의 이름이 붙은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으나 수도사 석상의 경우는 좀 다르다. 석상은 안데스의 신상이다. 안데스의 신에 가톨릭의 세례를  주었다는 것은 석상의 입장에서는 모욕이라 할 수 있다.


 나라나 민족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남미는 민족주의 경향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백 년 식민지의 찌꺼기가 이처럼 중요한 문화유산에 붙어있는 것은 또 무언가?


베네트의  미니어처? 폰세 석상


정면 얼굴의 모양은 작은 경우 눈 코 입만 간단히 묘사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동그란 모양의 두 눈과 입만 묘사한 것도 있다.


반지하 사원에 있었던 박물관의 베네트 석상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이 폰세 석상에서 볼 수 있다. 폰세 석상은 곧 베네트 석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네트 석상이 워낙 커서 그렇지 폰세 석상도 키가 3미터이니 축소판이라고 해서 작은 것은 아니다.


1957년 칼라사사야 사원의 한가운데서 발견된 이 석상은 카를로스 폰세 산기네스(Carlos Ponce Sanginés)라는 볼리비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러나 석상은 이미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을 것이라 한다. 석상의 이름은 처음 조사한 고고학자 폰세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기원후 3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폰세 석상의 옆면과 뒷면


석상의 머리에서  발까지  전체에는 여러 가지 도상으로 가득 찼다. 석상의 모습은 사람의 형태로 되어 있으나 아마도 잉카 훨씬 이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에게 숭배되고 있던 창조신 비라쿠차나 지팡이 신일 것으로 보고 있다.


폰세 석상은 티와나쿠 박물관의 7미터가 넘는 베네트 석상에 비하면 작다 못해 왜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3미터가 넘는 키의 폰세 석상이 칼라사사야 사원의 중심에 우뚝 선 모습은 당당하고 기품이 서려 있다. 이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폰세 석상의 얼굴

얼굴도 그냥 얼굴이 아니다. 눈이나 코 또는 입도 모두 실제의 사람 얼굴처럼 묘사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상징 부호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콧구멍도 이중 원을 이용한 복잡한 형태를 보인다. 양쪽 볼의 공간도 그냥 두지 않았다. 석상 전체에서 보이는 작은 사각형 무늬를 이용한 도상이 가득히 새겨져 있다.


이러한 새김은 귀밑에도 있고 모자의 하단부인지 머리띠인지 알 수 없는 이마 부분의 띠 같은 것에도 보인다. 박물관에 있는 베넷 석상은 머리 위에 마치 불상의 육계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모자일 것이다. 이 석상의 머리 위쪽에 깨진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육계 같은 형태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귀 부분의 세부(왼쪽)와 케로 잔과 스너프 타블렛을 들고 있는 두 손

귀밑에 있는 얼굴 모양의 물건은 이곳 사람들이 음료를 마실 때 사용한다고 전하는 소위 케로 술잔이다. 술잔 속에는 앵무새 같은 모양의 머리가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한 채 꽂혀 있다. 안데스의 오랜 신화에 나오는 지팡이 신으로 보인다. 이 지팡이 신의 형상은 티와나쿠 또는 잉카의 유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귀의 모양을 보니 마치 물음표처럼 보인다. 무언가를 들은 것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것인가?


두 손을 앞가슴으로 올린 상태로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다.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귀 밑에 있는 것과 같은 음료를 마시는 술잔이다. 케로 잔이라고 한다. 술잔 속에는 얼굴을 반대로 돌리고 있는 지팡이 신상이 들어 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스너프 태블릿(snuff tablet)이라고 하는데 담배나 환각제 같은 냄새를 맡는 납작한 도구라는 설명이 있다. 마치 인형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손 모양이 이상하다. 왼손(보면서 오른쪽)은 그런대로 자연스러운데 오른손은 손바닥이 뒤집힌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종교적인 상징인가? 알 수 없다. 이러한 오른손의 어색한 모습은 박물관의 베네트 석상이나 다음에 살펴볼 수도사 석상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석상의 허리띠와 다리를 감싼 의상  무늬와 신상 얼굴이 들어있는 발찌


허리띠에는 둘레에 장식을 한 네모난 얼굴과 그 위로 네 개의 지팡이에 달린 얼굴이 달려 있다. 어떻게 보면 케로 잔 속에 지팡이가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한 문양은 귀 밑에서도 볼 수 있으니 폰세 석상에 가장 많이 표현된 모티프로 보인다. 또 그 아래로 다리를 감싼 옷 전체에 작은 얼굴 무늬가 바둑판 위에 놓인 바둑돌처럼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반복되는 작은 도상의 패턴은 대체로 허리띠나 다리 부분 또는 다른 곳에서 보인다. 이러한 무늬는 하나의 상징적인 도상일 수도 있지만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입었던 의상의 무늬일 수도 있다. 다리를 감싸고 있는 옷의 아랫단은 마치 한국의 완자무늬와 흡사하다.


이 옷 모양이 마치 치마 같아서인지 석상을 여성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내 눈에는 그것을 꼭 치마로 볼 수는 없었는데 또 치마라 한들 그것이 반드시 여성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발목을 감은 발찌는 이 신상의 얼굴과 유사한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칼라사사야 사원의 동쪽 문으로 보이는 폰세 석상. 이 모습은 반지하 사원의 베네트 석상이 보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지역의 문화에 무지한 상태에서 이러한 도상을 보는 것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할 수 있으나 궁금증을 풀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에서 설명을 찾아 이것저것 읽어 보았으나 시원한 해답은 없었다. 하기야 문자 설명도 없이 그저 그림만 보고 추정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폰세 석상은 칼라사사야 사원의 동문을 향해 서 있다. 그 문을 통해서 그와 마주 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반지하 사원의 베네트 석상이었을 것이다. 두 신의 관계가 흥미롭다.

  

가톨릭 세례 받은 잉카의 신


이 석상은 수도사(Fraile Monolith)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높이가 2.45미터이다. 같은 칼라사사야 사원 경내에 있으나 키가 비교적 작은 탓에 폰세 석상에 비해 친근감이 든다. 얼굴도 깨진 코와 튀어나온 입으로 인해 보는 이에게 웃음을 준다. 이름이 수도사인 것은 처음 이곳에 온 스페인 선교사가 석상에 세례를 주었다는 데 연유한다. 아마도 그 수도사는 이 석상을 보고 어떤 영적인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가 석상에 세례를 준 것은 가톨릭 수도사로서 자신이 받은 영적인 신비감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석상은 안데스 산지나 알티플라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신상이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신상은 먼 이방에서 온 수도사에게 수모를 당한 셈이다.


수도사 석상의 앞과 뒤. 잘라진 허리를 접착제로 붙인 흔적이 보인다.

석상을 만든 것은 이곳이 티티카카 호수에서 가까우므로 이러한 석상이 호수 숭배와 관련 있다는 주장도 있고 또 석상에 표현된 인물은 여성이라는 설도 있다. 하반신을 감싼 옷의 치마일 것이라는 추측에서 온 것이다.  앞에서 보면 바지를 입은 것으로 보이는데 뒤에서 보면 치마를 입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복식의 형태만 가지고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는 치마를 입는 남성들도 많기 때문이다.


석상은 칼라사사야 사원의 서북쪽 모서리에 북쪽을 향해 서 있다. 이 사원의 대부분의 석상들은 원래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땅 속에 묻힌 것들을 발굴해서 복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석상은 두 팔을 가슴 앞으로 붙이고 오른손에는 지팡이처럼 생긴 물체를, 왼 손에는 지팡이 신으로 보이는 물체가 들어 있는 케로 잔을 들고 있다. 이것은 폰세 석상의 경우와 매우 비슷한데 마모가 심해서 자세한 형태를 알기는 어렵다. 흥미 있는 점은 폰세 석상처럼 오른손의 모양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오른손은 왼손의 모양을 그대로 복제한 듯 조각되어 있는데 이런 이상한 오른손은 박물관에 있는 베네트 석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특이한 손 모양은 아마도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른손이 오른손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두 손과 허리띠. 오른손이 왼손과 같은 방향을 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허리띠 문양은 게처럼 보이는데 식물의 일종이라는 주장도 있다.


허리띠는 마치 게처럼 보이는 문양이 새겨졌는데 왜 이 신상의 복식에 게가 등장하는지 이상하기 짝이 없다. 폰세 석상에서는 지팡이 신을 담은 잔처럼 보이는 무늬가 새겨졌는데 그와 비교하면 수도사 석상의 허리띠는 생뚱맞다고 할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이 도상이 식물의 종류를 표현한 것이라는데 게의 앞다리를 자세히 보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다리를 감싼 치마 같은 옷에는 폰세 석상과 마찬가지로 신상의 얼굴을 극도로 간략화한 것과 이중의 사각형 무늬를 반복해서 새겼다. 석상의 세부를  자세히 기록하느라 길고 지루해졌으나 티와나쿠 사람들이 왜 이 석상들을 숭배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다.

 

다리를 감싼 치마처럼 보이는 옷에 새겨진 문양. 눈과 입이 새겨진 네모 얼굴은 신상을 간략히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 없는 석상


머리가 없는 이 석상은 이름도 그대로 목 없는 석상(Estela Descabezado)이다. 칼라사사야 사원의 동북쪽 성벽 밖에서 출토되어 그 자리에 세워진 이 석상은 머리가 없기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이름도 특별히 지어지지 못했다.


머리는 없으나 팔의 자세나 측면의 뱀 형태의 조각 등 석상의 모습은 반지하 사원의 수염 난 석상과 거의 흡사하다. 몸 전체는 수염 난 석상에 비해 긴 편이다. 그래서 허리띠가 아래쪽으로 쳐져 있다. 허리띠에는 고양이처럼 보이는 작은 동물이 뛰어가는 도상을 새겼다.


머리 없는 석상 뒤로 칼라사사야  북벽이 무대배경처럼 보인다.
가슴의 얼굴과 허리띠의 동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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