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이 시절

by 쑤기노트

나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이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이른 아침, 남영역까지 택시를 타려 하면
여자라서, 안경을 썼다고 택시는 지나쳐 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때는 마수걸이가 중요한 시절이었다.


귀갓길에는 “북한남동이요” 하면 못 알아듣고,
“이태원이요” 하면 총알처럼 출발했었다.
“학생, 이태원은 뭐 하러 가, 이 시간에.”
룸미러로 힐끗 쳐다보며 묻는 기사님이 흔하디 흔했다.

택시를 타지 말아야 했는데. '금명이'만큼 똑똑하지 못해서 지방대생이었던 나는 밥값 대신 택시비가 수월찮게 나갔었다.

그 네온사인이 현란하던 지역이... 시간이 흘러 상업지구가 되고 땅값이 올랐다. 이것도 몸테크의 승리라면 승리였다.
"배운 게 없으니 이렇게라도 먹고살아야지"


어무니는 월세방이 이사 나가면 손톱이 닳아져라 창틀을 닦고 변기를 닦았다.
"사람 쓰면 돈이야. 도배도 비싼데 에이 좀 깨끗이 쓰지 저기 뭘 부었는지 난리야난리"


그렇게 몸을 써서 돈을 아끼고 하루라도 누워 잘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나와 나이터울이 11살이 나는 아들내미를 챙겨 먹이느라 어무니는 늘 고단했었다.
"쟤가 사람노릇하게 하겠냐? 요새 저 편의점이라도 하게 만들어야지"
아들내미를 위한 어무니의 억척은 나에게도 연대를 암묵적으로 강요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요즈음 어무니는 나를 옆집 아낙네처럼 지난 얘기를 꺼내며 감정공유를 원할 때가 있다.
어제는 아들내미 이야기를 하며 욕을 했다.
“나쁜 놈이다, 못된 놈이야.”
“지네 집에 내가 찾아갈까 봐 겁이 났나 봐.
집 열쇠를 말도 안 하고 가져갔어.
애 봐달라며 줄 때는 언제고,
애 엄마가 집에 있게 되니까 몰래 가져가고
이렇다 저렇다 말도 안 하더라고, 그놈이.”
“내가 그걸 시장 길바닥에 떨어뜨린 줄 알고
미친년처럼 찾아다녔어. 나중에 보니까 세인이가 열쇠고리를 가지고 놀고 있더라고. 그래도 그놈 말 안 하더라 나쁜 새끼야”

금명이의 남동생만큼이나 골칫거리였던 어무니의 아들내미는,
결국 남의 딸의 편이었다.

이제부터 어무니는 그 아들내미와 남의 딸의 효용가치를 체감하는 시간을 살아야 하리라.
"폭싹 속았수다"의 금영이 남동생처럼 어무니의 훈훈한 말년을 선사할까?
아부지의 치매는 식구를 모으게 될까? 흩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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