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원숭이

by 신이나

“여보세요. OOO 어머니시죠? 여기 광진 경찰서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아들은 담배를 피웠다. 물론 고3이 된 지금까지도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자신은 담배를 끊었다고 당당히 말하지만, 말할 때마다 입에서 풀풀 풍겨 나오는 찌든 담배냄새를 나는 맡아야 했다. 담배냄새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고 녀석은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다 큰 녀석을 때릴 수도, 어를 수도 없어 지금까지 모르는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결국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아들은 친구의 부탁으로 작은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구입해 주었다. 그 친구는 흡연을 하다 현행범으로 경찰에 잡혔고 그의 자백으로 담배 공급책이 된 아들은 경찰에 신고되었다. 수사관은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한 상인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영업정지를 시키기 위해 아들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서로 가는 날, 실로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그동안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정신없이 등교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나도 출근했으며 한밤중이 다되어 귀가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니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걷는 것이 예전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경찰서로 담배 공급책을 모시고 가는 길이라 내 기분도 좋지 않았다. 대화 없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우리는 서로 놀랐다. 너무 커버린 아들과 너무 늙어버린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엄마, 흰머리가 왜 이렇게 많아? 헐, 여긴 너무 많은데? 할머니 같아!”


40대로 들어서면서 하나 둘 생겼던 새치가 이제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흰머리가 늘어날수록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저기 아파오는 관절과 어제와 오늘이 확연히 달라지는 체력으로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하지만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또는 젊어 보이려 염색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미용실을 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싫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내가 나는 좋았다. 주변 사람들이 염색을 해보라고 수만 번 추천해도 극구 사양하며 나의 흰머리를 지킨 이유였다.


그랬던 나였는데, 담배 공급책의 한마디가 그날 밤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할머니 같아!’


미용실로 갔다. 내 머리 색과 같은 색으로 염색을 부탁했다. 미용사가 염색약을 섞어 능숙하게 머리에 바르는 것을 보며 나는 흰머리에 대한 나의 낭만을 모두 놓아 버렸다. 성숙해지는 자연스러움, 나이에 맞게 변해가는 모습, 경륜이 묻어나는 우아한 흰머리. 안녕.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잠시 한눈을 판 순간, 내 거울 앞에는 사람이 아닌 짐승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원숭이였다. 미용사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릿속 피부까지 염색약을 덕지덕지 발라댔다. 앞머리를 향해 염색이 진행될 때는 짙은 검은색 염색약이 나의 이마를 향해 돌진하며 조금씩 잠식해 갔다. 염색이 진행될수록 나의 머리통 굴곡은 비참할 만큼 여실히 드러났고 좁아진 이마를 가진 나는 인간에서 짐승으로 변해갔다. 거울 속 생명체는 정글에서 갓 잡아온, 성별을 알 수 없는, 전 세계에서 아니 온 우주에서 가장 못생긴 원숭이 한 마리의 모습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 저건 뭐야?”

“아줌마 염색하시는 거야.”


내 옆자리에서 머리를 깎는 형을 기다리며 흘긋흘긋 쳐다보던 3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손가락으로 정확히 나를 지목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아이가 말한 ‘저건 뭐야’라는 말속엔 아이의 시선으로도 난 이미 사람이 아닌 사물이었다. 동생의 질문에 나에겐 관심도 없었던 아이의 형도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목을 앞으로 쭉 빼고 오랫동안 쳐다봤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난 미용실 원숭이가 되었다.


“이 걸 언제 또 해야 하나요?”

“두 달 지나고 오시면 돼요.”


담배 공급책의 한마디로 나의 흰머리를 포기하고 얻은 것은 젊음도 아름다움도 아닌 굴욕이었다. 이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시간을 두 달에 한 번씩, 일 년에 여섯 번이나 해야 한다. 젊어지기 위해 치러야 할 것은 부지런함과 수고스러움이 아니었다. 원숭이 체험이었다.


미용실을 나오며 7월 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간신히 돌아온 난 긴 한숨과 함께 하늘을 쳐다봤다. 꾸물꾸물한 하늘이 곧 비라도 내릴 태세였다. 내 마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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