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대개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줄줄이 투고가 이어진다. 이제 겨울만 되면 신춘문예를 생각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네 곳의 신문사에 원고를 보냈다. 물론 내 원고들은 본심에 가지 못하고 다 광탈했다.다행히 그 원고들은 다른 곳에서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신춘문예에 원고를 제출할 때 보통 봉투 겉면에 '신춘문예 ㅇㅇ부문 응모작'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뭔가 동네방네 광고하는 것 같아서 나는 항상 작품이 들어있는 봉투를 가방 안에 꽁꽁 숨겼다. 거의 첩보작전이었다.신춘문예도 또 하나의 오디션이니까. 합불을 들키기 싫다. 나는 주변에서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흔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러나 우체국 직원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꽤 많은 수의 경쟁자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의 요망.
이번에 다섯 개의 원고를 제출하면서 회사 옆 우체국 한 곳과 동네 우체국 한 곳을 이용했다. 우체국 구석에 있는 백 원짜리 대봉투를 꺼낸다. 집에서 미리 가져온 부드러운 필기감의 볼펜으로 겉면에 신문사 주소와 내 주소를 적는다. 이름 옆에 전화번호를 적으면 다음날 빠른 등기가 신문사에 잘 도착했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로 알려준다. 신문사마다 제출 양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우편을 보내기 전에 다시 한번원고를 확인하고내가 적은 주소를 공고문과 꼼꼼히 대조한다. 우체국을 나서는 순간부터 봉투 속에 들어있는 원고 두 개가 뒤바뀌는 영화 같은 일에 대한 상상이 시작된다. 역시 내 창작의 원천은 불안.
독립 출판을 하고 번아웃이 와서 한동안 글을 쓰기 힘들었다. 하나의 장이 끝난 것 같았고 이제 더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도 일 년간 쌓인 원고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11월 중순부터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껏 백일장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십 대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는 판타지 소설 장편 연재를 시도하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했다. 장편 집필은 현생을 포기해야 한다.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은 이년 전부터다. 처음 소설을 배울 때만 해도 신춘문예는 정말 먼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금도 신춘문예란 네 글자, 그 이름 자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인 것만 같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AOMG라는 연예기획사 계정에 올라온 한 영상을 보았다. 거기에 '소금 sogumm'이라는 가수가 나온다.영상은 이십 분 간 그녀가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를 찍은 것이다. 거기서 다른 한 사람은 래퍼다.
그동안 래퍼들이라고 하면 필 Feel에 따라서 내킬 때만 작업한다는 편견이 있었으나, AOMG 소속 아티스트는 매일 같이 작업을 한다. 좋은 것이 나올 때까지. 불면증에 많이 시달린다. 쉬는 것도 잘 못한다. 쉬는 게 작업이라는 사람들이다. 오늘 아무것도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럴 수가. 나는 어디서든 오분 안에 잠들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의 지점이 새로웠다. 또 하나의 편견이깨졌지. 항상 그렇지는 못하겠지만, 되도록 좋은 기분으로 잠들고 싶다. 그것이 최근에 갖게 된 나의 바람이다. 그리고 큰 걸 하나만 더 말하자면, 이번에 좋은 소식... 제발... 참 좋겠습니다... 아시죠...?