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꿈이 뭐야?”
십여 년 전,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나의 꿈 그리기’라는 숙제를 하면서 내게 툭 던진 질문이었다. 아들의 무심한 질문이었지만 난 무심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회사원으로 일하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꿈이 있을까? 이렇게 흐르는 대로 살다가 노년을 맞이해야 하는 거 아닌가? 꿈? 내가 꿈을 가질 수 있다고?
꿈은 학창 시절에만 갖는 청년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그땐 기회도 있고 희망도 있으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꾸린 난, 나의 다음 꿈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저 넓은 공간에 별 하나만 희미하게 떠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꿈을 가져도 될까?
문득 고등학생 때 국어시간이 생각났다. 자유주제로 작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풍경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를 간신히 타게 되면 차의 흔들림에 따라 터져 나오는 아우성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그 소리를 지르며 학교로 갔던 나의 일상. 국어 선생님께서는 그날 제출한 작문 중 내 것을 선정해 국어시간에 읽어 주셨다. 내가 쓴 글이 나쁘지 않다는 것과 심지어 꽤 괜찮은 글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두 아들과 함께 한 카드사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였다. 아이들은 주제에 맞게 그림을 그리고 부모님은 글쓰기를 하는 행사였다. 아이들의 체험학습에 무게를 두고 나름 그리기에 소질이 있던 아들이 작은 상이라도 받아 자존감이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에 신청한 백일장이었다. 열심히 그리기에 집중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도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연필로 꾹꾹 눌러쓰며 원고지를 채워갔다.
한 달 뒤, 대회 결과는 의외였다. 기대했던 아들은 입상하지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내가 입선을 받은 것이다. 두툼한 상장케이스에 고이 모셔진 상장 안에는 또렷이 내 이름 석 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상장을 펴 놓고 한동안 내 이름과 ‘입선’이라는 상 이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날 가족 누구에게도 내가 글쓰기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나노 크기의 용기를 얻어서였을까? 한 잡지사의 에세이 공모전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대단한 소재는 아니었다. 매일 회사로 출퇴근하면서 마주쳤던 나의 일상을 글로 적었다. 새벽까지 수차례 퇴고를 하며 작성한 글을 마지막으로 훑었다. 공모전 지원 창을 열고 최종 파일을 첨부했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보내기’ 버튼을 클릭했다.
발표 날이 다가올 때까지 나의 머릿속은 온통 핑크빛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술술 써 내려간 글이었다. 내가 썼지만 너무 잘 썼다고 스스로에게 감동하며 똑같은 글을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대상은 아니어도 장려상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장담했다. 심지어 상을 받으면 뭐라고 소감을 말해야 할지 구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김칫국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하루가 10년처럼 시간은 더디게 지났다.
수상자를 발표하는 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컴퓨터를 켰다. 수상자 명단을 찾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두 번 세 번 꼼꼼하게 명단을 확인했지만 내 이름은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채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가슴 저 밑에서는 ‘왜?’라는 질문만 터져 나오고 있었다. 대상을 받은 작품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소재로 어떻게 썼는지 그래서 나의 실력이 어떻게 부족한지도 낱낱이 알고 싶었다.
대상의 작품은 시아버지를 오랫동안 모시고 살아오면서 그분의 마지막을 함께한 며느리의 이야기였다. 글 안에는 당시의 상황과 저자의 감정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그리움 등이 담백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깨끗하게 인정했다. 부족한 나의 경험과 깊이 없는 성찰에 대해 반성했다. 앞으로 내가 글을 쓴다면 그것은 객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노트북을 끄고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여보세요, OOO 선생님 되시나요?”
잡지사였다. 대상 발표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의 노트북은 먼지만 쌓여갔고 글쓰기에 대한 모든 관심과 열정이 식어있는 상태였다. 잡지사에서는 나의 글을 다음 호에 싣고 싶다고 했다. 나의 귀를 의심했다.
“물론이죠!”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 글이 잡지에 실린다고? 오! 주여!
몇 주 뒤 새로 나온 잡지 한 권과 소정의 상품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보자마자 잡지를 펴고 나의 글을 찾았다. 내 이름 석 자와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쓴 글이 최소한 잡지에 실릴 정도의 수준은 된다는 것에 작은 용기를 한 번 더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난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나의 깨달음을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해. 10년 전 질문을 아들이 다시 해준다면 이제 난 대답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우여곡절을 겪을지 모르지만 자판을 두드릴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초등학생 아들의 짧은 질문 덕분에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을 얻게 되었다. 배움을 얻는 데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상관없다.
‘아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