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80세부터는 밤새 안녕인지 확인해야 마땅한 시기가 맞다. 아부지는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지우는 방법이 뭐냐고 물으셨다.
"이렇게 ~꾹 누르면~ 요거 휴지통 그림~ 요기 눌러요 "
"이제 없는 사람이 많다. 지워야지"
하나 둘씩 이름을 읽고 지워나가셨다.
완전삭제는 아니라 휴지통에 남겨있을 것이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접근하진 않았다. 억지스럽지만, 아부지의 시간을 함께하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의미부여를 해본다.
외숙모喪을 치르고 외삼촌 집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막내시누이인 어무니는 아부지와 경의 중앙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시다시피 했었다.
" 집이 너무 넓어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외숙모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 밭에 없는 게 없이 심어놓았더라고. 상추, 가지, 고추, 깻잎도 있고, 호박에 열무도 심어놓았더라고... 밤나무, 감나무, 블루베리도 있어서 막 따먹었어.
토종닭도 키웠는데 아휴 그걸 어떻게 잡아먹어. 근처 주민한테 나눠줬어. 된장, 간장, 매실진액도 있고 어휴 너무 잘해놓았더라고... 그런데 가버렸네..."
어무니에게는 한여름 땀띠를 긁으며 유품을 정리하던 기억보다 미화된 풍경만 남아 있다. 방치된 닭장의 냄새 때문에 신고가 들어오고, 당신 손으로 보낸 닭이 솥에 담겨 돌아와
남의 집 살림을 뒤져 밥을 해 먹어야 했던 일.
먼지와 땀이 뒤엉킨 몸은 계속 불쾌했고, 엄나무인지 뭔지 잘못 건드려 피부는 가렵고 피곤으로 입술엔 물집이 올라오고
순간순간 아찔했던 그 여름을, 어무니는 달콤한 블루베리와 진한 집간장의 맛으로 간직하고 계신다.
아부지는 연락처를 지우고, 어무니는 풍경과 맛으로 기억을 붙잡는다. 누가 더 슬기로운 노년을 산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이 ‘정리의 시간’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엇을 쥐고 어디로 흘러가느냐의 문제로 따진다면,
아부지의 방식은 의문의 1패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