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의미

by 이시훈

말과 의미


종종 꽂히면 어떤 어휘의 의미를 혹은 그것이 지시하는 형태나 현상, 혹은 추상이 무엇인지. 혼자 놀이를 하듯 생각해보곤 한다. 우리가 쓰는 개념어 대부분은 한자어 혹은 라틴어로부터 유래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그 한자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들 사이에, 라틴어 안의 어원과 어두, 어미 속에 어쩌면 고대와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그것의 원형성 같은 게 있지 않나 생각해 보며 쫓아보는 일이다.


행복이란 단어를 고민하게 된 건 7월 초 어느 날의 고속도로 위였다. 우리 실존이 맞는 고난과 삶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끝에 난 그에게 행복이란 말을 했다. 고속철 역 앞에서 내리면서도 ‘행복하자’ 말했지만 그때 그 발화의 순간의 분명함과 별개로 난 내가 아는 그 말의 어감에 의지 했을 뿐 사실 그 말의 뜻은 몰랐던 것 같다는 찝찝함을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서 내내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대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부터 틈틈이 고중세 영어 사전, 옥편, 라틴어 사전 등을 뒤져보게 되었다.


행복이란 말의 출전을 열심히 찾아봤다. 이런 형태의 한자 어휘들은 많은 경우에 주역, 논어, 중용, 시경과 서경 같은 고대의 경전들을 그 출전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이 출전과 한자의 갑골문 원형을 통해 이 말을 쓴 이들이 어떤 의미와 개념으로 이를 썼는지 반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부족함의 소치인지 출전을 못 찾았다. 만약 근대 이후의 번역어가 아닐까 현재로선 그런 생각이 든다.(생각보다 많은 단어가 근대 번역의 산물이다)

그런데 위키 낱말 사전에서 한자로 행복을 쳤다가 이 단어를 한중일과 베트남이 공유하는 단어란걸 우연히 알았다. 근대에 나타난 번역어 보단 고대 갑골문에 담긴 어떤 인식, 개념, 원형성이 담긴 말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행복이란 한자를 파자해 보았다. 행(幸)은 다행, 요행 등 어떤 부작위로 이뤄지는 운이란 뜻을 지닌다. 흙 토에 양 양(이 양엔 상서로움의 의미도 있다.)은 전체적으로 상서로움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복(福)이다. 이 글자는 보일 시에 가득할 복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입과 밭 전이 이 복을 이루고 있다. 갑골문에 관한 자료들을 보니 가득하다는 말은 갑골문은 술잔이 넘치는 모양에서 연원 하는 모형이다. 동시에 가득할 복은 하나, 입, 밭 전. 아마 인간 삶의 물질적, 생물학적 조건의 충만 해 보임의 의미가 아닐까. 결국 합쳐보면 어떤 부작위로 얻은 충만해 보이는 상황이 행복일까?

이 운의 문제는 Happy란 단어의 어원에서도 확인된다. Happy는 Hap라는 중세 영어나 Happ라는 중세 노르딕어에서 공유되는 운, 기회, 운이 좋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운이 좋음이 형용사격이 Happy인 걸까?

라틴어 사전에서 행복을 검색하면 나오는 beatitúdo도 운 있는 태도나 복됨의 의미를 가지고, 그 어원이라 할 만한 bĕo는 가득하게 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나란히 라틴어 사전에서 행복을 검색하면 나오는 fortúna는 운의 의미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라틴에서 행복을 검색하면 나오는 felicitas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felix라는 이 말의 어원엔 결실을 맺다는 뜻이 있다. 아마도 어떤 생물학적, 물질적 충만함의 의미가 Felicitas에 내재되어 있어 보인다.


사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행복이 무엇인가 생성형 AI에 물어보면 알까? 절대자에게 여쭤보면 알까? 성인들에게 말을 걸어보면 그들은 알까? 여전히 분명히 A가 A다 분명히 말하긴 어렵다. 애매와 모호가 심안을 흔든다. 다만 돌이켜 보면 행복이란 말에는 운의 요소와 생물학적, 물질적 풍요로움의 의미가 함께 있는 것 같다. 행복은 우연히 만난 충만과 풍요의 상태일까? 일단 이것이 현재까지 말의 기원이 보여주는 답이 아닌가 한다. 적어도 내가 더듬어본 한자와 중세 영어, 라틴어 어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은 운과 물질을 지시하고 있다. 난 그의 운을 축원한 것일까, 그의 충만함을 기원한 것일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기원 어린 평범한 우애의 말 한마디가 계속 내 뒷덜미에 붙어 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말하지만 행복이란 의미를 담은 표현들의 기원들은 물질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 어원적 분석만으론 말의 의미를 내가 그에게 하고팠던 마음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우린 어쩌면 기표를 넘어서는 의미를 기표에 투영하고 부과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운과 충만을 넘어서는 의미는 무엇일까. 숙제다. 분명한 건, 난 네 삶에 평화외 충만을 빌어. 진심으로.


덧. 이 글을 보고 사랑하는 동료이자 스승이자 형인 철학연구자 권영민 선생님이 신약 성경의 마테복음 5장의 내용을 달아주셨다. 요칸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 등이 그 부분의 내용이다. 적어도 신약애서 복됨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마음과 영성의 선함, 내적인 평화의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한자 세계의 幸福과 영어권 세계의 happ, 라틴어 세계의 beatitúdo나 fortúna는 이 히브리어의 번역어 복과 어떻게 연결 될까. 그리고 역자들은 아느 히브리어를 어떤 이유와 맥락으로 복으로 번역했는가. 숙제다. 신앙이 없어 이쪽으론 무지하지만 언어학자들이 연구한 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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