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by 신이나

나날이 쌓여가는 일들로 사무실 책상 위는 전쟁터였다.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하나가 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가 곧 끝나겠구나.’ 예상할 때쯤 또 다른 두세 가지 일들이 밀어닥쳤다. 밥 먹는 시간도 챙길 수 없었고 정신 차려보면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하다 보니 하나씩 해내는 맛이 있었고 결과가 좋을수록 나의 경력은 탄탄히 쌓여갔다. 회사 내에서 나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참여해야 하는 미팅들도 늘어갔다.


“신, 본사에 다녀와야겠어.”


하루 종일 여러 프로젝트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사장은 본사에서 주최하는 교육에 다녀오라고 했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교육이라 내가 가는 것이 맞았다. 할 일이 많은데 일주일간 사무실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책상 달력을 보며 스케줄을 확인했다. 벌써 10월이었다.


‘하… 가을이었구나.’

본사는 벨기에 앤트워프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행기 스케줄을 최대한 타이트하게 잡으려다 때가 가을이라는 사실에 주말과 휴가를 사용해 며칠 더 머물기로 했다.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 예약된 호텔에 체크인했다. 짐을 정리하고도 여유시간이 있었다. 호텔 로비로 가서 ‘브루게(브뤼헤)’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본사 직원이 한국에 왔을 때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종종 물어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브루게를 추천하면서 마을 경관이 좋고 운하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브루게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창문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좋았다. 초록으로 펼쳐진 들판도 좋았고 길 따라 줄 서있는 오래된 나무들도 좋았다. 가끔 보이는 젖소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늦은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몇 점이 동동 떠 있었으며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렸다.

브루게에 도착한 뒤 기차역을 빠져나와 길을 걸었다. 풍차가 있는 마을 끝 언덕을 목적지로 마을 안으로 걸어갔다. 마을은 기대 이상으로 예뻤다. ‘예쁘다’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은 높지 않았고 서로 붙어있었으며, 건물 외벽은 오래되어 낡아 보였지만 기품이 있었다. 주말인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치 마을 전체를 나 혼자 전세 내어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댔다. 찍은 사진들은 앵글의 좋고 나쁨을 떠나 모두 컴퓨터 배경화면처럼 작품이었다.


작은 바닥돌들을 깔아 만든 골목길은 울퉁불퉁해 발바닥으로 돌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길에는 좀처럼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자동차 경적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한적한 골목길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운하가 보였다. 잔잔한 물 위로 작은 배들이 떠 있었고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즐거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사진 찍는 것을 보니 여행 온 사람들 같았다. 주말에 소파에 붙어 리모컨을 돌리거나 침대에서 뒹굴 거렸던 나로서는 운하에서 보트를 타며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 낯설었다. 한껏 멋 부린 모양새도 아니었다. 평범하고 수수한 옷차림에 들떠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여유가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불었다. 얇은 겉옷만 걸치고 나온 터라 한기가 느껴졌다. 광장으로 나오니 스카프를 판매하는 행상이 보였다. 한국의 행상 같지 않게 그는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사든 말든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알록달록하고 길이가 가장 긴 스카프를 하나 사 목에 둘렀다. 목덜미가 따뜻해지면서 마을 끝 풍차가 있는 곳까지 여유 있게 걸어갈 수 있었다. 길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고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은 차를 마시다가 신문을 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가로이 바라보며 인사말을 건넸다. 내가 카페에서 주로 하던 일들, 급한 일로 사람을 만나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시켜놓고 컴퓨터에 머리를 박고 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풍차가 보였다. 넓은 들판과 언덕이 있었고 그 위에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은 없었다. 늦은 오후였고 바람은 찼다. 나는 벤치에 앉아 풍차를 바라보았다. 산업용 풍차가 아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뻔한 예쁜 풍차였다. 평소 이 시간쯤이면 나는 막히는 도로를 뚫고 마트로 가서 일주일 치 식료품을 허겁지겁 구매해 냉장고를 채우고 있거나, 산더미같이 쌓인 빨래를 세탁기로 해치우며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침대나 소파에 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런 곳에 와있다니. 나는 한 동안 풍차를 바라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시간에 쫓겨 김밥과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삶이었다. 이제는 모양만 봐도 어느 분식집의 김밥인지 어느 빵집의 샌드위치인지 단번에 알아맞힐 수 있었다. 쪽잠으로 피곤을 겨우겨우 버텨내는 삶이었다. 사무실 각 층에서 조용히 짱 박혀 누울 수 있는 위치별 시간대별 명당자리를 나는 알고 있었다. 어린 아들의 얼굴을 보며 유치원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얘기를 듣는 다정한 엄마 대신, 제발 9시 전에 아들이 잠이 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짠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어느 작가가 말했듯이 여행은 감각을 왜곡시키고 그 감각에 열광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순간 적극적으로 왜곡되고 싶었고, 이곳에서 느낀 나의 감정에 최대한 열광하고 싶었다.


브루게 여행 후 10여 년이 흘렀다.


나는 삼시 세 끼를 누구보다 잘 챙기고 있다. 인스턴트로 한 끼 때우는 저급한 식사는 이제 하지 않는다. 비타민과 단백질이 골고루 들어간 품격 있는 식사를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최근에 나온 소설을 읽으며 새로 알게 된 단어들에 감탄하며 메모한다. 일하면서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능력 있는 다른 선생님에게 양보한다. 퇴근 후 멍하니 TV를 보는 대신, 공원에 위치한 축구장 트랙을 달리며 땀을 흘린다. 지난 주말 시골에 갔을 땐 논에 있는 벼들이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고 있었다. 이번 주말엔 시골에 가서 빨갛게 익은 사과를 수확할 예정이다.


나는 가을을 느끼며 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 주셔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