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삼키던 손
열한 살의 가을, 기적이 되기까지
두 번째 이야기
무너진 엄마
- 울음을 삼키던 손
며칠째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열제를 아무리 먹어도
열은 좀처럼 내려갈 줄 몰랐다.
그럼에도 학교에 갔다.
반장을 맡고 있었고,
각종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책임감이 유난히 강한 아이였다.
욕심이 과했던 탓일까.
몸은 끝내 버텨내지 못했다.
그때 내가 살던 곳은
의료 환경이 아주 열악한
충남 당진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실신 상태에 이르러
동네 의원에 입원했고,
그곳에서 받은 첫 진단은
‘식중독’이었다.
아마도 계속된 발열과 구토,
몸 곳곳에서 발견된
붉은 반점들을 보고
내린 진단이었을 것이다.
하룻밤을 지켜본 의사 선생님은
상태가 심상치 않다며
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했다.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한 엄마는
나를 대학병원으로 전원시켰다.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끝없이 피를 뽑고,
수많은 검사가 이어졌다.
해열주사 앞에서도
내 열은 고집을 부렸다.
생기 넘치던 열한 살 소녀의
평범했던 일상은
그때부터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멈추기 시작했다.
.
대학병원에서 처음 들은 의심 소견은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이었다.
온몸이 퉁퉁 부었고,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관절마다 통증이 따랐다.
결국 나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지만 증상은 어딘가 애매했고,
담당 의사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 두 눈 흰자는 토끼 눈처럼 충혈되었고,
혀는 딸기처럼 빨개져 혓바늘이 도드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당시
18kg이었을 만큼 말랐던 나는
아프다는 이유 하나로 더 앙상해져만 갔다.
매일 새벽이면 피를 뽑으러 왔고,
엄마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 갔다.
나중에 엄마는 말했다.
그렇게 마른 몸에서
어떻게 계속 피가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고.
계속된 검사가 이어지던 어느 날,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호흡이 가빠졌고,
옷이 들썩일 정도로 심장이 요동쳤다.
의료진은 급히 심장 초음파를 진행했다.
초음파가 진행되는 동안
검사실의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교수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께 나를 부탁하셨고,
검사실에는 엄마만 남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엄마가 나왔다.
병실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도 멀었던가
내 휠체어를 밀어주는 엄마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그야말로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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