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령작가의 츄억

21년 10월, 인사말 대필 빠구의 추억

by 이시훈

예전엔 종종 먹고살려공공기관장 인사말 유령작가 놀음을 하곤 한다.(그래봤자 지인들 부턱이라 얼마 안된다) 그 당시 분권이나 균형 발전 관련 행사 인사말로 썼다 원세대와 조려대가 과격하다 빠꾸 먹은건데 아쉬워 올려본다.


——

(전략)

원세대와 조려대를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원주에 있는 Y대와 세종 조치원에 있는 K대의 분교를 지칭하는 멸칭입니다. 같은 대학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분교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진짜와 가짜가 결정되고, 신분과 계급이 나뉩니다. 이 놀랍고도 참담한 이야길 들으며 생각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디에’라는 것입니다. 서울과 비서울의 관계란 그런 것 입니다. 똑같은 간판, 똑같은 옷, 똑같은 법과 제도 위에 있어도 우린 대등하지도 동등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라는 공간적 권력으로 기인하고 있음을 원세대와 조려대라는 멸칭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간은 권력이며, 어디에 있는지가 한 개인의 자존을 결정합니다.


오늘의 ——-에 힘든 시간 내어주산 존경하는 발제자 선생님을 위시한 많은 분들 앞에서, 무겁고 참담한 마음을 안고 다시 한번 과거 이뤄진 관습헌법이란 장벽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습헌법은 단지 서울이라는 권력과 부의 결정체를 지키고자 하는 것을 넘어 서울과 비서울 간의 관계에 대한 선언입니다. 서울은 충남의 화력발전소와 동해안의 원전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와 울산에서 여수에 이르는 중화학공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 호남이 만들어내는 풍요로운 농산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젊음에 의존해왔습니다. 하지만 이 관습헌법이라는 한 마디에 우리는 사실상 서울의 배후지이자, 서울에 필요하지만 위험하고 더럽고 부담스러운 것들을 떠안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의 연기와 경주의 방사능의 위험은 동등한 공화국의 국민으로써 공유되지 않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어디에”, 바로 그것입니다.

(후략)


10년도 전애 내가 서울과 지방의 관계가 제국과 식민의 관계로 흘러간다 할때 다들 날 과격파 취급 했다. 16,17년 무렵부터 공멸을 각오하고 물과 전기, 식량을 무기화해야 한다 할때 날 미친놈이라고 누가 캤었다. 그무렵부터 반포한강공원에 원전을 짓고 우면산에 싸드를 배치하자 했다. 그러고 현재는 어떤가. 지방의 청년은 삶의 희망을 잃은채 복건갱들이 주도하는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고 있고 수도권 공장 총량제가 무력화 된 결과 배터리도 반도체도 서울 동남부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화천댐 물을 둘러싼 갈등이 미래를 보여준다. 공멸의 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서울이 자칫 스스로가 호모 사피엔스 중 가장 뛰어나 번영한다 믿는 순간 비용논리로 지방은 유기 될 것이다. 로컬 어쩌구 같은 같짢은 낭만주의가 아니라 분배 구조를 둔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이게 되어야 통일 이후의 사회 통합의 전제가 성립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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