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보러 가는 길

by 신이나

5시 반.

알람 소리가 울렸다. 사실 새벽 3시부터 난 깨어있었고 눈만 감은 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씻어 둔 쌀을 압력 밥솥에 넣고 어제 끓여 놓은 배추 된장국을 데우면서 햄과 계란을 프라이팬에 부쳤다. 수십 개의 상품후기들을 눈알이 빠지도록 폭풍 검색해 한 달 전에 미리 사둔 보온도시락을 꺼냈다. 맨 아래 국통부터 순서대로 밥과 반찬들을 넣었다. 평상시 먹던 반찬으로 준비해야 별 탈 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주위의 조언을 참고해 아들이 선택한 반찬들이다.


6시.

아들을 깨웠다. 평소 같으면 일어나라는 소리에 시체 놀이하듯 꿈쩍도 하지 않을 녀석인데 오늘만큼은 천근만근 같은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순순히 일어났다. 아들이 씻는 동안 나는 누룽지를 끓였다. 따뜻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아침을 먹이고 싶었다.


6시 반.

마지막으로 꿀물을 탄 보온병을 가방에 넣고 아들과 난 집을 나섰다. 일기예보에선 그리 춥지 않다고 했는데 기분 탓인가? 불어오는 바람이 옷 깃 사이로 매섭게 치고 들어왔다. 지하철을 타면서 내려야 할 역을 확인하고 시험 보는 학교까지 최단거리로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찾느라 나는 조용히 분주했다. 아들은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그런 나를 바라봤다.


“빨리 가면 7시 반 전에 도착하겠다.”

“…….”

“배 아프면 꿀물 마셔라.”

“응”


7시 반.

시험 보는 학교의 정문 앞에는 방금 도착한 수험생 차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옆으로 경찰관 두 명과 차량 안내를 하는 아저씨 두 분이 분주히 손짓하며 정차된 차가 나가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듯 한 고3 남학생들이 차에서 내려 커다란 가방을 들고 하나 둘 교문 안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갈게.”

“그래. 시험 잘 봐.”


아들은 두 손을 패딩 주머니 안으로 깊게 찔러 넣고 저벅저벅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목을 빼고 녀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봤다. 교문 안 모퉁이를 막 돌려던 녀석은 잠깐 뒤로 휙 돌아 나를 쳐다보고 빠르게 사라졌다.


지난 12년 동안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영사기를 돌리듯 흘러갔다. 얼떨결에 회장이 됐다며 일하는 엄마에게 미안해했던 초등생 아들. 반에서 유일하게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에 화산을 삼킨 듯 불을 뿜었던 중학생 아들. 담배 공급 책으로 신고되어 엄마에게 경찰서를 구경시켜준 위대하신 고등학생 아들. 이제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겉모습은 성인처럼 보이는 19살 털북숭이 아들이 대학입시를 위해 수능 시험장에 들어갔다. 오늘로서 아들에 대한 나의 책임은 일단락되었다.


아들을 데려다 주고도 여전히 길은 어둑어둑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지하철을 향해 걸었다. 집에 가면 아침밥을 먹고 아들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길 건너편으로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으로 걸어가는 학생들이 여럿 보였다. 저 녀석들도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지. 저 녀석들의 부모님들도 공부시키느라 힘드셨을 거야. 그나저나 녀석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자리는 잘 찾아갔겠지. 시험 볼 때 배가 아프면 안 될 텐데. 실수로 컴퓨터 사인펜을 떨어뜨리진 않겠지. 밥이 모자라면 어쩌나. 물이 모자라도 큰일인데. 설마 답안지 마킹은 잘하겠지.


아니다. 그만 생각하자. 이제 모든 건 내 손을 떠났어. 됐어. 지난 19년 동안 난 최선을 다했어. 오늘 이후부터는 아들의 몫이야. 뭔 일이 생기든 알아서 하겠지. 암! 그렇고말고.


8시 반.

남은 누룽지를 데워서 후루룩 입 안으로 넣고 우물거렸다. 입술 위로 누룽지 국물이 흘렀다.


맞다! 휴지! 휴지를 못 챙겼다!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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