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선물

by 신이나

세탁기에서 라이터를 발견한 것은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라이터를 들고 세탁기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아니 믿을 수 없어서 그것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들의 흡연이 시작된 것이다.


책상 위 서랍에서, 패딩점퍼 주머니 안에서, 현관문 옆 수도 단자함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라이터들과 담배를 주웠다. 가끔은 전자담배 기기와 액상담배도 주웠다. 전자담배 기기를 주웠을 땐 녀석의 살림살이가 나보다 더 넉넉했던 명절의 뒤끝이었다. 거실 중앙엔 성모상이 있었고 그 앞에는 촛대가 있었다. 주워 모은 라이터들을 촛대 옆으로 나란히 진열했더니 어느덧 만리장성을 이루었다. 그것을 못 보고 지나칠 리 없었을 텐데 그 녀석은 반성하는 내색은커녕 더 은밀한 곳으로 더 교묘하게 숨기며 흡연을 지속했다. 그 녀석의 숨기는 실력이 늘어날수록 나의 찾기 실력도 발 빠르게 진화하여 우리는 쫓고 쫓기는 추격자와 도망자가 되어갔다.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말로만 듣던 관공서와 처음으로 연을 맺게 되었다.


“OOO어머니 되시죠? 광나루 지구대입니다.”


아들은 학원 근처 구석진 골목에서 친구와 담배를 피우다가 지나가던 주민 아저씨에게 걸려 현행범으로 경찰에 신고되었다. 경찰의 전화를 받아 본 것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성실하고 순해 보이는 목소리의 젊은 경찰은 보호자의 인계 하에 아들을 훈방 조치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들의 행동에 충격과 분노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심 경찰서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들이 반성하기를 바랐다.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젊은 경찰은 경찰서까지 오기 힘드시면 같이 신고된 친구의 어머니가 곧 도착할 예정이니 나 대신 그 어머니 편으로 굳이 아들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안됩니다!’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네, 부탁드립니다.”

아들은 스스로도 흡연을 지속하면 안 될 것 같았는지 한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옷이나 이불 그리고 방에서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고, 하루에 몇 마디 안 하는 우리의 대화 속에서도 담배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런 황금 같은 시기가 지나가더니 다시 녀석의 방 안 여기저기에서 담배냄새가 진동하는 암흑기가 찾아왔다. 금연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아들은 그렇게 금연도 해봤다가 다시 흡연을 하고 다시 금연을 시도하는 것을 반복했다.


아들이 고3이 되었다. 말하자면 조만간 성인이 되는 반열에 올랐으며 심지어 만 18세가 되어 주민등록증까지 떡하니 발급받아 학문의 상아탑이자 지성인의 배움터인 대학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학업에 매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란 말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녀석은 엄마에게 경이로운 선물을 하나 투척했다.


“여보세요. OOO어머니 시죠? 여기 광진 경찰서입니다.”


동네 지구대 전화를 넘어 이젠 구 전체를 관할하는 경찰서, 그중 지능범죄수사팀의 경찰관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해 주었다. 이 녀석 대단한 놈으로 성장했다.


친구에게 담배를 사준 공급책으로 아들이 신고되었으니 경찰서로 아들과 함께 출석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기가 막혔다. 경찰관이 상황 설명을 자세히 하는 동안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아드님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없습니다. 담배를 판 상점 주인에게 벌금과 영업정지가 이루어질 꺼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한번 겪어봤기에 놀라운 성장을 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비보에 더욱더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죄송한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지능범죄수사팀의 경찰관이라 그런지 그는 나의 부탁을 바로 알아차렸다.


“걱정 마세요. 따끔하게 혼내도록 하겠습니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뒤에서 보면 사이좋은 모자지간으로 보였겠지만 아들과 나는 서로의 머리를 굴리며 조용히 경찰서를 향해 걸어갔다. 경찰서에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아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지, 얼굴 표정을 어떻게 하는 것이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경찰서에 도착해 3중의 보안 문을 통과하고 그 경찰관을 직접 만났다. 온몸이 단단한 근육으로 단련된 누가 봐도 날쌔고 건장한 경찰관이었다. 인상이 좋아서 문제였지만 우린 서로 눈으로 각자의 사인을 보내며 인사를 했다. 경찰관은 또 다른 보안 문을 통과하여 작은 방들이 밀집된 조사실로 아들과 나를 안내했다. 조사실은 하필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 보였다. 조사실 앞 휴게실에 있는 포돌이, 포순이 이것들마저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심지어 방안 조명까지 밝아 아쉬움이 컸지만 그나마 복도가 어두운 것에 위안을 삼았다.


“어머니까지 경찰서에 오시게 하는 불효가 어디 있냐?”


그의 첫마디였다. 너무 약한 표현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조용히 양손을 맞잡고 부르르 떨리는 척하며 안경을 고쳐 잡았다.


“왜 그랬는지 말해봐라.”


아들은 고개를 숙인 채 단답형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친구끼리 담배를 사주는 것은 늘 일어나는 일이고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친구의 부탁으로 담배를 사줬다고 했다. 경찰관은 요즘 학생들이 담배를 구입하기 위해 신분증을 검사하는 깐깐한 편의점보다는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작은 슈퍼를 공략하는 것이 그들의 패턴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너의 행동이 그 어르신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어. 벌금도 내고 몇 달 동안 영업정지도 하셔야 하는데, 참.”


아들은 반성이라는 것을 하고나 있는지 저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소리 내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놀라셨겠니?”


아들은 지금까지 대답한 모든 내용을 진술서에 자필로 작성해야 했다. 그동안 경찰관과 나는 아들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다.


“더 따끔하게 혼내주셔도 돼요.”

“아... 알겠습니다.”


아들이 진술서 작성을 마치자 경찰관이 조사실로 들어갔다.


“담배를 끊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는 참고, 다시는 부모님을 이런 일로 경찰서에 오시지 않도록 해라.”

“네.”


내가 원한 ‘따끔‘이란 저렇게 선비같이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었다.


‘이노무자식! 벌써부터 담배를 피워? 철창에 갇혀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리 와! 콩밥을 먹게 해 주마!!! 네 이노 오옴!!!’


이런 멘트를 험상궂은 얼굴과 우렁찬 목소리로 해주길 바랐지만 인상 좋은 경찰관은 인상만 좋은 것이 아니라 아들 입장에선 깨끗한 경찰서의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내가 힘들게 만들어준 몸이야. 함부로 다루지 마라.”

“응.”


나의 위대한 아들은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학습능력과 적응능력을 가지고 있어 나에게 또 얼마나 영광스러운 선물을 선사할지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지없이 허를 찔리는 이 순환을 이제는 끊고 싶다. 지구대를 거처 광진구 관할 경찰서를 다녀왔으니 다음은 서울시...


말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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