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흠애하는 모 선생님 글에 댓글로 달다가 지우고 며칠이 지나 좀 전에 퇴근 설거지 하는 중에 생각이 나서 끄적이는 메모.
최근에 대구에선 시국미사가 열렸다. 천주교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동성로 거리로 나오셔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을 중심으로 한 생명평화의 문제와 이 타락한 율사 통치의 비민주성을 지적하셨다. 대개 우리 현대사에서 사제들이 거리의 정치에 나서는 것은 이른바 선수들이 나오는 것과 다른 무게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강권 통치 속에서 사회가 경직 되고 쪼그라들었을때 혹은 인혁이나 광주, 박종철 고문치사 같이 너무나도 다급하고 긴급한 상황일때, 혹은 범 사회적인 광의의 동의가 확산 될때 사제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았나.
그들의 말이 발디딤이 무게를 가졌던 것은 그들이 본시 세속의 이해와 논리 바깥에 놓여 있는 이들이라는 우리 사회의 관념 때문일 것이다. 세속에 초연한 승려들이 죽창과 낫을 들고 승병으로 나설때의 충격이란걸 생각해보면 좀 더 쉽게 그 무게가 다가오는것 같다. 그런데 이번 대구에서, 좀 더 나가면 근래의 시국 미사. 난 잘 모르겠다. 맞는 말인데 왜인지 거기에는 한국 현대사에서 사제들이 나서는 것으로 재현되던 그 힘이, 그 무게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상술하였듯이 매우 무능하고 후안무치한 율사 권력이다. 저명한 모 정치철학 교수님은 이래 말씀하셨다 한다. '법은 늘 느려', 법의 속성일수도 율사의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그 뒤처진 이들이 권력을 잡자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행정 전반은 단박에 2,30년은 후퇴해버렸다. 이태원에서 잼버리에 이르는 모든 순간 순간에 역사가 비록 저 못난 자들이 권력을 잡아도 조금은 나아질거란 기대를 박탈하는 연속이었다.
그런데 지금이 사제들이 거리로 나서야 할 정도의 헌정의 위기 상황인가. 아마 시국 미사를 찬미하는 이들과 나 사이의 건너기 힘든 거리감은 여기서 나올 것이다. 많은 이들이 윤석열을 탄핵해야 한다 말한다. 탄핵, 되면 좋다. 그런데 우린 이미 그저 탄핵 되고 이른바 광의의 우리가 집권하는 것만으론 불충분함을 지난 6,7년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윤석열이 박근혜 만큼 명백하게 공화국에 대한 배임을 했느냐, 윤석열이 박근혜 만큼 공적 권력을 전용했는가 등등 하나하나 따져 봤을때 윤석열의 저 후안무치하고 유치찬란한 통치란 것이 그 수준의 황당함과 별개로 헌정 중지와 탄핵이라는 비상상황을 요구로 하는 것인지.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이는 이른바 우리의 대표선수 민주당이 정상적이고 일반적 절차와 과정으로 집권하는 경험을 축적해야한다는 지론의 문제만 아니라 작금의 상황에 대한 온도 차이다. 윤석열 씹기 경연대회를 한다면 전국구는 몰라도 어디가서 지지 않을거라 확신한다. 그런데 탄핵이란 말은 공감하기 힘들다. 이제 만 1년 반이 지났다. 중간 심판의 기회인 총선도 남아 있고, 지방선거도 남아있다. 왜 사제들이, 우리들은 그런 정치 일정과 사회적 절차 속에서 기본적인 노력을 쌓아가기 보다 단박에 해결하는걸 선호하게 된 것일까. 좋게 말하면 절박함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조급함이다.
여튼 사제들이 거리로 나서 선도적인 투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탄핵이 붙어야 할 상황인가. 하 나도 맘과 머리가 분열한다. 탄핵이란 열망에 쉬이 불이 붙지 않는것은, 민주계 정당과 시민사회의 준비와 역량 문제에 더불어 이런 때와 형세에 대한 인식이 생각보다 넓다는 방증 아닐까. 하 55분 차 타려 했는데 51분이다. 오늘도 막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