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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굴작가 Nov 29. 2020

전 부치는 건 그렇게 싫더니

나쁜 며느리, 착한 딸입니다


오늘은 친정엄마가 김장하는 날이었다.


결혼 4년 차, 처음으로 김장하는 날에 엄마를 도우러 갔다. 사실 김장을 도우려는 목적보다는 남편이 갓 담근 김장김치에 수육이 너무 땡긴다며 가자고 나를 졸랐다. 이런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토요일 밤 한 손엔 수육용 삼겹살을, 다른 손엔 조카 줄 요플레와 과자들을 들고 친정집에 방문했다.

언니는 형부와 주말부부로, 친정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 그리고 3살 난 귀여운 조카와 함께 살고 있다. 주말마다 형부가 올라오는데 이번 주말엔 우리 부부까지 가자 좁은 집이 꽉 찼다. 9시쯤 되어 친정 집에 도착해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조카는 "이모다~~!!"를 외치며 방방 위에서 뛰듯이 점프하며 신나서 우리를 반긴다. 본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이는 어느새 또 달라져 있다. 눈빛이 더 또랑 해지고, 얼굴도 좀 변한 것 같고, 어휘력은 그새 또 늘었다.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조카를 안아주고, 손에 든 어린이용 요플레를 들려주었다. 남편엄마에게 5kg 삼겹살을 들려주자, 엄마는 "뭐 이렇게 많이 사 왔어~." 하며 손을 내젓지만 표정은 만족감이 그득하시다.


과일을 먹으며 사이좋게 안부를 묻고는 각자 방으로 가서 잤다. 오늘이 진짜 김장 day. 아빠와 엄마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무채를 썰고 본격 김장할 준비를 하셨다. 나는 9시쯤 일어났는데 엄마는 이미 거실의 한가운데에 이미 모든 세팅을 마친 채 김치에 속을 넣고 계셨다. 요즘은 고무대야가 아니라 김장용 매트가 따로 있구나. 신기해하며 나도 돕겠다고 김장용 긴 비닐장갑을 끼고, 머리카락이 떨어질까 머리를 질끈 묶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엄마는 너는 속을 너무 많이 넣는다며 핀잔을 주고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적당히 김치 속 넣는 방법을 보여준다. 김장 경력 30년.. 역시 손놀림이 다르다. 조금 있다가 언니가 부스스한 얼굴로 거실로 나와 비닐장갑을 찾는다. 우리 세 모녀는 그렇게 둥글게 모여 앉아 김장에 집중했다.


처음에만 김장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엄마에게 배우고는 이내 익숙해지자 곧 우리는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언니의 꼰대 상사 이야기, 내가 최근 부서를 옮긴 이야기, 조카의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쟁, 아빠는 왜 코로나로 난리통에 마라톤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뒷담화, 동생이 최근 집을 셀프 리모델링한 이야기에서,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까지 모든 주제를 훑었다. 나는 조카를 보기 위해 격주로 친정 집에 오는데 막상 언니와 둘이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기에 이렇게 못다 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치 농사짓고 새참 먹는 아낙네들처럼 엄마와 언니와 나는 그렇게 2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오, 이거 좋은데? 김장이라는 구실로 이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매년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근데 이건 마치 명절에 전 부치는 모습에서 전을 김치로만 바꾼 모양새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부치는 건 그렇게 싫더니, 김장은 왜 매년 하고 싶어 지는 걸까.




결혼하고 처음 명절에 내려갔을 때, 시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은근슬쩍 "큰집에 전 부치러 갈래?"라고 물어보셨다. 그 당시의 느낌은 마치 영화 신세계에서 최민식이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며  황정민이 속한 조직잠입 수사를 하라고 이정재를 꾀는 것 같았다. 명절 전날에 시어머니는 왕복 3시간을 운전해 큰집으로 가셔서 온종일 전을 부치시고 돌아오신 후, 다음 날에는 또 새벽같이 제사를 지내러 그곳에 가신다. 그걸 이제 나와 함께...?

시월드, 그 신세계


나는 큰집이라는 조직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가 않았다.

거절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제안을, 못된 며느리인 나는 남편에게 눈길을 돌리며 대답을 회피했고 고맙게도 남편은 나 대신 싫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도 두 번 정도 어머니는 아주 젠틀하게 의사를 물으셨고, 나는 머쓱하게 웃고는 남편을 쳐다보았고, 남편은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No라고 대답했다.


왜 여자에게만 명절 노동을 당연시하며, 굳이 잘 먹지도 않는 "전"이어야 하는가?

결혼함과 동시에,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내 정체성은 혼란스러워졌다. 남편과 똑같은 대기업 대리. 잘난 것도 없지만 꿀릴 것도 없는 동등한 입장. 엄마는 나에게 설거지 한 번 시키신 적 없고, 내가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계란 후라이 밖에 없다. 근데 시댁에 가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왠지 음식 준비를 거들고, 설거지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남의 집 손님이 아닌 남의 집 언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은 왜 드는 거지??? 마치 누구나 나에게 그 역할을 다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 그 압박감. 나는 대대로 이어진 '며느리에 대한 이 기대 심리'를 내 대에서 끊어버리고 싶었다. 후손들을 위해? 내 자식들을 위해? 아니다. 그냥 나를 위해.


그렇게 나는 그냥 사랑받지 않는 며느리가 되기로 했고 그렇게 살고 있다.

전을 부치는 행위 자체도 구시대적이라고 치부했다. 엄마가 종종 마트에서 도라지를 사 와 손톱에 흙 껴가며 손질하는 걸 보면서는, 깐 도라지를 사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했다. 그런데 오늘 김장을 하면서 음식을 손질하고 몇 시간을 거쳐 서로 도우며 30포기를 완성하고 나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른들이 말하는 "정성", 그리고 같이하는 시간 속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의 소중함을.


어깻죽지가 뻐근하고, 목 뒤가 묵직한 것이 2시간 김장했다고 몸이 티를 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오랜만에 나눈 대화 때문에 나는 또 내년 김장하러 올 것 같다. 김장을 마친 후에 식탁에는 삼겹살 수육을 중심으로 김장김치, 무채, 총각김치까지 김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아빠, 엄마, 언니, 형부, 조카, 남동생, 나와 남편까지 8명은 오랜만에 큰 상을 펼치고 배 터지게 김치 파티를 즐겼다.

마치 명절 같았다. 내가 생각하던 그 명절. 가족이 모여 서로가 먹을 음식을, 서로 도와가며 만들고, 풍족하 먹고 이야기하고 즐기는 것.


내가 조카만 했을 때 명절은 참 즐거웠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명절은 나에게 맘 편히 먹고 쉬고 여행 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결혼한 이후로부터는 더는 즐거운 날이 아니었다. 누가 지웠는지 모를 "의무'를 다해야 하는 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느낀 점은 이렇게 "자발적으로"도 우리가 어렸을 때 느꼈던, 가족에 느껴지는 명절 느낌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김장하러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육을 먹기 위해 제 발로 찾아왔고, 내 의지로 엄마를 도왔고, 내가 일조한 음식을 양껏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내가 바라는 명절의 모습이다.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말고, 원하는 것을 얻어갈 수 있고, 편안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것. 신기하게도 의무감을 빼니 내가 사랑하던 명절 느낌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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