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였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라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의 전공은 행정학이었다. 행정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그저 학과 이름과 80명을 뽑는다는 정보에 혹해서 지원했었다. 공부를 해보니 공무원이 되고 싶은 학생들이 모이는 학과였고 난 별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학과 선배들은 공무원 시험이나 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를 준비했다. 그들의 모습은 숨이 턱턱 막히듯 답답해 보였고 힘들어 보였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 박혀 공부에 전념했다. 목과 무릎이 늘어난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낡은 슬리퍼를 끌며 덥수룩한 머리와 깎지 않은 수염은 그들의 상징이었다. 책상 위 연필꽂이엔 의례 칫솔이 하나 꽂혀있었고 의자 등받이엔 누런 수건이 걸려있었다.
나도 저 길을 가야 하나?
도서관 정기간행물실로 갔다. 그 당시에는《월간 고시》라는 잡지가 있었다. 거기엔 각종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성공수기가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힘든 과정을 통과한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난 한 자리를 잡고 앉아 5개월 치《 월간 고시》의 대단한 공무원들의 엄청난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2시간이 흐르고 그곳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며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7급 공무원에 합격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산속 절로 들어가 밥을 소화시키는 시간도 아까워 고기를 다져서 먹었다니. 7급이 이러한데 5급은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어지러웠다. 고시의 경우 이런 인고의 기간이 점점 늘어 수년이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공무원의 길은 자고로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가야만 하는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우선 나의 신앙은 천주교로 절과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두상이 예쁘지 않아 머리를 빡빡 밀고 싶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밥도 내 맘대로 골라 내 맘대로 많이 먹고 싶었다.
동사무소와 구청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동사무소든 구청이든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은 예상과 다르게 모두 비슷했다. 웃음기 없는 얼굴에 말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일만 하고 있었다. 하루 8시간을 이렇게 일해야 하는구나.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리고 결정했다. 공무원의 삶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이제 전공 외에 무엇을 하면 좋단 말인가? 참고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 손을 떠난 영어는 나의 철천지원수였다. 대학에서도 원서강독 과목은 최하점을 받았을 만큼 영어와 나는 잘 맞지 않았다. 재미도 없었고 실력이 늘지도 않았으며 성적마저 좋지 않았다. 그랬던 영어였는데 진로를 고민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영어를 잘한다면 직업을 선택하는데 그 폭이 넓어질 것 같았다.
공부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여러 번 다짐하고 시도해도 졸음만 오던 문법 중심의 학습보다는 실제로 말을 하는 스피킹 수업을 듣기로 했다. 오전 6시, 스피킹 수업으로 유명하다는 한 학원을 친구와 함께 등록하기 위해 줄을 섰다. 때는 12월 말이라 새벽의 찬 공기를 막기 위해 담요를 머리까지 두르고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발을 동동거렸다. 학원 등록을 위한 줄은 좁은 골목을 지나 큰 대로변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이른 오전 시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니. 생경한 모습이었지만 덕분에 꼭 등록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수업을 들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새해가 되면서 하루 일과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전 6시 ‘굿모닝팝스’로 기상했다. 팝송의 가사를 해석하면서 영어 표현을 배우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그날 배운 표현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 사용해 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학원 첫 수업 날, 외국인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뭐라 뭐라 하시더니 분위기가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선생님은 하필 나를 먼저 지목했다. 속에선 '오 마이 갓'을 외쳤지만 영어를 못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앞으로 나갔다.
“굿 모닝. 마이 네임 이즈 OOO. 아임 어 스튜던트. 땡큐.”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한 템포 늦게 나왔고 미국인 선생님은 ‘쟤는 뭐지?’라는 듯 나를 한참 쳐다봤다. 내 뒤를 이은 수강생들의 자기소개를 듣고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등록한 반은 1단계 기초반이었다. 그러나 기초반에 모인 이들은 기초가 아니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뿜어내는 그들의 유창한 자기소개와 그들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몸짓은 나를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이방인처럼 만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한국에서 6년 영어 공부한 처참한 나의 실력을 다 보여줬으니 그들도 나에 대한 기대치는 없어졌겠지. 나는 나대로 짧은 문장과 가장 쉬운 단어의 조합으로 뜨덤뜨덤 말하기 시작했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당당히 말했다. 인상 깊었던 자기소개에 첫날부터 나를 찍은 미국인 선생님은 모든 발표에 나를 먼저 시키는 만행을 저질렀고 내가 발표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손녀를 바라보는 눈길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끝없는 꼬리 질문들을 퍼부었다. 수업이 거듭되면서 나는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내가 알아서 칠판 앞으로 나가 발표 준비를 했을 만큼 발표에 이력이 나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외국인 교수님이 진행하는 영문과 회화수업을 겁도 없이 신청했다. 첫날 나를 바라보는 영문과 학생들과 교수님의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저 학생은 뭐지? 심지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네. 왜 이 수업에 들어왔지? 정상인가?’ 학원에서 받았던 눈길이었다. 난 이미 얼굴에 철판 오 만개를 장착한 상태였다. 교수님의 질문을 이해 못하면 불쌍한 마음에 영문과 학생들이 알려주었고 난 떠듬떠듬 대답하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수업을 겨우겨우 이어갔다.
매일 오전 6시 라디오 방송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밤 12시 도서관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쳤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되어갈 즈음,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았다. 하고 싶은 표현도 머릿속에서 맴돌며 잘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던 참이었다.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에서 제작한 할리우드 영화였다. 한참을 관람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뒷머리부터 발끝가지 소름이 돋았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났다. 침을 꿀꺽 삼켰다.
자막을 보지 않은 채 내가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할렐루야!
그 날 이후 나의 영어수업은 그야말로 일취월장, 점입가경, 파죽지세 심지어 불로불사였다. 외국인 교수님으로부터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칭찬을 듣기 시작했고 같은 조에서 연습하던 선배들이 갑자기 말이 늘었다며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해댔다. 귀가 뚫리면 입이 튄다더니. 내가 직접 경험하고 보니 그 말은 참말이었다. 신기했다.
2년여의 시간을 들여 나의 영어실력은 중학교 1학년에서 대학생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이었나 싶다.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덕분에 외국인 울렁증 같은 것은 느낄 사이도 없이 외국인과 함께 일하는 직업으로 나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제일 싫어했던 과목인 영어로 밥 먹고 살게 될 줄이야. 인생은 종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