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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훈 Jun 27. 2018

홍장표, 하승창 수석 경질을 보면서.

홍장표, 하승창 수석 경질을 보면서.

웃긴 이야기인데 내 휴대폰에 알람이 안뜬지가 좀 되었다. 언젠가 부터(아마 휴대폰의 저장 공간 잔량과 상관있다 여겨진다) 모든 종류의 알람들이 울리지 않는다. 유일하게 카톡, 전화, 문자, 아침에 깨워주는 모닝콜만 울린다. 덕분에 실시간 뉴스들을 따라가던 시간이 거대한 공백지가 되었다.

자연히 세상 돌아가는데 최첨단을 달리다가 갑자기 한 두시간 정도 늦은 시차를 살아가야만 한다. 김종필이 죽은것도 청와대 개편도.

사실 난 경제에 대해 별로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수리 경제, 미시 경제에 있어서는 거의 문맹을 면하지 못한다. 그래도 한국 자본주의 구조나 양식에 대한 여러 훌륭한 선생님들에 대한 귀동냥들 덕분에 서당개 풍월 외우는 시늉이나 하는 경알못이다.

그런데 나같은 미물이 보기에도 이번 홍장표 하승창 경질은 문책성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고, 더불어 이것이 어떤 이번 정부의 정책적 회귀의 변곡점 같은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사실 장하성 교수 정도의 사람이 정책실장이 되었을때 느낀 자괴감을 되돌여보면 이번 정부가 외교, 평화, 통일 문제와 정무적 문제에 대해 보여온 탁월함에 비해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면을 못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홍장표 교수님 등이 제창하는 소득주도 성장 모델에 대해 기대해왔고, 박원순으로 표상되는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의 운동의 선상에 있는 하승창 선생님이 청와대에 들어간것에 대해 많은 기대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 현재까지 문재인 정부가 일부 노동정책에서의 개선(과 수반된 개악) 이외에 노동 시장의 구조와 임금 체계 개편 등에 있어서 그다지 어떤 탁월함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나같은 문맹이 보기에도 소득주도 성장 모델은 마치 케인지언들의 승수효과에 대한 강조와 같은 궤에 있어 보인다. 특정한 매개를 통해 노동 소득이 상승하고 노동소득을 통한 분배구조가 개선 됨에 따라 상품 가격와 서비스 생산성 등이 오르고 이것이 다시 기업에게 절대적인 이윤 상승을 불러일으키는 이 포드주의적인 방법이 한국적인 외피를 입은것 같다. 나같은 문맹이 보기엔 그렇다.

그런데 재정정책, 통화 정책과 같이 국가 기구가 시장과 자본, 금융에 개입 할 수 있는 자원들은 이번 정부가 팽창적으로, 공격적으로 활용하는지는 미지수이다. 여전히 확장적 재정과 인플레는 나쁘다는 통화주의교의 교리가 작동하는걸까?

사실 그런 부분에서 대안이라고 나오는게 사회적 경제 부문의 역할 확대를 통한 고용의 증대(특히 청년 고용의 증대) 같은 것들이 모색 된것 같은데, 전통적으로 이 모델이 근거하는 대공장 제조업에 의해 대규모로 흡수되는 노동력 없이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라는 것이 무척 공허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지속적인 내 의문이었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란 것이 일견 무척 새로워 보이고 사회적 부와 가치 창출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 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경제 부문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는 사실 그다지 높지 못하고, 서비스와 소매 중심의 사회적 경제 내부 구조에서 창출되는 고용흡수력이란 유감스럽게 크게 높지 않아 보인다.

결국 난 홍장표 하승창의 실패가 부와 가치는 어디서 만들어 지는가에 대한 고전적인 물음과 관련있지 않을까 혼자 뇌내망상 해본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고용을 흡수하고,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제조업들이(요컨데 조선과 해운, 철강, 자동차 등등) 부진하고 몰락 하면 제 아무리 서비스 산업에서의 마케팅 기법과 기업 운영 방식의 혁신이 일어나도 전체 국민경제 계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이런 시각이 여전히 오스독스하고 조악한 내 맑스주의 경제학 베이스에서 도출되는 결론이기에 구멍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서비스 산업 중심의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혁신과 같은 구호에 대한 내 지긋지긋한 불신과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여튼 그런면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던 이들은 기각되었다. 자본과 노동 모두를 설득해내지도 못했고, 유감스럽게 그럴 만한 합의를 도출 하 룻 있는 내용도 전망도 보여주지 못했다. 다시 관료들이 그 자리에 돌아왔다. 이제는 어떻게 되는걸까? 김태동 교수님 경질 이후 들어온 강봉균을 보던 당시 사람들의 기분이 이와 비슷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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