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목이 아파.”
2020년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송곳처럼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오른 까치집 머리를 부여잡고 목을 감싸 쥔 채 고등학생 아들은 방에서 나왔다.
“뭐? 언제부터?”
“새벽부터.”
나도 모르게 나의 오른손은 마스크를 찾았다. 한해의 마지막 날은 경건히 보내고 싶었다. 차 한 잔과 필기도구를 준비해 놓고, 지난 일 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동안 무슨 일을 했고 내년에는 어떤 계획들을 세워야 할지 반성과 목표를 동시에 해보는 그런 날 말이다.
“열은? 기침은 안 하니?”
“안 해. 근데 머리가 너무 아파서 토할 것 같아.”
코로나 확진 자가 하루 천명을 넘나들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3단계 같은 2.5단계였고 내가 일하는 대학교에서도 재택근무로 전환되어 있었다. 감염경로도 알 수 없는 확진 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고 하루 사망자도 두 자리 수로 급등해 있었다.
‘침작하자. 우선 열이 없으니 가까운 병원에 다녀오라고 시키고 나는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말하고 가까운 선별 진료소와 대기시간을 확인해 봐야겠다. 혹여 양성이 나온다면……. 아니다. 그건 결과를 보고 생각하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어.’
병원에서는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목과 관련된 증상은 진료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두통을 없애기 위한 진통제만 처방받은 아들은 경과를 보고 진전이 없다면 구청 보건소로 코로나 확진검사를 받아야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경과를 봐야겠지만 그래도 확진일 경우를 대비해서 아들은 집에서 자가 격리되어야 했다. 문제는 가족들의 자가 격리도 자동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아들의 방을 환기시키고 소독을 시작했다. 알코올 솜으로 집안에 있는 모든 문손잡이들을 닦았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아들의 옷과 욕실의 수건은 모두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했다. 욕실에는 비누를 두 가지로 준비하고 락스를 희석시켜 소독제를 만들었다. 주방의 식기는 모두 씻어서 뜨거운 물로 헹궜다.
2021년 1월 1일
여전히 목이 아픈 아들은 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로 갔다. 아들을 기다리는 내내 초조와 불안이 엄습해 왔다.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면 상관없지만 만에 하나 양성이라면? 우리 가족은 물론 가족들이 만났던 사람들, 내가 만났던 직장 내 사람들, 내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이 만났던 사람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내가 미칠 것 같았다.
아들은 보건소 의료진의 요구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30분 동안 걸어서 집으로 왔다. 방으로 들어간 아들은 잠이 들었는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결과가 나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우리 가족들은 하루 더 각자의 방에 격리되어야 했다.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껴야 했고 식사도 따로 했다.
새벽 2시쯤 아들이 주방으로 나오는 소리가 났다. 여러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나는 아들에게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나왔니?”
“배고파서.”
“식탁 위에 먹을 것 챙겨놨으니까 먹고 손 씻고 들어가라.”
“......”
“아픈 건?”
“괜찮아졌어.”
하루 종일 먹은 건 진통제밖에 없었으니 배가 고프긴 할 테지만 몸 상태가 좋아져서 허기가 졌을까? 엊그제 얇은 옷만 입고 농구를 했다고 했는데 그저 단순한 감기였을까?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했던 걸까? 아니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2021년 1월 2일 오전 9시 12분
아들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안 돼! 들어오지 마!”
“음성이래!”
“캡처해서 보내.”
평소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 나는 보건소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음성이라는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아들~ 밥 먹자!”
경건하게 보내고 싶었던 한해의 마지막 날은 날려버렸지만 새해 벽두부터 기쁜 소식과 함께 이틀 만에(이십 년도 더 된 것 같지만) 온 가족이 모여 경건하게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