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계신 아버지는 달달한 빵과 달짝지근한 과일 음료수를 한동안 즐겨 드셨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과수원일이 처음이라 고된 노동 후 당을 보충하기 위해 그런 거라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시골에 갈 때마다 온갖 종류의 빵과 음료수를 한 보따리씩 싸들고 아버지가 맘껏 드실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반찬들이 너무 짜다며 간을 싱겁게 해달라고 요구하셨다. 생전 반찬 투정이라는 것은 해본 적 없는 분이었다. 엄마도 나이가 드는 건지 간이 세지는 거 같다고 인정했다. 엄마는 반찬의 간을 최대한 싱겁게 하고 젓갈이나 장 종류의 반찬을 상위에 올리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반찬이 짜다며 흰밥을 물에 끓여 죽처럼 만들어 드시기 시작했다.
“당뇨라네.”
아버지는 과수원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허기가 져 간식으로 가져간 단팥빵을 드셨다. 그런데 입안에서 침이 나오지 않아 도저히 빵을 넘길 수 없다고 하셨다. 빵의 절반 정도만 우물거리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곤 1리터의 물을 단번에 들이켜셨다고 한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공복혈당을 쟀지만 기계가 확인할 수 있는 수치를 아버지는 넘어버렸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해오던 아버지였는데 당뇨라는 말에 가족들은 모두 긴장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처방해준 약 먹고 밀가루랑 단 음식은 가급적 먹지 말래.”
아버지의 밥상은 익힌 야채들과 생선 그리고 맑은 국으로 바뀌었고 식사 후 마시던 달달한 믹스커피는 블랙커피로, 과일 주스는 설탕 없는 미숫가루로 대체되었다. 귤과 사과 같은 과일들도 드시지 않았다. 케이크와 라면 그리고 아이스크림 종류도 일절 입에 대지 않으셨다. 유일한 간식은 옥수수 뻥튀기였다.
294/ 234/ 170/ 120
열흘 간격으로 검사한 공복혈당이 사십일 만에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버지는 행복해하셨다. 의사의 조언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모습을 옆에서 봐왔기에 혈당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오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줄은 몰랐다.
“우리 아빠 대단한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수치가 내려갈 수 있어?”
“전문가가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해.”
오십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칠순을 넘긴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경험해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치열하게 관리하는 아버지가 너무 고마웠다. 이번 당뇨 사건이 아니었다면 평소 아프다고 말해본 적 없는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도 없었겠지. 내가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효도도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드리는 것이리라.
‘우리 가족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