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부산 화명동 극장&서점 ‘무사이’에서 존경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동근 선생님이 그간 해오신 영상 작업들이 하나로 엮여서 상영되는 자리가 있었다. 선생님의 작업은 주되게 사진을 중심으로 해오셨지만, 이동근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세월호 추모 행사 당시 아리랑 예술단의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영상의 필요성을 절감하시고 이후로 영상 작업들을 병행해오셨다.
내가 처음 본 선생님의 영상 작업은 2019년 일우스페이스에 열린 선생님의 <아리랑 예술단> 전의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가 처음이었다. 이후 선생님의 작업실에 걸린 필름들을 보았고, 선생님께서 영상/영화를 해보고자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24년 ‘요새사령부, 낡은 집으로 가는 길’전의 영상작업에 이르는 과정이 내가 아는 선생님의 영상 적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가운데 19년에 작업하신 ‘이사가는 갈’까지 볼 수 있었다.
아래는 상영 이후 이동근 선생님과 부산시립의 조은비 학예사님 간에 진행된 토크 과정에서 내가 한 메모들을 바탕으로 한 단상이다.
첫째, 예전에 이동근 선생님의 작업에 대해 내 의견을 적으면서도 이야기 했지만 선생님의 작업은 방법론적으로 인류학자들의 그것에 깊이 닿아있다. 자신이 연구하는 지역에 들어가 생활과 습속을 살피고 목소리와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담는 필드워크(Filed Work)의 모습을 선생님에게서 보곤 한다. 결혼이주여성에 관한 작업을 하기 위해 긴 시간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글학교에서 소사로 자원봉사를 하며 신뢰를 쌓고 또 한글학교 교사로 당사자들과 함께한 시간, 탈북 여성 예술단 다큐 작업을 위해 십 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그들의 삶과 동행하고 같이 웃고 같이 우는 시간, 당사자들에게 편히 ‘오빠’라며 전화 오는 그 시간은 대개 다큐멘터리가 지향하는 대상과의 거리감과는 다른 유형임을 보여준다. 단지 호감을 얻고 작업의 편의성을 위한 환대와는 다른 동참의 의미가 선생님의 현장성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스스로를 그저 “이야기하며 놀고” 한다며 겸손해하시지만, 선생님 작업의 힘은 주변화되고 비가시화된 하위 주체들의 삶에 동참하며 만들어진 현장성에, 그 목소리의 재현에 있지 않나 싶다. 관조(觀照)에선 볼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
둘째, 선생님의 작품은 선생님 스스로는 그저 사람을 찍는다 하시지만 권력과 몫 없는 이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으시다. 촌스럽고 과한 색조 화장과 성적인 옷을 입고 과장 된 창법으로 이른바 이북식 노래를 부르는 통일의 마중물들의 모습, 우리가 초청하였지만 우리에게 동료 시민이 아닌 초대 된 이방인 결혼이주 여성, 분단과 전쟁의 피해자인 민통선 안 주민들의 상처 받은 몸과 얼굴, 국가폭력과 분단의 억압에 일생 중 40년이 넘는 시간을 빼앗긴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선생님의 주름, 제국주의와 분단에 이어 자본주의 성장 논리에 또 다시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가덕도 외양포 주민들의 목소리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 할 수 없는 비가시화된 이들의 고통을 선생님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 알아버린 이상 모르던 때처럼 살 수 없는게 인간이다. 애써 외면할 순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모르던때처럼 살아갈 수 없는게 인간이다. 선생님은 그들에 대해 어떤 적극적 규정도 하지 않으신다. 특유의 거리감 속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원근법으로 그들을 우리 현실 안에 들이 밀고 계실 뿐이다.(고진의 원근법이란 표현은 어제 함게한 영화평론가 조재휘 선생의 것이다) 누군가는 선생님의 작업을 신파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위악이 위선 보다 좋게 평가되는 세태가 나은 이상한 평가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처절한 현실을 마주하는데 그들의 고통을 담고 재현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신파적일 수밖에 없다.
난 예술을 평론하는 비평가도 아니고, 한때 운동권 변두리에서 놀던 그냥 잡학자 나부랭이다.(대문자 사회과학자는 아닌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선생님 작업이 좋다. 아 작업하시는 선생님도 너무 좋다.(흠 이것은 러브레터인가..?) 화려한 동부산을 내게 안온함으로 느끼게 하는 선생님의 말씀과 환대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선생님께 가지는 맘엔 존경심이 빠지지 않는다. 지금은 다행히(!!!) 연료탱크가 고장나 폐차된 선생님의 검은색 베라크루즈는 운행 거리가 40만 킬로가 넘었다. 지구와 달의 평균 거리가 38만 킬로미터 정도인 걸 참작하면 엄청난 거리다. 5만 킬로면 많이 탔다고 차를 바꾸는 세태에 선생님은 40만은 타야 차가 질이 든다며 하신다. 무엇이 선생님을 움직이시게 하는 것일까. 동시에 돌아가신 서경식 선생님이 하신 말과 글들이 하던 그런 역할들을 이동근 선생님이 사진으로 하고 계신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선생님의 시선을 경유하여 유럽을 보았다는 24년 8월 성공회대 학술회의에서 영민햄의 말씀을 고쳐 말하면 우린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보기 힘든 세계들을, 사람들을 서경식 선생님의 시선과 만남을 통해 마주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동근 선생님의 작업은 우리에게 가덕도를, 펀치볼 주민들을, 탈북 여성 예술단원들을, 결혼이주여성들을 드러내고 계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알고 난 후는 모를때와 같을 수 없다. 선생님의 다음 전시는 대구에서 한국전 민간인 학살에 관한 전시라 하신다.
* 한 십년 전 영민햄, 민규형, 영선이와 함께 매체에 대해 몇시간에 걸쳐 한 대화가 있었는데 어제 부터 매체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사고의 흐름과 형태는 매체에 영향을 받는다.
* 선생님에 대해선 몇 개의 단문이 있다. 그중에 갈무리 된건 아래 둘 정도...?
https://brunch.co.kr/@yiseehun/51
https://brunch.co.kr/@yiseehun/49
*글의 갈무리가 늦어서 그렇지 51번 글이 먼저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