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사랑한 아이

숨을 배우던 계절

by 이랑

열한 살의 가을, 기적이 되기까지

지금도 무서운 병마와 싸우고 있을 아이들,
그리고 매일 눈물로 아이를 지켜내고 계실 부모님들께.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는 나의 기적 같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가을을 사랑한 아이
- 숨을 배우던 계절




나는 가을에 태어났다.
그래서 가을이 좋았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옷 갈아 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그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동요는 〈노을〉이었다.

사람들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말한다.
아기 때부터 책에 빠져 밤을 잊었던 나는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그 계절을,
아마 그 누구보다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내가 숨 쉬는 법을 배운 계절.
그리고
숨을 잃을 뻔한 계절.

.

어려서부터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였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고,
타고난 손재주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걸 즐겨했다.

어른들은 늘 나를 두고
밝고 명랑한 아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생기가 넘치는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유치원 때부터
선생님은 우리 엄마에게
나에 대한 칭찬을 자주 하셨다.
처음 ‘장래희망’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을 때,
유치원 선생님이 너무 좋았던 나는
커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줄곧 반장 선거에서 반장이 되었다.
반 환경구성도 도맡아 하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아이였다.
앞에 서서 무언가를 이끄는 일이 좋았고,
선생님들의 눈에 자주 띄는 아이였다.

그 시절엔 초등학교에도 시험이 있었는데,
시험이 끝나면 선생님 곁에 남아
채점을 도왔던 기억도 난다.

글짓기 대회, 미술대회, 합창대회 등
학교에서 하는 각종 대회는 나의 무대가 되었고,
심심치 않게 상을 받아오곤 했다.

심한 열감기에 시달려
열이 펄펄 나는 날에도
‘개근상’을 놓치기 싫다는 마음 하나로,
반장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학교에 갔었다.

그만큼 나는 욕심도 많았고,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큰딸이었다.

그때의 나는,
열한 살이었다.

엄마가 이따금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다.

아기였던 내가
열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
그때마다 엄마의 심장도
함께 달아올랐다고.

그 긴 밤들을
엄마는 오로지 혼자서
건뎌내야 했다고.

.

1998년,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어김없이 그해에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 나를 불러
숨 쉬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그 계절이,
내가 숨을 잃을 뻔한
계절이 되리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에 이어집니다.
당신의 밤이 식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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